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터너(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엠스플뉴스]
19일(이하 한국시간) 오하이오주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 원정경기. 5-1로 앞서던 6회 2사 1, 2루에서 다저스 저스틴 터너가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3-2에서 신시내티 구원 투수 완디 페랄타의 몸쪽 빠른 볼(95마일)을 겨냥해 터너가 배트를 돌렸다. 타구는 외야 관중석 위층에 떨어졌다.
베이스를 돌아 홈플레이트로 향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터너는 11년 전 자신이 이름을 적어 넣었던 서류 하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적혀 있던 금액은 5만 달러였다. 지금은 한 경기에도 그 금액의 두 배 가까운 돈을 받는 선수가 됐다.
2005년 6월 당시 캘스테이트 풀러턴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터너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9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의 지명을 받았다. 직업선수의 길은 열렸지만 지명 순위가 너무 뒤였다. 터너는 대학 마지막 학년도 더 다니기로 했다.
기대대로 이듬 해 드래프트에서는 지명 순서가 빨라졌다. 7라운드에서 신시내티 레즈가 터너의 이름을 불렀다. 전체 204번째 지명이었다(바로 앞서 203번째 지명권을 갖고 있던 다저스는 하이메 오티스를 찍었다). 그렇게 해서 5만 달러가 적혀 있던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었다.
신시내티에 지명됐지만 터너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 서지는 못했다. 마이너리그 더블A까지 올라간 것이 끝이었다. 2008년 12월 볼티모어로 트레이드 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시내티는 베테랑 포수 라몬 에르난데스를 영입하기 위해 터너와 함께 다른 두 명의 선수들을 볼티모어에 내줬다.
터너가 볼티모어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뉴욕 메츠로 갔다가 2014년 2월 다저스로 오게 된 사연은 이제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메츠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다저스와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로 참가하는 조건으로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터너는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다시 한 번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번에는 FA가 되어 원소속 구단인 다저스의 오퍼를 받았다. 4년 6,400만 달러가 적혀 있는 서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딱 그만큼의 세월 속에서 터너는 자신의 인생을 계약금 5만 달러 선수에서 4년 6,400만 달러 선수로 바꿔 놓았다. 연평균 연봉을 162경기로 환산하면 매 경기 마다 9만 8,765달러 정도를 받는 셈이 된다. 다저스는 19일 터너의 쐐기포에 힘입어 신시내티의 후반 추격을 뿌리치고 8-7로 승리, 원정 3연전을 쓸어 담았다.
장외 타격왕…부상복귀 후 팀도 승승장구
터너는 5월 19일 마이애미 말린스와 홈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10일 DL에 올랐다. 당시 5연속 경기 동안 매 경기 2안타 씩을 뽑아내고 있던 상황이어서 안타까움이 컸다. 부상에서 복귀한 것은 지난 10일. 신시내티와 홈경기에서였다.
복귀신고를 시즌 2호 홈런으로 장식한 터너는 이후 8경기(선발 7경기)에서 쉬지 않고 안타를 만들어 내고 있다. 30타수 12안타 사4구 6개를 기록했다. 타율/출루율=.400/.514이다. 부상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속경기안타 기록은 13연속 경기로 늘어났다.
터너가 부상자 명단에 있는 동안 타저스는 12승 7패를 기록했다. 복귀한 뒤에는 8승 1패로 잘나가는 중이다. 터너가 빠진 동안 다저스 타선은 경기당 평균 4.16점을 올렸다. 복귀한 뒤 경기당 평균 득점은 6.67점이다. 최근 크리스 테일러나 코디 벨린저의 활약이 눈부시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터너가 있느냐 여부가 팀 타선의 득점 생산력에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터너는 19일까지 올시즌 47경기에서 169타수 65안타를 기록 중이다. 타율 .385다. 현재 메이저리그 타격 1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버스터 포지다. 포지는 59경기에서 210타수 74안타로 타율 .352다. 터너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타율이지만 터너는 부상으로 결장이 많았기 때문에 아직 규정 타석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터너의 타율이 얼마나 믿기 어려운 것인지는 20타석 이상으로 기준을 만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터너보다 타율이 높은 선수 중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보스턴의 샘 트래비스다. 19타석에 들어서 17타수 8안타(.471)을 기록했다. 터너 이후 3명의 선수가 포지 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이들 중 100타석에 들어선 선수도 없다.
터너는 현재 페이스면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에 타격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 다저스는 올스타브레이크까지 모두 90경기를 치르게 된다. 규정타석은 279타석이다. 터너는 19일까지 197타석에 들어섰다. 올스타브레이크 전까지 82타석에 들어서야 규정타석을 채운다.
