'또 다른 숙대 트랜스젠더 A 씨'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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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의 트랜스젠더, 그가 남긴 질문 ③] 혐오를 넘어 공존으로 [조성은 기자]
 
'숙대 트랜스젠더 A씨 케이스'는 A씨가 입학을 포기하면서 일단락됐다. 합격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30일부터 약 10일간 숙대는 화제의 중심에서 내홍을 겪었다. 입학을 환영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입학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거셌다. 학내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는 '입학하면 괴롭혀서라도 쫓아내겠다'는 말까지 올라왔다. 합격자였던 A 씨도 해당 반응들을 봤을 터. 결국 지난 7일 그는 입학을 포기했다. '포기 당했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던진 숙제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사실상 법적으로 인정한 때는 2006년. 그후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에게 가해진 위협과 폭력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숙대 학생들은 왜 그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나. '여성'이란 무엇인가. 이건 A 씨만의 일도, 숙대 만의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페미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따라서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몰입해 '전선'을 긋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숙대라는 집단의 여성 구성원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논리는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쟁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불길이 붙은 지 6년,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프레시안>은 지난 두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입장의 숙대 학생들을 만나 'A 씨 사태'가 남긴 과제들을 이야기해봤다. 첫번째 회차에서는 먼저 스스로 ‘래디컬 페미니스트(급진 페미니스트)’라 소개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번째 회차에서는 ‘A 씨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회차에서는 마지막으로 혐오·차별 문제를 지적해온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로부터 낯선 존재와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지난 7일, 'A 씨'는 입학 포기 사실을 알리면서 '다른 분들은 저보다 멀리 가시길' 이라고 말했다. 22살,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입시를 준비한 그는 남들과는 많이 다른 길을 걸었다. 법원으로부터 성별정정을 받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이들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그를 주저앉힌 것은 혐오의 말들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여성인권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많은 여성운동가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A 씨의 입학을 반대한 이들은 트랜스젠더 혐오가 아닌 안전 때문이라고 했다. 명백한 혐오다.

우선 여대의 안전을 해친 것은 트랜스젠더가 아니었으며, 설령 모 트랜스젠더가 어떤 여성을 위협했다 하더라도 그건 그 트랜스젠더 개인의 문제이지 집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적으로 성별정정을 마친 A 씨는 정당한 절차로 입학할 권리를 가졌다.

여성, '생물학적'으로만 정의되는 존재 아니야

자칭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터프(TERF)'들은 그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여성'은 오로지 XX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난 가부장제의 피해자일 뿐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나무연필 펴냄)의 저자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터프'는 여성을 절대적인 약자로 상정하고 다른 소수자들의 약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어떤 여성은 강자성을 가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성'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페미니즘은 인간을 성기로 환원하지 말자는 운동"이라며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기댄 '여성인권 챙기기'는 여성인권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붙들고 머리만 투블럭으로 치면 여성해방이 오느냐"며 "성기를 떠나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신화에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제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다보면 결국 운동의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며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의제를 확장하며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자' 받아들이기 위해 아직 준비안 된 사회

트랜스젠더 A 씨의 숙명여대 합격과 등록 포기 사이, 세간의 시선은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에게 쏠렸다. 홍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펴냄)를 통해 혐오 문제를 지적하고 평소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대외적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홍 교수는 "혹시라도 잘못된 메시지가 나가지 않도록 학교 당국과 의견을 주고받았다"며 "A 씨의 입학 후에 벌어질 수도 있는 A 씨에 대한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혐오·차별 문제의 전문가이자 학교의 구성원으로써 사태를 어떻게 지켜봤나.

홍성수(이하 홍) : A 씨의 입학이 알려진 게 지난달 30일이고 등록을 포기한 것이 7일이다. 일주일 남짓 되는 기간에 너무 많은 일이 터졌다. 특히 학생들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 되어서 학교 구성원 모두 당혹스러운 입장이었다. 차분히 논의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대책을 세우고 입장을 내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에 A 씨가 등록을 포기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등록 포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당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결과적으로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입학자격을 얻은 학생이 학생사회 내부의 압력에 의해 그 권리를 포기하게 됐다. 학교는 학생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과적으로 그 책무를 방기한 셈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내 공간에서 발생한 일이고, 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고 사회적으로 인권문제를 지적하던 입장에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

시간과 경험의 부족이 부른 패착

프레시안 : 당시 입학을 반대한다는 학생들을 상대로 의견을 냈어야 한다는 말인가.

