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신고가 ‘들썩’…다시 뜨거워진 강남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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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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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에 투자수요 몰려…‘넘사벽’ 재입증
尹정부, 규제완화·분양가상한제 폐지 등 공약
올 최소 120개 단지.9만 가구가 추진 대상
“매물은 별로 없는데 사겠다는 사람 많아”
‘신현대12차’ 155.52㎡ 한달새 8억원 ‘껑충’
‘개포우성1단지’ 127.61㎡ 40.9억 최고가 경신
다시 돌아온 ‘강남 재건축시대’ 현금부자 호재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개포동 아파트 일대. [연합]


대통령선거 직후인 3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주상복합아파트 ‘서초아크로비스타’ 205.7㎡(이하 전용면적)가 38억원(23층)에 계약됐습니다. 역대 최고가라고 합니다. 지난해 5월 이 단지 같은 층 같은 크기가 26억원에 매매됐으니, 1년도 안돼 12억원이 더 오른 셈입니다.

이 아파트는 우리나라 역사상 대통령이 거주하면서 출퇴근하는 첫 민간 아파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관저로 이용할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약 한 달간 이곳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하네요. 한동안 ‘대통령의 집’으로 유명세를 치를 것 같습니다. 많이 알려졌듯 이 아파트 부지는 옛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자리입니다. 최악의 참사가 일어난 터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명당이란 평가로 이미지가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니어도 요즘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시장엔 유난히 신고가 거래가 많습니다. 대선 직후부터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는 곳이 늘고 있고,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도 다시 뛰고 있습니다.

▶재건축 기대감 들썩이는 강남= ‘서초아크로비스타’ 바로 옆 단지인 ‘삼풍아파트’ 165.92㎡는 지난달 1일 42억원(3층)에 계약됐습니다. 2020년 11월 29억1000만원(5층)에 계약된 게 직전 최고가입니다. 역시 1년6개월도 지나지 않아 12억원 이상 올랐습니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단지는 최근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습니다.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투자 수요도 몰리고 있는 겁니다.

같은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로 ‘압구정 현대5차’ 82.23㎡(10층)는 지난달 12일 41억원에 거래됐습니다. 작년 4월 35억원(13층)에 계약된 이후 1년만에 6억원이 올랐습니다. 역시 재건축 개발 기대감이 작용했습니다. 지난달엔 강남권에서도 가장 비싼 단지로 통하는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84.97㎡도 43억1000만원(12층)에 거래됐습니다.

강남권 재건축 대장주와 최근 재건축이 끝난 새 아파트 모두 공급면적 기준으로 3.3㎡당 1억2000만원을 넘은 겁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강남권에 평(3.3㎡)당 1억원 시대 오나’라는 게 관심이었는데, 어느새 1억2000만원을 돌파했네요.

이런 분위기는 일부 고가 아파트 거래 사례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작년 말부터 거래가 급감하면서 주춤하던 강남권 아파트값 흐름이 대선 이후 달라졌습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아파트값은 0.35% 올랐습니다. 전달(0.14%) 보다 상승폭이 0.21%포인트나 커졌습니다.

강남구와 송파구도 상승세가 뚜렷해졌습니다. 강남구는 2월(0.16%)을 저점으로 3월 0.23%, 4월 0.28% 등으로 상승폭이 가팔라졌구요. 송파구도 지난달 0.09% 오르면서 전달(0.02%)을 최저점으로 다시 변동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강남권 상승 추세를 이끄는 건 앞서 열거한 사례처럼 준공된 지 30년 이상인 재건축 대상 아파트거나, 아니면 재건축을 이미 마친 새 아파트 단지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기로 한 규제완화 공약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주택 공급확대를 위해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재건축부담금(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을 낮추고, 30년된 이상 된 아파트의 안전진단 규제를 풀겠다는 계획 등입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 계획도 서울 재건축 단지에는 엄청난 호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급 주택이 즐비한 강남 등 고가주택 밀집지역에서 재건축 대상 단지가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강남권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대로 얼마든지 고급스럽게 짓고, 그만큼 분양가에 반영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강남 재건축 대상 120단지 9만가구=이런 분위기는 다시금 ‘강남 재건축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기대감을 키웁니다. 최근 서울 재건축 시장의 중심은 단연 대한민국 부촌의 상징인 강남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준공된 지 30년 이상인 아파트 단지가 강남구엔 47개(3만3349가구), 서초구 31개(2만238가구), 송파구 40개(3만5527가구)가 각각 위치해 있습니다.

올해 기준으로 계산하면 강남권에서만 적어도 120개 이상 단지, 9만가구 이상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된 상황인 겁니다.