이 때까지 남아 있는 경기는 20경기. 만약 터너가 휴식없이 매경기 출장하게 된다면 규정타석에 들 수 있다. 주로 3번에 위치하는 만큼 매경기 4타석에 들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고 5타석에 들어서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규정타석을 채우는 것 못지않게 올스타브레이크까지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FA 계약 첫 해 기대이상 활약 이유
터너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기대이상의 활약을 펼친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올시즌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했다. 바로 FA 계약 첫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터너는 다저스에 온 뒤로 무릎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메이저리그에는 좋은 활약을 펼쳐 FA 계약에서 대박을 친 뒤 부진에 빠지는 선수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른바 ‘먹튀’다. 현지 미디어에서도 심심하면 ‘최악의 FA 계약’이라는 제목으로 케케묵은 과거까지 들쳐내는 것을 보면 이런 사례가 드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장 올시즌만 해도 아롤디스 채프먼(19일 부상서 복귀, 뉴욕 양키스, 5년 8,600만 달러)이 부상으로 구단의 속을 썩이고 있다. 에드윈 엔카나시온(클리블랜드 인디언스, 3년 6,000만 달러), 덱스터 파울러(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5년 8,200만 달러)도 계약 규모에 걸맞는 활약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외로 꼬게 하는 선수들이다. 이들에 비하면 터너의 활약은 오히려 구단이 유리한 계약을 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는 수준이다.
터너가 오늘 날의 터너가 된 데는 이른바 레그 킥을 떼 놓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으므로 재론은 생략한다. 오늘 이야기는 터너가 타석에 서는 위치다. 올시즌 타석에 들어서는 터너를 보면 배터박스의 포수와 가장 가까운 모서리에 우측 발을 위치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금 밟는 것 아닌가’싶을 정도로 모서리에 최대한 붙어 서 있다. 그만큼 홈플레이트에서 가깝고 투수에게서 멀다.
이 같은 위치는 볼티모어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당시는 물론이고 다저스에서 이름을 알리던 2014년과 비교해도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배터 박스 뒤 편(투수에서 먼 곳)에 섰지만 홈플레이트에 이 정도로 가깝게 붙지 않았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점점 붙어서 더니 올시즌은 완전히 모서리에 위치한다.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왼발의 디딜 때 위치다. 오픈 스탠스로 대기하다 발을 들었다 놓는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다. 약간 크로스 되는 느낌까지 들었지만 이제는 오픈 스탠스(들기 전보다는 각도가 좁아지지만)를 유지한다.
일반적으로 오픈 스탠스를 사용하는 선수들은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볼이 멀게 느껴진다. 터너는 장신도 아니다(180CM). 작년 터너의 핫 존을 보면 바깥쪽 볼에 약점을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아울러 타격 후 발을 놓을 때 크로스가 되는 선수는 몸 쪽 빠른 볼에도 대처가 늦는 경우가 많다. 2016시즌 터너에게도 같은 모습이 드러난다(2016년 핫 존 참조).
2016 터너의 핫 존(출처=베이스볼 서번트)
올시즌의 터너는 이런 단점을 타석에 서는 위치와 타격 후에도 여전히 오픈 스탠스가 되는 것으로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핫 존을 보면 모두 빨갛다.
2017 터너의 핫 존(출처=베이스볼 서번트)
대가는 몸에 맞는 볼
물론 배터 박스 모서리를 밟고 서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바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볼에 대한 공포를 견뎌야 하고 때로는 몸에 맞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
터너는 올시즌 벌써 9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하고 있다. 2015년 13개가 몸에 맞는 볼이 가장 많았던 시즌이지만 당시는 439타석에서 기록했다. 지난해는 622타석에서 10개였다. 올해는 겨우 197타석에 들어서고도 벌써 예년의 한 시즌 몸에 맞는 볼과 비슷한 숫자가 됐다.
다음은 배트 컨트롤. 올시즌 터너의 타격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못 치는 구종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전의 터너는 비록 2015시즌 타율이 .294였다고 해도(작년에는 .275)스윙 궤도가 일정했다. 궤도에 들어오는 볼에는 정확한 가격이 가능했지만 어떤 때는 볼과 배트 사이가 멀 때도 있었다. 어이없는 헛스윙이라고 부르는 그런 스윙 말이다.
사구를 기록하는 터너(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하지만 올해는 어떤 각도로 볼이 들어와도 이에 대처하는 능력이 훨씬 좋아졌다. 당연히 특정 구종에 대한 약점이 거의 없다.
‘MLB.COM’의 ‘STATCAST’에 의하면 지난해 터너는 체인지업에 대한 타율이 .194, 싱커는 .190에 머물렀다. 두 구종 모두 100구 이상 상대한 결과다. 하지만 올해 체인지업에 대한 타율이 .412이고 싱커 역시 .500이 됐다. 포심 패스트볼에 대해서도 지난해 .280에서 올해는 .413이 됐다.
배트 컨트롤은 타구 방향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FANGRAPHS’의 스프레이 차트를 보면 지난해는 좌측으로 간 타구가 많았다. 하지만 올시즌은 훨씬 골고루 퍼져 있다.
2016 터너의 타구 분포 비율(출처=팬그래프)
2017 터너의 타구 분포 비율(출처=팬그래프)
타자는 시즌을 치르다 보면 누구라도 슬럼프를 겪게 된다. 터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보된 터너인 만큼 쉽게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혹 겪게 되더라도 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해볼 수 있다.
다저스는 1963년 토미 데이비스가 2년 연속 내셔널리그 타격 1위에 오른 뒤 한 번도 타격 1위를 배출한 적이 없다. 반세기도 더 지나 타격 1위가 나올 수 있을까. 터너라면 기대할 만 하다.
글: MBC SPORTS+ 박승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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