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이야기로…‘스토리텔링’ 능력 키워드립니다

입력
기사원문
나윤석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스토리 강좌’ 열풍 … 박찬욱 등 거장들 ‘일타 강사’로 나서

김영하·장항준·윤종빈·천지혜

온라인 플랫폼서 ‘족집게 과외’

내러티브 구축 노하우 등 전수

“인생 한번은 창작 경험해 봐야”

전문가들 “모든 콘텐츠가 자본

스토리텔링 중요성 점점 커져”


소설가 김영하가 스토리텔링 강연에서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공이자 작가이며 편집자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과정이다.” (소설가 김영하)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K-콘텐츠의 연이은 흥행 속에 서사 창작 노하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영하 작가, 박찬욱·장항준·윤종빈 감독 등 스타 창작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스토리텔링 일타 강사’로 나서며 이런 관심에 부응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영화·드라마·웹소설·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기반이 되는 내러티브 구축 비법을 짚어준다. 이들의 ‘족집게 과외’에 일반 대중도 호응하며 일부 플랫폼(클래스101)은 스토리텔링을 포함한 글쓰기 강좌를 1년 새 5배나 늘리기도 했다.

◇“이야기는 삶을 돌아보는 것…인생에 한 번은 스토리 창작해봐야”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북클럽을 운영하는 등 누구보다 발 빠르게 트렌드를 포착하는 소설가 김영하는 지난해 7월부터 온라인 교육 플랫폼 패스트캠퍼스에서 ‘내 안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쓰는 법-스토리텔링의 실제’를 강연하고 있다.

영화감독 장항준(오른쪽)이 공감 가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


그는 삶을 사는 것과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영하는 “인생에 한 번은 상상의 이야기를 창작하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며 “스스로 인생을 차분히 복기하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쓸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타인과 공감하며 일종의 심리적 치유에 이를 수 있다”고 부연한다.

김영하는 좋은 이야기의 요건으로 사건의 독창성을 꼽는다. “일반 글쓰기와는 다른 기술이 필요한 이야기엔 주인공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으로 세계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 곧 이야기다. 주인공이 ‘그냥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라는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투쟁의 양상이 달라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네마 거장’ 박찬욱 감독은 플랫폼 바이블에서 ‘영화 연출과 각본가의 길’을 강연한다. 총 18회차로 이뤄진 이 콘텐츠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구현하는 시나리오 쓰기에 가장 많은 3회차를 할애했다.

박찬욱은 우선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의 의미를 일깨운다. 그는 “초보자의 문제는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조차 못 한다는 것”이라며 “끝까지 써본 경험이 없다면 작가가 아니다. 나쁜 작가조차 못 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정 좋은 생각이 안 나면 ‘싸구려 클리셰’를 동원해서라도 신(scene)을 메워라. 끝까지만 갈 수 있다면 문제의 그 아쉬운 장면으로 돌아가 어떻게든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박찬욱은 스토리텔러의 기본 자질과 관련해 “쉽게 만족하지 말고 기준을 높게 가져라”고 말한다. “‘이만하면 된 거 같은데…’라며 대충 타협하면 안 된다. 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들과 비교하며 작업을 하는데도 이 정도밖에 못 만들고 있다. 기준조차 낮다면 아무것도 안 된다.”

바이블이 제공하는 박찬욱 감독의 강연.


영화 ‘기억의 밤’ 등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은 ‘읽다가 밤새는 웹소설의 비밀’(탈잉)을 쓴 웹소설 편집자 스텔라와 함께 ‘드라마와 영화가 되는 스토리 창작’ 콘텐츠에 참여했다. 온라인 사이트 탈잉에서 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수강생이 쓴 우수한 대본을 제작사와 연결해주는 혜택을 내걸었다.

장항준은 “영상 기술이 뛰어나도 좋은 이야기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며 캐릭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야기는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가는 것인 만큼 공감 가는 캐릭터 창조가 1순위”라는 것이다. “악당인 ‘빌런’조차 ‘나와 비슷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대중이 빌런에게 공감하면 그 콘텐츠는 대박 난다.” 장항준은 거창한 메시지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팁도 건넨다.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와 셰익스피어 시대에 나올 메시지는 다 나왔다”며 “주제 의식보다 ‘잘 읽히는 이야기’에 집중해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영화 ‘범죄와의 전쟁’ ‘공작’의 윤종빈 감독,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에 참여한 기하라 히로카즈 전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국장, 네이버 웹소설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으로 2000만 뷰를 기록한 천지혜 작가 등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온라인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연 중이다.

◇“스토리텔링은 기초능력…비대면 시대 중요성 더 커질 것”

전문가들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 ‘모든 콘텐츠가 자본이 되는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진단한다. 미디어 연구자인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영화·드라마 창작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토막글과 영상을 올릴 때도 ‘스토리 편집력’은 필수”라며 “스토리텔링 열풍엔 ‘잘 만든 스토리 하나면 부와 명성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도 “미국 아마존이 직원들의 ‘파워포인트(PPT) 발표’를 금지한 건 그림과 사진으로 현혹하지 말고 이야기가 있는 글로 승부를 걸라는 얘기”라며 “스토리텔링은 누구나 갖춰야 할 ‘기초 능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메타 인지’를 통해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말과 표정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어려운 비대면 시대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