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면서 쓰레기 줍기도 ‘소확행’ … 놀이처럼 즐겁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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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6.16. 오전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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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뛰며 쓰레기 치우는 ‘플로깅’
“색다른 경험” 국내에도 속속 상륙
제주도선 바다 쓰레기 수거 축제

SNS엔 매일 뭘 버렸는지 찍어 올려
업사이클링 다룬 감성 잡지 창간도
“환경운동 아닌 일종의 생활 방식”
이도은의 트렌드 리더
지난달 부산 광안리에서는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 진행됐다. [사진 봄나래프로젝트]
지난달 19일 오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조깅 코스로 유명한 이곳에 가볍게 운동복을 입은 20~30대 열여섯 명이 모였다. 가볍게 몸을 풀다가 서서히 바닷가를 뛰기 시작한 이들은 모래사장에 쓰레기가 보이면 잠시 멈춰 줍고는 다시 속도 내기를 반복했다. 부산지역 청년 모임 ‘봄나래프로젝트’의 주최로 열린 ‘플로깅(Plogging)’이었다.

플로깅이란 ‘줍다’란 뜻의 픽업(Pick up)과 조깅(Jogging)이 합쳐진 말로,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작업을 뜻한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됐는데, 줍는 자세가 마치 하체 근력 운동인 ‘스쿼트’와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해 색다른 피트니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칼로리 소비가 일반 조깅보다 많다고 알려지면서 이제는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1 run 1 waste’ 등의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날 참가자였던 대학생 양정혜씨는 “그저 함께 뛰면 된다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했다”면서 “보통 조깅보다 더 운동도 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쓰레기 문제는 최근 뜨거운 사회적 이슈다.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에 이어 향고래·녹색거북이 등 해양 동물들이 바닷속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은 채 발견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과거와 양상이 달라졌다.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환경단체에서 흔히 하는 서명 운동이나 특강, 책자·영상 제작을 벗어나, 쓰레기 절감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콘텐트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광고 문구 그대로다.

제주 '비치코밍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플라스틱 돌하르방. 해변 쓰레기가 작품으로 변신했다. [사진 재주도좋아]
일 년에 두 번씩 제주도에서 열리는 ‘비치코밍 페스티벌’ 역시 재미를 담아 시작된 쓰레기 수거 프로젝트다. 비치코밍(Beachcombing)은 빗질하듯 바닷가 표류물·쓰레기를 모으는 작업. 디자이너·영상제작자·일러스트레이터 등 6명으로 구성된 창작집단 ‘재주도좋아’는 축제를 통해 참가자가 봉투에 쓰레기를 가득 담아오면 이를 다시 활용해 아티스트와 함께 작품을 만든다. 요즘 인기 높은 뮤직 페스티벌식의 라이브 음악 공연과 플리마켓도 함께 진행한다. 재주도좋아의 조원희 대표는 “이제는 정식 참가자만 400명이 넘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면서 “매력적인 문화 콘텐트가 돼야 규모는 작아도 지속가능해지기에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매일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찍어 기록한 '쓰레기 관찰기'. [사진 쓱싹쓱싹팀 그림]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 역시 예전과는 달라졌다. ‘얼마나’보다 ‘어떻게’에 초점을 둔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새벽·그림·복순(모두 아이디)은 지난해 4개월간 ‘쓱싹쓱싹!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를 벌였다. 그 중 4주는 하루하루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모아 사진 찍고 이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쓰레기 관찰기’였다. “오늘 뭘 입었는지, 뭘 먹었는지처럼 뭘 버렸는지도 기록하다 보니 쓰레기는 나를 관찰하고 보여주는 또다른 매개체였다”는 게 이들의 소감. 이후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쓰레기덕질’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 직접 포장 용기를 가져와 장을 보는 식료품점 '더피커' 내부 모습. 국내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가게다. [사진 더피커]
또 서울 성수동 카페 겸 식료품점 ‘더피커’는 국내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로 오픈했다. 포장 없이 손님이 직접 용기를 가져와 곡물과 채소·과일 등을 담아가야 한다. “이렇게도 장을 볼 수 있다는 경험, 이렇게도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발견의 기회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송경호 대표의 설명이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잡지 '쓸'이 쓰레기를 주제로 찍은 화보. [사진 제로마켓]
아예 쓰레기 줄이기가 주제인 잡지도 창간됐다. 소셜 벤처 ‘제로마켓’이 만든 ‘쓸(SSSSL)’이다. 업사이클링 교육·전시·행정분야에서 일하던 배민지 대표는 “업사이클링 하나만도 엄청난 스토리가 있지만, 기존 방식으로는 깊이 있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재래시장 찾아 비닐 덜 쓰기, 일회용 빨대 대체품 구하기 등 일상에서 쓰레기 해법을 찾으면서도 감성 있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잡지는 화보·인터뷰·칼럼 등 여느 독립 매거진과 비슷하게 구성돼 있다.

올 2월 창간된 잡 지 '쓸'의 2호 표지. [사진 제로마켓]
이처럼 과거와 다른 쓰레기 해법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 현재 사회·문화 트렌드와 소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의 특징이 공익 활동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사실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공익활동 연구 프로젝트로 발간된 ‘밀레니얼 매거진(2016)’에 따르면, 이들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기성세대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른바 5M로, 재미(Entertain Me)·경험(Now Me)·영향력(Enlarge Me)·기술(Tech Me)·의미(Inspire Me)를 중시한다. ‘기왕이면 재미있게, 내 방식대로, 여럿이 함께’다.

부산 플로깅을 처음 제안한 박시훈씨 역시 행사 취지로 ‘재미’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처음엔 보여주기 좋은 환경 퍼포먼스 같은 걸 기획했지만 ‘나도 재미없는 걸 누가 하겠나’ 싶어 바꿨다”며 “2014년 등장했다 최근 다시 진행되고 있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찍어 공유하는 루게릭환자돕기 운동)’처럼 의미와 재미가 같이 가는 캠페인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쓰레기 관찰기를 올린 새벽도 “버리는 양을 줄여나가는 효과뿐 아니라 쓰레기를 주제로 댓글로 소통하는 재미가 새로웠다”고 털어놨다.

또 콘텐트 공유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공익활동 역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가 아니라 ‘오른손도, 남의 양손도 모두 알게 해야’한다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여기에 소셜 미디어는 중요한 소통의 플랫폼이다. 해시태그를 달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동참하는 행태 역시 이 세대의 특징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쓰레기 문제를 대하는 관점이다. 이들은 단지 환경 운동이 아닌, 일상을 관통하는 생활 방식으로 인식한다. 최근 2~3년 새 ‘킨포크’(친구·가족과 자연 속에서 행복을 즐기는 생활), ‘휘게’(가족과 집안에서 여유로움을 느끼는 삶), ‘라곰’(느긋하면서도 균형 잡힌 생활), ‘미니멀라이프’(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는 생활)까지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삶’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나의 트렌드로 나타나면서 ‘웨이스트리스(Wasteless)’ 역시 그 맥락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트렌드코리아2018』의 공동저자인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는 “밀레니얼 세대는 거대한 담론보다 액션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페이크퍼를 입고 텀블러를 쓰는 것처럼,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고 분석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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