홍 : 학교 차원에서 입장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의 항의가 거셌고, 환영하는 학생과 반대하는 학생들이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 학교 입장에서는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입학 전이라 애매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입학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 이상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학교 당국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A 씨에 대한 보호 대책과 입장이 나와야 했다. 실제로 학생들의 반발이 이렇게 크다면 입학한 후 A 씨가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트랜스젠더 학생이 대학에서 따돌림을 겪은 사례는 많이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학내 공론을 모아 그런 입장을 내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고 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이런 이슈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프레시안 : 학교 차원의 입장은 어떤 게 있어야 했나.

홍 :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학교는 이 학생을 특정한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맞다. A 씨는 여성으로 법적 성전환을 한 학생이고 그런 학생에게 특별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 될 수 있다. 그냥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하면 된다. 설사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그 학생이 누군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알아내려고 해서도 안된다. 

다른 한편 이 학생에 대한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A 씨가 도움을 청할 수도 있으니 그에 적절히 응답하기 위한 대책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학내 구성원을 향해서도 "어떤 학생이건 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취지의 메시지가 나가야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A 씨가 입학할 때쯤 입장이나 대책이 마련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학내 공론화를 위한 자료를 준비하면서 학내 의견을 모으고 본부에도 의견을 전달하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등록 포기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실기한 것이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입장이나 대책이 제 때 나갔으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프레시안 : 학교가 A 씨를 적극적으로 보호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홍 : 대학은 모든 학생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무가 있다. 어떤 학생이든 다른 학생들 때문에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것을 내버려두면 안된다.

만약 A 씨가 입학한 이후 괴롭힘을 당했는데 학교에서 이를 방치했다면 윤리적인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가해자의 책임과 함께 회사의 책임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단순히 입학을 허가했다고 해서 대학이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좀 더 넓게 볼 필요도 있다. 대학은 이미 다원화됐고 트랜스젠더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소수자들이 입학하고 있다. 그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거의 모든 대학이 마찬가지다. 교육부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부분에 대해 앞서 어떤 논의를 거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고민했나. 또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 대해 얼마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이들의 가시화를 위해

프레시안 : 학내에서 트랜스젠더 문제가 공론화된 적이 있나.

홍 : 내가 특별히 아는 사례는 없지만 실제로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A 씨도 언론사에 인터뷰를 해서 알려진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을 것이다. 학교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포용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A 씨가 스스로를 드러낸 것도 그런 취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A 씨 같은 경우는 수술하고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젠더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중에는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홍 : 해외에서 '트랜스젠더 군인을 받기로 했다', '트랜스젠더 학생도 여대에 갈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는 건,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한 사람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 성별 정정이나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의 트랜스젠더도 포용하겠다는 의미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때 미군은 성전환수술을 하거나 법적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도 입대를 허용했다. 그 군인에게 성전환수술 비용이나 호르몬치료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게 트랜스젠더 정책이다. 성별 정정한 사람을 받을 것인지 여부는 논점 자체가 안된다. 그건 당연한 거니까.

프레시안 : 법적 성별 정정을 거치지 않거나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홍 : 더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호르몬 투여 중인 학생에 대한 의료적 지원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상담할 수 있는 전문상담인력도 필요하다. 기숙사, 탈의실, 화장실과 같은 공간도 재정비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성별중립화장실이다. 성별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며, 더 나아가 장애인이나 자녀 동반 보호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각국에 설치되고 있다. 

미국의 여대를 보면 성별중립화장실을 설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숙사나 탈의실에도 성별중립 공간을 확보하고, MTF 트랜스젠더가 운동선수로 뛸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정책들을 마련해 두고 있다. 군대에서 트랜스젠더를 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안전'은 정당한 요구, 다만 인권은 '제로섬 게임' 아니야

프레시안 : 그럼 여성들의 안전이 다시 문제가 되지 않나. 이번에 숙대 학생들도 안전을 이유로 A 씨의 입학을 반대했다.