강남권 재건축 대상 단지는 1970년대부터 시작한 강남 개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반포주공 아파트 1차(준공 1973년)와 압구정 현대아파트(1975~1981년), 잠실 주공아파트(1975~1977년), 반포 주공아파트2·3차(1977년)의 분양을 한 게 197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압구정 한양아파트(1977~1984년), 은마 아파트(1978년~1979년), 반포 경남아파트(1978년), 반포 한신아파트(1977~1985년), 서초 우성아파트(1979~1982년), 도곡 진달래아파트(1980년), 역삼 개나리아파트(1980년), 개포 주공아파트(1981~1983년), 서초 삼호가든(1981~1986년), 서초 삼풍아파트(1988년) 등도 모두 70~80년대 지어졌습니다.

이들 단지는 처음 공급되던 때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아파트는 1977년 1차부터 4차까지 순차적으로 분양했는데 3월 3.3㎡당 28만원에 팔던 걸 9월엔 42만8000원에 분양해도 사람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마지막 분양물량엔 448가구 분양하는 데 2만7000여명이나 청약했을 정도입니다. 60대1이 넘는 경쟁률입니다. 주변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3.3㎡당 50만~60만원까지 급등해 시세보다 쌌기 때문입니다. 강남권에서 분양만 하면 수만명씩 몰리는 요즘 분위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당첨만 되면 ‘로또’에 맞은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역사는 꽤 오래된 셈입니다.

정부는 1977년 급등하는 집값을 잡겠다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시켰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폐지를 추진하기로 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의 출발입니다. 당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는 ‘월급쟁이가 5~7년 정도 벌어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을 상한제 기준 금액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후 결과는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분양가를 아무리 규제해도 강남 아파트값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1978년 1100만원던 반포주공 72㎡ 가격은 1989년 1억5000만원으로 13.6배나 뛰었습니다. 1988년 8월 3억4000만원이던 압구정 현대 196㎡ 가격은 8개월만에 4억5000만원으로 폭등했습니다. 당시 강남 아파트 가격은 10년이 지나면 열배 가까이 뛰는 게 일반적이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강남구는 사람들이 계속 몰리면서 1988년 1월1일 강남구와 서초구로 분리됩니다.

▶로또 아파트의 귀환?=그맘때 즈음부터 강남은 집값 상승의 진앙지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집값 상승의 흐름이 ‘서울 강남-서울 강북-경기도 인기지역-수도권 외곽-전국’ 순서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역대 정부가 강남 주택시장을 집중 타깃으로 삼은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강남엔 사람과 돈이 몰렸고, 온갖 규제에도 폭등세를 이어갔습니다. 강남 불패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강남에선 2010년 이후 새로운 이슈가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강남에 건설된 아파트 단지들이 하나둘 노후화하면서 재건축 대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지어졌던 그 아파트들입니다.

이들 단지는 처음 분양했던 당시 ‘당첨만 되면 몇 년 월급치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 아파트들이 40년 세월을 거치면서 이젠 새로운 테마주, 재건축 대장주로 불리며 주택시장의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게 될 규제완화 기조는 강남 재건축 대상 단지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입니다. 로또 아파트의 귀환입니다.

벌써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규제완화 세부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들썩입니다. 무수한 사례가 많지만 강남 재건축의 대표주자인 압구정현대가 대표적입니다. 이 지역 ‘신현대12차’ 155.52㎡는 3월 51억원(2층)에 거래되더니 한 달도 지나지 않은 4월 15일 59억원(6층)에 계약이 이뤄졌습니다.

80년대 초 준공된 ‘개포우성1단지’ 127.61㎡도 3월 24일과 30일 37억5000만원(1층), 40억9000만원(11층)에 잇따라 계약되며 또다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인근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은 별로 없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많다”며 “요즘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게 신고라라고 보면 된다”고 분위기를 전하더군요.

▶넘사벽 된 강남, 로또의 대물림=씁쓸한 건 이들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수요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1970~80년대 대기업 사원 수준이면 강남에서 내 집 마련을 도모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1977년 정부는 월급을 5~7년 모으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40년이 더 흐른 지금 서울 중간 소득층(5분위 중 3분위)이 중간 가격대(5분위 중 3분위) 아파트를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9년을 모아야 합니다. 중간 소득층이 상위 20%에 속하는 강남권 아파트를 사려면 53.7년이 걸립니다.(KB국민은행 자료) 말 그래도 ‘넘사벽’입니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에선 15억원 이상 아파트 매매에 대출을 아예 금지시켰습니다. 서울 중간 소득층이 월급 이외 다른 소득 없이 강남 아파트를 사려면 50년 이상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새 정부에서 대출규제를 풀어주겠다고 공약을 하긴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가계대출 증가폭이 커서 대통령 의지만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40년 전 중산층이 한번 노려봄 직했던 강남 아파트를 이젠 ‘금수저’ 외엔 쳐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이미 강남에 살고 있는 다주택자거나 그들의 자식이 강남에 새로 태어날 무수한 재건축 단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로또의 대물림’입니다.

40년 만에 화려하게 돌아온 강남 재건축 시장은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고급스러운 단지로 변신할 겁니다. 분양받는데 성공한 소수의 현금 부자들과 대출 규제 등으로 청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대다수의 자산 격차는 그만큼 커질 겁니다.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궁금합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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