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제목 : 8화 지옥 문이 열렸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아야 했다.

8화 지옥 문이 열렸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아야 했다.2020.07.02.

#18 연애의 기술은 성공했다. 답답해서 얼음물을 연거푸 마셨어. 너에게 이별을 고하고 벌써 2달이나 지났는데 전화 한통 없더라. 남자도 밀당을 해. 밀당 없이 어떻게 연애를 하겠어?! 난 너에게 나란 사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준거야. 그런데 2달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무작정 전화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한 가지 떠오른 게 ‘라디오에 사연 적기’. 너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를 자주 듣는 다고 했었잖아. 학원 여자애들 한테 물어보니까 에쁘게 만들 수록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정말 심혈 기울여서 엽서를 꾸며봤어. 검은 색 도화지에 도시를 스케치하고 색종이를 스케치 한 부분에 오려 붙였지. 만들다 보니까 눈 오는 걸 표현하는게 예쁠 것 같아서 칫솔에 하얀 색 물감을 묻혀서 손가락으로 살살 솔을 문질러서 물감을 뿌렸어. 내 18살 인생에 이렇게 창작 혼을 불태워 본 것은 처음 인 것 같아. ‘올. . 나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사연을 적은 엽서 뒷면에 내 작품을 붙여서 ‘별밤’에 보냈어.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곤 매일 밤 ‘별밤’을 들었던 것 같아. 혹시나 내 엽서가 채택되어서 방송 될 까봐. 2주쯤 지났나? 내 사연이 나오더라. “부산에 살고 있는 남학생의 사연입니다. 고등학생이시네요.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절절한 이야기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이별을 말했습니다. 1년 가까이 만났지만 저만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그녀에게 매달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그만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까 너무 그리워요. 그녀의 전화를 오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J야 사랑해.” “J 양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빨리 남자친구에게 전화 부탁드립니다.” “신청곡은 015B의 ‘때늦은 비’ 입니다.” 너 만나고 ‘기다림’이라는 것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 . . 그랬는데...너무나 힘들더라. 이젠 정말 기다리기 싫다는 생각에 휩싸여 인내심이 바닥 날 즈음 ‘너에게 전화 올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드는 날이 있었어. 누나 만나고 너랑 연락 끊어진 후 다시 나에게 전화가 왔던 그 때처럼. . . “따르릉” ‘어. .J다.’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었어. “여보세요?” 오랜만에 너의 목소리. 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 아직 밀당 중이니까, 바보처럼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하게 대답했어. “어. 오랜만이네.” “그치. . 잘 지냈어?” 결국 내 의도대로 된 걸까? 평소와는 다르게 힘없는 너의 목소리. “너 나 안보고 싶었던 거야?” 하. .보고 싶었지만 대답은 패스. “내가 한말은 생각해 봤어?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했던 말.” “응. . “ “그래서? 네 대답은 뭐야?” “,,,,,,,” 이 날 너의 항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강하게 몰아 붙여서 대답을 들어야 겠더라.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하는 거 어때? 근데 오늘은 집에 빨리 들어와야 해서.” 사실 시간은 많았어. “잠시만 봐도 돼. 너 바쁘면 내가 너희 집 근처로 갈게.” 우리 집 쪽으로 오겠다는 너의 말에 자존심을 한풀 꺾고 내게 다가 오려는 것을 느꼈어. ‘아. 내 기술 성공 했나 보다.’ 속으로 웃었어. “51번 버스 정류장 앞에서 보자. 너 얼마나 걸려?” “20분 정도.” “그럼 나도 준비하고 나갈게.” 너를 만나러 길을 나서자 스웨터 사이로 들어오는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이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 네 얼굴을 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지. 버스 정류장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니 네가 버스에서 내리더라. 동그랗고 하얀 얼굴. 근데 네 커다란 눈망울이 너무 슬퍼 보여. 난 그런 네 표정을 못 본 척 담담하게 인사했어. “왔어?” “응. .”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 된 거 같은데 넌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는 거야. 버스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지 우리를 계속 쳐다보더라.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어서 빨리 네 대답을 듣고 싶은데. 바보. 빨리 나 좋아한다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다시 나랑 사귀고 싶다고 말하라고. 말 없는 널 보니까 속이 타들어가. 힐끗 네 얼굴을 보니까 세상에 !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더라고. 하. 이건 온 지구상의 남자들을 무릎 꿇게 한다는 눈물! 순간 내가 진짜 나쁜 놈인 것 같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러면 내 두 달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잖아. 난 그냥 아무 말 없이 너를 안아주는 게 낫겠다 싶었어. 너를 꼬옥 껴안았는데 서로의 가슴이 맞닿았고, 가까이서 느껴지는 너의 가쁜 숨결. 내 가슴을 적시는 너의 눈물이 뜨겁더라. 세상에서 내가 제일 쓰레기야. 속으론 여러 번 말했어. ‘진짜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 손으로는 너의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 안았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어 줬었지. 