홍 : 일단 여성들이 제기하는 안전이라는 요구 자체는 매우 정당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우리 사회가 여성안전을 소홀하게 여긴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건 그 자체로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사회 전체가 안전 문제에 더욱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안전한 사회와 다른 소수자의 인권이 충돌한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여성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난민을 받으면 안된다', '여성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인정하면 안된다', 심지어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인권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파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연대하고 서로의 인권을 함께 증진시키는 과정에서 인권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내 인권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 인권이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 여성운동 내부에서만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각자의 인권을 놓고 배타적으로 경쟁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프레시안 : 해결방안이 있나.

홍 :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원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어떤 이유에서든 혐오는 안 된다는 걸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안전과 인권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특정 집단을 혐오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그 전제 하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의 정당한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과연 여성의 안전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을까? 반드시 되돌아보고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같이 갈 때 혐오의 문제가 풀리는 거지 단순히 '혐오하면 안 된다'고 외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함께 살아본 경험'의 중요성

프레시안 : 혐오는 본능적인 것 같다. 낯선 존재, 눈에 보이지 않는 소수자들에게는 막연한 거부감이 들지 않나. 그래서 혐오가 쉽게 재생산되는 듯하다.

홍 : 트랜스젠더 이슈를 한정해서 보자면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것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난민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전체가 난민이나 트랜스젠더와 함께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혐오로 발전해 나간다고 본다.

막상 함께 어우러져 지내다 '위험한 존재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소수자 집단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에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친구 중에 동성애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친구를 어떻게 혐오해요' 라든가, '같이 지내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이런 얘기를 한다. 실제로 겪어보면 막연한 불안이나 거부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문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소수자에 비해 특히 트랜스젠더는 비가시화됐다. 경험해보지 않은 존재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 막연한 편견이 혐오로 나아가면 안 된다. 더불어 살면서 접촉면을 늘리면 충분히 풀릴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이 더 안타깝다. 트랜스젠더와 같이 대학 생활을 한다는 건 학생들에게도 머리로는 얻을 수 없는,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런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또 하나의 손실이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와 함께하는 대학생활',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나.

홍 : 성별중립화장실이라든가 기숙사나 탈의실·샤워실에서의 개인 공간의 확보, 성별 구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대학, 사회 모든 곳에 필요한 공간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해보자면, 유학 시절 기숙사 한 층을 남녀 학생이 같이 사용했다. 처음에는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막상 지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텔도 남녀 층이 따로 있지 않은 것처럼. 기숙사도 개인의 공간이 확보된다면 남녀 층, 남녀 동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들을 보면 샤워공간이나 탈의실도 안전하게 분리된 개인 공간을 확보해서 굳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게끔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이 오해하는 게 '성별중립화장실'이라면 호프집 저 구석에 있는 남녀공용화장실을 떠올린다. 그것도 여자화장실을 없애고 공용화장실을 만든다는 식으로. 그게 아니다. 남녀 구분 화장실은 그대로 두고 성별중립 공간을 같이 둔다는 이야기다. 성공회대와 서울시 청사에 성별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려다 결국 못했다.

성별중립 공간을 경험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공간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자꾸 보여줘야 한다. 공공기관, 교육기관이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청사, 지하철역, 초중고 등 '모두를 위한 화장실' 등을 시도해볼 만한 공공의 공간이 많다.  

그냥 '이건 혐오야' 이런 식으로 비난만 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어야 하고 모범적인 사례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두의 안전을 보장받으면서도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문제다. 대학과 사회 모두가 나서야 한다. 

▲숙대 본관 앞 게시판에 붙어있는 자보. 유영주(국문 89) 씨를 비롯한 753명의 동문들이 'A 씨의 입학을 환영한다'며 지지성명을 냈다. ⓒ프레시안(최형락)
 
해외의 여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 포용하다

프레시안 : 우리보다 앞서 트랜스젠더 논의를 거친 해외 대학은 어땠나.

