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고생 7만여명 “자해 경험”…우리 아이는 상관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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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10. 오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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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21] 교육부 전국 96만명 설문조사 결과 입수

중학생 7.9% 고교생 6.4% 달해

“찍힐까 숨겨“…최소 수치일 가능성

유복한 가정 모범생들 꽤 많아

초등 때 시작도…‘중학생 최다’ 추정

전문가 “관종 취급 말고 이해 필요”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리나라 중고생 7만여명이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청소년 자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교육계와 의학계의 우려가 잇따르는 가운데, 구체적인 수치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가 올해 초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설문조사 결과, ‘자해를 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전체 중학생 51만4710명 중 4만505명(7.9%)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중학생 100명 중 8명꼴로 자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2만8382명(5.5%)이 ‘조금 그렇다’고 대답했고, 8448명(1.7%)이 ‘그렇다’, 3675명(0.7%)이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고등학생은 45만2107명 중 2만9026명(6.4%)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답해 중학생보다는 비율이 낮았다. <한겨레21>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교육부로부터 받은 설문 자료를 분석한 자료다.

교육부는 자해 청소년이 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라 2017년부터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 자해 관련 항목을 추가했다. 자해를 경험한 중학생은 2017년(8.3%)보다 0.4%포인트 줄었고, 고등학생은 같은 기간(5.9%) 대비 0.5%포인트 늘었다.

교육부가 파악한 7만여명은 ‘최소’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해를 했다는 여고생은 <한겨레21>에 “아이들도 학기 초 설문조사에 솔직하게 응답했다가 자살 고위험군으로 찍히면 학교생활 내내 고생한다는 걸 다 안다. 자해를 했어도 안 했다고 체크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청소년의 우울감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이며, 자해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한 것이 아니어서 언급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해의 심각성을 ‘심리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와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주최,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재난과트라우마위원회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후원으로 9월20일 특별 심포지엄 ‘자해 대유행, 대한민국 어떻게 할 것인가?’가 열린 배경이다. 서영교 의원 역시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길 수 없을 만큼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자살·자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과 보살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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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어려서’ ‘우리 아이는 착하니까’ ‘우리 집은 행복하니까’ 청소년 자해를 ‘남의 아이’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해하는 여고생 ‘Wret Y’(예명·15)는 “초3 때부터 자해했지만 부모님은 중1 때 알았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이 만난 자해하는 청소년 대부분이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자해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있고, 중학생이 가장 많다고 ‘추정’한다. 예전엔 정신의학적 진단이나 성격장애 진단이 있는 아이들이 주로 자해를 한다고 알려졌으나 요즘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유복한 가정의, 외향적인, 모범생들이 꽤 많이 자해를 한다.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해의 주요 원인은 세가지인데, 압도적인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려고, 무감각함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자기 자신을 처벌하려고 자해한다”며 “관심받고 싶거나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기분부전증(1~2년간 우울한 기분이 지속)이나 우울증 혹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자살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다른 정신과적 증상은 없는지 일단 한번은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성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해계정(자해계)을 운영하는 자해하는 청소년(자해러)을 보면서, 사춘기 ‘관종’(관심을 끌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자해’로 검색되는 게시물은 8일 현재 4만개가 넘는다.

‘왕따’였던 수민(가명·16)은 7일 현재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어가 1044명이다. 수민은 ‘자해계’에 자해 사진을 올리는 ‘자해러’다. 팔로어들은 수민이가 자해 사진이나 일상이 담긴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를 눌러준다. 보통 한개 게시물에 100명 안팎의 팔로어가 피드백을 보내준다. 수민은 “보잘것없는 나 같은 사람을 팔로해주고, 공감하고, 위로도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며 “자해를 무조건 나쁘게 보거나 불쌍하게 보지 말고, ‘저 사람이 자해를 할 정도로 많이 힘들구나’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자해 전문가인 미국 의사 마이클 홀랜더는 <자해 청소년을 돕는 방법>(안병은 외 옮김, 그물코 펴냄)에서 “일부 전문가들에 의하면 4% 미만 청소년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해를 한다고 한다”며 자해하는 대다수 청소년을 ‘관종’ 취급하는 시각을 반박한 바 있다.

홍현주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장은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서로 만나 연애하다가 같이 자해를 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다 따돌림을 당하고 자해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만나 교제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보낸 사실이 학교에서 알려져 죽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어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이라며 청소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겨레21>은 한국 사회가 청소년 자해 문제의 답을 찾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되고자, 이번호(1237호)부터 3부에 걸쳐 ‘청소년 자해’ 기획 시리즈를 싣는다.



◎<한겨레21> 관련기사

‘자해계’ 운영하는 ‘자해러’ 아시나요? (https://goo.gl/sG66pR)
이생망·민모션…아이들을 자해로 이끄는 5가지 정서 (https://goo.gl/6evybz)



이재호 조윤영 전정윤 <한겨레21> 기자 ph@hani.co.kr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그린 그림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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