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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3화 첫 키스- 그니까 결론은. .너 내꺼 하자.

13화 첫 키스- 그니까 결론은. .너 내꺼 하자.2020.07.19.

#27 머리가 아닌 심장이 말하는 대로 살 거야. 대학 생활은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어. 1년 재수를 한데다, 서울 친구들은 지금까지 겪어왔던 친구들과는 다르더라고. 우리 과에는 대치동 3인방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얘들이 나랑 다니고 싶어하는 거야. 밥 먹을 때도 늘 함께였고. 옷이랑 가방을 보면 분명 좋은 것들인데 집안 형편이 안좋아서 용돈이 부족하데. 그래서 내가 늘 밥을 사줬어. 어머니가 넉넉하게 돈을 보내주셨고, 부산 스타일은 돈 있는 사람이 밥 사는 거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얘들은 아버지가 건물주. 강남 부잣집 도련님들이었지 그 녀석들은 날 흑우로 생각했던 것 같아. 내 호의를 이용한 서울 깍쟁이들에게 된통 당하고 나서는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어. 물 좋다는 동아리에 가입해 보기도 했지만, 즐겁지 않더라. 아마도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 2학기에는 군대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공부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고, 결국 수업도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어. 대학생활 2개월 만에 나는 ‘아싸’ 가 되어 버린거지. 그냥 저냥 학교 생활을 하던 차에 전공 수업에서 몇 번 마주친 여학생이 말을 걸었어. “너 점심때 나랑 밥 먹을래?” 그렇게 시작된 이 여학생과의 만남은 내 대학 생활에서 그나마 좋은 기억 중에 하나야. 작은 키에 안경을 끼고 긴 생머리를 한. . 누가 봐도 우등생 느낌. 잘 웃고 성격도 털털해서 같이 있으면 마음 편한 친구였거든. 전공 수업 시간에 남자 목소리로 날 대신해 출석 해주기도 했고, 시험을 칠 때면 내 답안지까지 작성해주더라. 수업 참여가 저조한 날 위해 노트를 정리해서 보여주고, 내가 이해 안가는 부분은 설명까지 해주던 정말 친절한 아이. 밥 먹을 때면 철저한 더치페이. 하지만 자기 용돈 받은 날에는 맛있는 곳에서 크게 한 턱 쏘기도 하던. . 강남 출신이었지만, 저렇게 순수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아이. 그 당시 나는 그녀를 정말 동성 친구 처럼 대했는데. . 지금 생각하면 나를 이성으로 좋아해서 그렇게 잘해 줬던 것 같아. 나는 여자 마음을 잘 몰라. 지금도 어렵고. 이 해 여름방학에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지난 번 무전여행에서는 한국의 동쪽을 여행했으니 이때는 서쪽을 향해 떠나기로 했어. 첫 여행지는 서해안에 있는 ‘학암포’ 왜 이 곳 이었냐고? 그냥. 지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어서. 지도 상에서 볼 때는 바닷가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 같았어. 무작정 지도 한 장을 배낭에 넣은 채, 천안을 거쳐 시외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지났을 까? 곧 마지막 정거장인 ‘학암포’라고 하는데 시계는 저녁 9시를 향하고. . 숙소는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되더라. 내 옆자리에는 20대 여성분이 앉아있었는데, 그 분한테 말을 걸었어. “저 학암포에 민박이 있나요?” “두 개 있어요. 여행객이세요?” “네.” “여기 혼자서 오는 사람 없는데. . 처음 봐요. 어떻게 알고 왔어요?” 당시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혼자 온 여행객이 무척 신기하게 보였나 봐. “우연히 지도 보다가. .” “저희 엄마가 민박 하시는데, 어떠세요?” “아. .저는 좋죠.” 운 좋게 숙소는 해결하게 되었어. 혼자 바다에 오면 늘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바다 보면서 소주랑 새우깡 먹기. 여름 열기가 느껴지는 끈적한 바람. 비릿한 바다 냄새. 시커먼 바다. 생각보다 멋지지 않더라. 아무 것도 안보이는 바다는 그 당시 내 마음 같았어. 기대했던 대학의 낭만도 없고, 인간관계는 어렵고, 여전히 J 너는 그립고. 게다가 소주에 새우깡은 참 맛 없는 조합.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면 더 울적해 질 것 같아서 숙소로 돌아 갔어. 다음 날 민박집 아주머니께서는 어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며 이름조차 낯선 해산물 요리를 잔뜩 차려 주셨어.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나 참 운이 좋다.’ 라고 생각되는 아침이었지.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해안가를 따라 걸었는데 마침 밀물 시간이었나봐. ‘어 저게 뭐지?’ 무언가 커다랗고 시커먼 덩어리가 나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어. 놀라서 눈을 몇 번 비볐던 것 같아. 그건 바로 조그만 아기 고래의 사체 신기하고 불쌍하고. . ‘여행을 하다 보니 별 것을 다보게 되는 구나.’ 그렇게 한참 아기 고래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머니 속 삐삐가 울렸어. ‘8282’ 무슨 일이지? 급하게 숙소로 돌아와서 친구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들었는데. . 여행 전 날까지 학교에서 만났던.. 날 챙겨주던.. 그 여자 아이가 죽었다는 거야. 중간 고사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즉사. 너무 갑작스런 소식에 머리에서 삐- 하고 소리가 들려. 모든 게 정지 된 느낌. ‘여행 끝나고 같이 영화 보기로 했는데. .’ 더 이상 여행의 의미가 없어져버렸고, 그 길로 서울로 올라 갔어. 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서있는 것 조차 힘들어 보이는 친구의 부모님이 계시더라. 아무리 울어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죽어버리면 다 끝인 걸. . 내일을 기약하고 약속 한들 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내 목숨이 어디까지 허락될 지 모르는데. 