그렇게 몇 분 흘렀을까? 주변을 보니까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사람들 그리고 버스 승객들, 지나가는 승용차에 탄 사람들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어. 도로의 모든 헤드라이트가 껴안고 있는 우리 만을 비추는 느낌. 그땐 고등학생 둘이 그러고 있는게 흔한 풍경은 아니었으니까. 진정이 좀 되었는지 네가 먼저 말을 했었지. “너 한테 먼저 연락한다는 게 정말 화가 나기도 했고, 네가 원망스럽기도 했어. “….” “하지만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 오늘은 특히 더. .” 결국 난 너의 항복 선언을 받아 냈어. 속으론 정말 좋았지만, 울고 있는 네 앞에서 표시 낼 순 없으니까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 “이제 좀 괜찮아?” “너 진짜 왜 그런거야. 난 내 문제로도 너무 힘든데 죽을 만큼 힘든데. . . 너까지 이러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 하지만 난 끝까지 너에게 ‘미안하다’란 말을 할 수 가 없었어. 다만 침묵으로 네 이야기를 듣는 게 내 최선이라 생각했어. “너 눈이 퉁퉁 부었어. 혼자 집에 갈 수 있겠어?” “아. .너 빨리 들어가야 되지. 응 괜찮아. 나 이제 집에 갈게” 그녀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둘이서 말없이 손을 잡고 있었잖아. 다시금 잡은 너의 작은 손. 따뜻하고 폭신한 느낌이 너무 좋더라. “버스 왔어. 나 가.” 버스에 올라 타서 창문을 열고는 내게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지. 네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눈은 버스를 쫓고 있었어. 그러다 불현듯 너의 말이 떠오르더라. ‘죽을 만큼 힘들다는. .’ 네가 가진 문제가 무엇이길래 넌 그렇게 힘든 걸까. 넌 늘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지 정작 네 속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으니까. 너랑 대화한 시간이 그렇게 많았는데 나는 너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천사처럼 예쁘고 착한 모습의 너에게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내 궁금증은 멈추질 안았고 알아 서는 안되는 진실에까지 닿고 말았어. #19 호기심은 항상 비극을 부른다. 버스 정류장 재회 이후 우리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던 것 같아. 적극적으로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너.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어. 하지만 한편으론 네가 ‘죽을 만큼 힘들다.’란 말을 했던 것이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더라. 나에게 네 생일이 5월 5일이라고 말했잖아. 순수하고 천진한 네 모습이 어린이 날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 했었어. 그러다 네 주민등록증을 보게 된 날. . 생일이 1월 이더라. 그때 까지만 해도 ‘사정이 있겠지. 생일이 뭐 대수인가.’ 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에게 이유도 묻지 않았었고… 너랑 경성대 앞에서 데이트 하던 날 네가 뜬금없이 학교 이야기를 꺼내더라. “곧 우리 학교 축제인데 너 와보지 않을래?” 지금까지 학교 이야기는 한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축제에 오라는 너의 말에 조금 놀랐어. “고3인데 공부 안해도 되는 거야?” “어 괜찮아. 너 학교에 초대하고 싶어. 꼭 와.” 네가 학교 주소를 알려주는데 너무 놀랐어. 내가 아는 너의 학교는 울산 명문 여고. 비평준화 고등학교로 아무나 입학 할 수 없는 곳. 그런데 네가 알려준 곳은 ‘실업학교’ 항상 내게 밤 늦게 통화 할 수 있다고 한 걸 보면야간 직업 학교 였던 것 같아. 네 학교 주소가 적힌 쪽지를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이었지만. 솔직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네 앞에서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았어. “어. 알겠어. 꼭 갈게,” 난 네가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명문고에서도 공부보단 다른 재능과 끼 있는 아이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 아버지가 군인이시라고 했었지. . 그렇담 아버지 근무지를 옮기셔서 전학을 한 걸까? 하지만 전학이라고 보기엔 학교가 . . 아버지가 군인이라고 했던 건 사실이 맞을까? 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갑갑해서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동안 밖을 배회 했어. 결국 너의 학교 축제날이 되었고, 나는 서둘러서 집을 나서야만 했었지. 학교가 부산 외곽 지역이라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했잖아.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에서 내려 걷다가. . 그렇게 너의 학교 정문에 도착했어. 믿고 싶지 않았던 학교 이름이 정문에 적혀있더라. ‘XX 실업학교’ 너를 만나기 전에 마음을 조금 진정하고 보려고 정문 앞에서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교문 안으로 들어갔어. 거기 학생들 모두 사복을 입고 있더라. 그 땐 고등학생 모두가 교복을 입던 시절이라 많이 낯설었어. 너랑 약속했던 교실 앞으로 갔더니 네가 기다리고 있었잖아. “잘 왔어.” “어. 학교가 멀더라. 버스 타고 한참 걸렸어.” “응 헤헤. 학교 구경 시켜 줄게.” 심란한 내 마음과 달리 너는 밝은 표정으로 웃고 었더라. 내 손을 잡고 이 곳 저 곳 함께 다녔는데 그 때 마주친 아이들이 네 이름을 부르는데. . 내가 아는 이름과 다른 이름을 부르더라고. 네 이름은 더이상 J가 아니었어. ‘하. 난 너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걸까.’ 난 도저히 이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머리가 멍 했어. 옆에서 기분 좋게 웃으면서 내 손을 쥐고 있는 너. 분명 우리는 같은 공간에 서 있는데 왜 나는 혼자 있는 느낌이 들었을까. “나 오늘 공연한다고 말했잖아. 맨 앞에 앉아서 나 봐야해. 알겠지?” 넌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활짝 드러내면서 웃더라. 내가 좋아하는 너의 웃는 모습. 이것만은 진실이겠지.

신고
별점 9.69 29명

댓글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