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망미골목, 오래가는 문화단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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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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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공연예술팀장


시작은 산뜻한 청록색 외관의 ‘현대미술회관’이다. 몇주 전 미술계 한 인사에게 “젊은 작가가 수영에서 주택을 개조한 전시장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회관’이라는 이름이 재미나다 생각해 수첩에 기록해뒀다.

약속을 잡고 현대미술회관을 방문하던 날, 시간이 좀 남았다. 같은 망미동이니 평소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올려둔 책방 ‘비온후’를 찾아갔다. 이인미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주변 정보를 얻다 시장 안의 전시공간 ‘아트랩’ 이야기를 들었다. ‘골목 갤러리’와 ‘스페이스클립’까지 거리 위에 꿈틀대는 문화적 움직임이 감지됐고 거기서 기사 ‘망미골목 문화 르네상스 꽃피다’의 싹이 텄다.

망미골목 매력은 문화 커뮤니티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댓글 많아

자생적 형성 문화지구 지켜가야

망미·수영동을 넘나드는 발품 취재가 시작됐다. 현대미술회관은 재미났다. 다락방 나무 계단 위에서 작은 돌이 진동하는 설치작품이나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슬라이드 필름에 그린 그림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45년 된 옛집에 잘 어울렸다. 외벽에 쓰인 글자 없이는 시장인 줄 모를 수영건설시장 안 아트랩은 훈훈했다. 늦은 시간 주인 없는 전시장을 기웃거리자 시장 어르신들이 먼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책방을 찾아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도를 들고 다니며 공방 위치를 확인하고, 지치면 동네 카페에 앉아 당을 보충하고, 한 군데만 더 들러보자며 동료 기자와 어두워진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만난 망미골목 사람들에게서 들은 문화 이야기는 풍성하고 참신했다.

소위 ‘OO단길’을 여기저기 꽤 많이 둘러봤다. 도시의 소소한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도대체 뭐가 들어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음에 또 와볼까 하는 곳도 있었지만, 친구랑 “다시 안와도 되겠다”며 한번으로 끝낸 곳도 있다. 그 차이는 ‘거리 고유의 문화’ 존재 여부가 좌우했다. 예쁜 카페나 맛집도 좋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새로 생긴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난다. 개성있는 서점이나 전시장 같은 문화공간을 끼고 있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생명력이 길다. “뭐뭐단길 이런 곳이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문화단길이 생기는 일”이라는 한 공방 대표의 이야기에 강하게 공감을 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망미단길’이 뜨기 시작한 초기에 방문했던 기억을 되돌리면 그냥 그런 카페거리 느낌이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만난 망미골목은 달랐다. 망미골목의 문화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각 공간들이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속으로 한 발만 들어가면 알게 된다. 문화와 사람이 만나는 곳.

망미골목의 최대 매력은 문화를 매개체로 만들어가는 지역 커뮤니티다. 서먹하던 카페와 카페 주인이 서점 손님으로 만나서 친구가 되고, 가게 문을 닫은 뒤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세대·취향별로 만나서 수다를 떨고, 다음에는 뭘 해볼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유럽이나 일본 영화에서 보던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동네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여기서는 가능할 것 같다”는 책방 주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을 우려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임대료 저렴한 곳에 문화예술가·자영업자가 개성있는 지역을 만듦→유동인구 늘어나며 임대료 상승, 대규모 프랜차이즈 같은 상업자본 침투→임대료와 월세가 폭등하고 기존 상인·예술가가 동네를 떠남→정체성 잃은 지역상권은 쇠퇴’의 패턴을 우리가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사실 망미골목 일대 집값은 비콘그라운드 입주에 대한 기대감으로 벌써 많이 오른 상태다.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생각보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수미로 일대 공방 운영자는 주민들이 “여기 들어오니 좋다” 격려도 하지만 “잘 버텨야 할텐데” 걱정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문화지구를 새로 하나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자생적으로 피어난 망미골목의 문화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지자체가 망미골목이 더 활성화될 수 있게 지원하고, 망미골목이 안정적으로 오래갈 수 있게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망미골목에는 문화를 같이 만들어갈 사람, 함께 더 키워갈 수 있는 사람, 망미골목에서 오래 살아갈 사람들이 들어가주면 좋겠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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