허망하고 허망해서 내가 규정짓고 철벽을 치던 삶의 규칙들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 ‘그저 오늘을 열심히 즐겁게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고 싶다.’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는 오히려 생의 의지가 불타 올랐어. 이런 내 의지는 너에 대한 생각까지 바꿔버렸지. 너의 이름과 학교가 거짓이고, 어머니가 문둥병이고, 집안이 망했다. .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부모님이 널 못 받아들이시더라도 내가 널 사랑하는데. . 너에 대해 머뭇대던 내 모든 감정의 빗장이 무너져 버리자 당장 부산에 가서 널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어. #27-2 머리가 아닌 심장이 말하는 대로 살 거야. 공중 전화까지 달려가는 길이 왜 이리 멀리 느껴지는지. ‘빨리 네 목소리를 듣고 싶다.’ 전화 다이얼을 누르는 매 순간에 가슴이 떨렸던 것 같아. 마치 고등학생 때 밤마다 너에게 전화하던 그 때 처럼. “어. 나 잘 지냈어?” “진짜 오랜만이네. 한달 만인가?” “그렇지.. 나 오늘 부산 내려가려고 하는데, 늦게 도착할 거 같아.” “늦게도 괜찮은데 몇 시쯤 오는데?” “아마 10시는 돼야 도착할 것 같아. 기차 타고 가려고.” “어. 알겠어. 그럼 역 앞에서 볼까?” “그래. .그러자 빨리 보고 싶어.” 너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몇 년 만인지. . 이 쉬운 말 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숨기고 살아 왔었구나. . 서둘러 서울역으로 가서 가장 빨리 출발하는 부산행 기차를 탔어. 나 대학 입학하고는 너랑 전화통화만 2번 정도 했었던 것 같아. 안 본 사이 넌 얼마나 변했을까. 빗장 너머로 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쏟아져 내리는 듯 했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네 얼굴을 마음껏 바라보기. 웃는 모습도 찡그린 얼굴도 모두 다 내 눈에 담고 싶었거든. 그리고 꼬옥 안아도 보고, 키스도 하고 싶고.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하는 그런 것들을 너와 하고 싶었어. ‘이제 너와 나도 그저 서로 사랑하는. . 평범한 연인이 될 테니까.’ 부산역에 도착했더니 이미 깜깜한 밤이 되었어. 아침에는 남해, 점심에는 서울, 저녁엔 부산. 이 날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반전 있는 하루였을 거야. 바닷가에서 봤던 아기 돌고래의 죽음은 내 친구의 죽음을 암시한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족쇄가 허물어짐을 암시한 것일까? 그 것이 무엇을 의미했든 나는 죽음 뒤의 재생을 경험하는 중 이었어. 꺼뜨리고 있던 너에 대한 내 사랑을 다시금 불태웠으니까.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너를 봤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어. 그저 좋았던 것 같아. 너를 바라보는 게. “왔어?” “어. .갑자기 와서 놀랬지?” “응. 무슨 일 있는 거야? 궁금한데 네가 전화를 빨리 끊어서 못 물어 봤어.” “대학에서 친하게 지내던. . 친구가 갑자기 죽었어.” “어? 아니 왜?” “교통사고로. .” “아. .” 넌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이 슬펐나 봐. 포도송이 처럼 커다란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너무 갑작스러워서. . 너도 나도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삶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주어진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게 단 하루라도.” “그래서 말이야. . 그래서. .부산에 갑자기 내려온 거야. 친구 장례식장에서 바로.” “지금 내 마음은 너에게 첫 눈에 반했던 그 순간의 그 느낌 그대로야.” “어. .그니까 내 결론은 너 내꺼 하자.” 난 되게 진지하게 이야기 했는데 네가 갑자기 ‘풋’하고 웃더라. “네 질문에 대답은 이거야.” 갑자기 네가 부드러운 손으로 내 목덜미를 휘어 감았고, 내 얼굴 위로 네 입술이 다가 왔어.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진 거리. 너와 내 숨결이 뜨겁게 느껴지더라. 나는 양 손으로 너의 허리를 휘감았고 넌 내 가슴 품에 ‘폭’ 하고 안겼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런 두근거림은 난생처음 겪어본 것 같아. 서로의 입술이 탐색하듯 하나로 포개어 졌고… 어느덧 내 입술 사이로 너의 혀가 들어와 있었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푸딩 같은 촉감. 낯설지만 싫지 않은 이 느낌. 이런 게 ‘딥키스’ 인 건가. 우리 90년 여름에 영화관에서 ‘시네마 천국’ 봤던 것 기억 나? 그 영화 마지막 장면에 수많은 키스신이 나오잖아. 그것 보면서 너랑 언젠가 꼭 키스 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 이렇게 하게 될 줄이야. 우리의 키스는 꽤 오래 계속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역에서 나오는 승객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어. 너랑 나는 서로 민망해서 그 자리에서 얼른 벗어났지. 물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28 본능적으로- 첫 경험 이때부터 더 이상 내 마음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으려고 했어.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기로 결심했거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너를 잃고 싶진 않았어. 이렇게 마음 먹고 나선 매일이 행복해졌던 것 같아. 2학기에 입대하기로 했었는데, 영장이 이듬해 4월로 미뤄져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어. 입대가 미뤄진 만큼 너랑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니까. 겨울 방학에 부산에 내려와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데이트 했었고 그러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순간이 찾아오게 되지. 바로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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