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연 목사의 왕성교회 세습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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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2.10.08. 오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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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길자연(71)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담임목사로 있는 서울 왕성교회가 길 목사의 아들에게 담임목사직 세습을 확정지었다. <한겨레>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왕성교회에서 열린 공동의회(총회)의 전말을 지켜봤다.

이날 공동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왕성교회 앞은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쪽과 찬성하는 쪽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은 1인 시위를 하며 “교회 세습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국교회를 망하게 하는 일입니다”라고 외쳤다. 왕성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백발의 방 목사를 밀치며 “우리가 세습을 하든 말든 그게 너희들하고 무슨 상관이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왕성교회 장로들은 지난달 27일 비공개로 당회(장로들의 의결기구)를 열어 길자연 목사의 아들인 길요나 과천 왕성교회 목사를 왕성교회 담임목사로 추대하는 안건을 85.5% 찬성율로 통과시켰다. 이날 공동의회는 전 교인이 참석해 이 안건을 확정지을지 결정하는 자리였다.

공동의회는 엄격한 통제 아래 진행됐다. 공동의회가 열린 교회 본당 3층 앞에선 목사들이 교인들의 얼굴을 일일히 확인한 뒤 출입증을 내줬다. 취재진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공동의회에서 교회 쪽 청빙위원장은 세습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다. “세습은 교회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직의 승계이며, 부의 세습이라는 건 세속의 눈으로 본 것일 뿐입니다. 650개가 넘는 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자녀에게 승계했고 99%가 성공했습니다.”

길요나 목사를 치켜세우는 소개도 이어졌다. “길요나 목사는 태어나기 전부터 기도로 준비되어 왔고, 믿음의 명문가정에서 자라왔습니다. 길 목사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지 않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 아버지와 단절까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박수를 치는 교인도 있었지만, 일부 교인들은 실소를 터뜨렸다.

공동의회가 시작된 뒤 투표로 들어가기 전 50여분의 시간 동안 반대 의견은 철저히 차단됐다. 한 30대 교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요나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던 과천 왕성교회에서 무슨 성과를 냈는지 말해보라”며 항의했다. 사회를 맡은 목사는 “투표로 말하는 것만 적법하다”며 교인들에게는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한 50대 교인은 “투표 전에 후보자를 지지하는 발언은 적절치 않다, 왕성 교인인 것이 부끄럽다”고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교인들이 이 남성의 멱살을 잡으며 실랑이를 벌였다.

투표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찬성율 70.1%(유효투표 1476표 중 찬성 1035표, 반대 441표)로 안건 통과 기준인 65% 찬성률을 간신히 넘긴 것이다. 길요나 목사가 새로운 후임자임이 선포되자 세습에 찬성한 교인들은 환호성을 올렸지만 반대표를 던진 교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한 교인은 “이 교회를 그만 다녀야겠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교회를 빠져나갔다. 다른 교인은 “감리교에서 세습 금지법을 통과시킨지 얼마나 됐다고 세습을 하는지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반대하는 신도들로 인해 우리 교회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줬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주 전인 지난달 25일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국내 개신교 교단 중 처음으로 ‘세습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신도 1만여명의 왕성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이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한국 개신교 지도자를 자임하던 길자연 목사의 세습은 한국교회의 수치다. 대형 교회 세습은 북한의 3대 세습, 재벌의 편법 세습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근 개신교계에서 세습 반대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김동호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겨우 15표를 더 얻어 통과를 한 것을 보니 결과가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70%의 찬성율로 안정적인 목회를 하기는 어렵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다른 교회는 세습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투표가 끝난 뒤 길자연 목사가 단상에 섰다. “법과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언론과 외부의 방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법으로 갈 것입니다.” 길 목사의 말이 끝나자 교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본당 내 작은 술렁임과 한숨소리는 드높은 찬양 소리에 묻혔다.

조애진 김지훈 기자 ji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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