홍 : 트랜스젠더가 문제가 된 부분은 특히 여성들만 있는 공간에서였다. 그런데 여성들만 있는 공간은 사실 얼마 안 된다. 차별금지의 원칙은 불필요하게 성별을 구분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성별을 나눠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자화장실·여군·여대 정도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이들 공간에서 트랜스젠더 문제가 먼저 공론화된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의 여대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있었고, 결국 트랜스젠더 포용 정책이 수립한 여대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군대는 남녀가 함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지만 여대는 그렇지 않다. 더욱이 이번에는 '페미니즘'을 이유로 학생들이 A 씨의 입학을 반대했다.

홍 : 여대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논점이 있다. 여대는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미국의 여대와 일본의 여대들은 트랜스젠더 포용정책을 이미 시작했다.

스미스대학, 웨슬리대학, 오차노미즈여대, 나라여대 등 명문 여대들이 먼저 나섰다. 이 여대들은 '여대가 왜 트랜스젠더를 받아야 하는가?', '우리 대학이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이념에 비추어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론은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는 것이 여대가 만들어진 취지나 우리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지향에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입학 대상은 법적 성별 정정이 된 트랜스 여성에 한정되지 않았다. 법적 정정 여부나 수술 여부를 묻지 않고 트랜스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했고, 논바이너리나 인터섹스에게도 입학 자격을 부여한 여대도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받겠다는 취지다. 법적 성별 정정이 된 여성을 받을거냐 안 받을거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훨씬 수준 높은 논의가 있었던 셈이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의 여대들은 '여대가 왜, 페미니즘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련해서 학내 구성원들이 긍정적으로 답을 내렸다. 그냥 입학만 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입학 시 겪는 어려움. 복잡한 문제들도 고민했다.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은 대목이다.

프레시안 : 숙명여대는, 한국의 여대는 어디까지 왔다고 보는가.

홍 :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다. 이번 사건이 촉발한 문제들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여대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여대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페미니즘에 비춰볼 때 트랜스젠더 문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이런 문제들이다. 트랜스젠더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하루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제도적 보호장치 필요...법보다 중요한 '법이 가지는 정신'

프레시안 : 그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해왔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A 씨가 입학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을까.

홍 : 차별금지법 자체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의해 전반적으로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을 수는 있었을 것 같다.

차별금지법은 고용과 교육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성별을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면 차별금지법에 의해서 금지되는 차별에 해당한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교육기관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만약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했다면 당연히 법 위반이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는데 학교가 이를 방치했다면 이 역시 인권위에 진정을 할 수 있는 사안이다.

프레시안 : 인권위법만으로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홍 : 인권위법에는 차별 관련해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차별금지법은 학생을 괴롭힐 경우, '허레스먼트(harassment)'라 해서 차별행위의 일종으로 명시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역할 중 하나가 차별이 무엇인지 널리 알려주는 것이다. 인권위법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이유로 불리한 대우를 하면 안된다'고만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불리한 대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해석이 필요하고 자꾸 불필요한 논란이 생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구체적인 차별행위의 유형들을 자세히 규정한다. 학내 괴롭힘도 차별의 일종이라고 확실하게 규정한다. 시민들에게 차별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인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각 대학이나 기업 등의 개별 조직에서 문제를 풀어가기가 쉬워진다. 차별금지법이 일종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각 조직에서 차별금지정책을 만들 때 확실한 법적 근거가 없어 어려움을 겪곤 한다.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 외에 필요한 제도적 틀은 없나.

홍 : 특정 사건에만 한정해서 문제를 보면 안 된다. 이번 사건은 특정 대학에서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는 데 실패한 사건이지만, 사실 대학 내 다양한 소수자를 포용할 수 있는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었기에 발생한 일이다. 

사회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특정 대학의 과제뿐 아니라 대학사회 전체, 교육당국, 전체 사회의 과제로 확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소수자들과 함께하는 공존의 사회를 지향하고 '차별은 안 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법 정책 및 사회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다 보면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끝>



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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