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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반미청년회 주사파 경력 지울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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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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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충남지사의 상승세가 파죽지세로 올라오며 문재인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반기문의 중도포기로 인한 효과도 있지만 안희정지사의 우클릭? 행보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가령 공짜밥은 없다.삼성 이재용 구속기각에 대해 존중한다.새누리당과의연정, 사드배치합의존중. 발언등 보수층의 표를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연 안희정 지사 과연 우클릭? 행보가 성공할지 두고 볼일이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선 주자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대선출마 초기 그가 ‘차차기’를 노릴 것이라는 주장이 쑥 들어갔다. 


하지만 안 지사의 과거 운동권 NL주사파 경력 과 노무현정부 불법 대선자금 관리 및 유용 소문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번 포스팅 에는 안 지사의 과거 주사파활동과 반미청년회에 대해서 알아본다.


 


위 기사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KAL기 폭파사건은 남한의 조작이라고 날조한 대자보를 대학가에 붙여온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적발 기사. 여기에 안희정 현 충남지사(당시 고려대 철학과 4 휴학중)  이름이 보인다.(1988,3,21자 기사)



안 지사는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 투옥경력이 있다. 1987년 고려대 애국학생회를 결성한 뒤 건국대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 사건 배후로 지목돼 구속됐고, 1988년에는 전국 대학에 반미청년회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됐다. 두 번 다 NL 주사파 운동권 논리가 깊숙이 개입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떠들썩 하게 했던 반미청년회는 어떤 단체였나.


자민통(자주·민주·통일그룹) 이전에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쥔 것은 주사파 지하조직인 반미청년회다. 책임자는 조혁 씨다. 주사파 조직은 총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중심은 북한 노동당이기 때문이다. 조 씨는 1998년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참여했다. 반미청년회의 2인자 격인 인물이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1987년 결성된 전대협은 사실상 반미청년회가 ‘조직한 것’이다. 우상호, 오영식, 이인영 의원이 반미청년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반미 청년회는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 지하조직이었다. 사법부는 반미청년회 관련 90노762 판결에서 『반미청년회는...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확정적 인식하에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을 한 점의 의문 없이 그들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념을 펴기 위하여 구성됐다』고 판시했다. 


사법부는 또 99노122 판결 등을 통해 『서울대 구국학생연맹, 고려대 반미청년회 등 민족해방(NL)계열 주사파 학생운동권 지하조직』이라 하여 반미청년회 등이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 지하조직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조갑제닷컴 안희정의 反美청년회, 어떤 조직이었나? 참조)

  

반미청년회는 고려대 「애국학생회」를 모체로 하는데, 87년 10월 중순 홍익대에서 김일성 주체사상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추종하는 「반미청년회 추진위」를 결성하고, 88년 1월 정식 출범했다.(「좌익운동권 변천사」, 1999년, 경찰청 刊, p. 208)


 프리존미디어 강길모 전 대표는 월간조선 2006년 12월호 등에서 『나는주사파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핵심맹원이었다』며 10여 명을 주사파 출신으로 언급했었다. 

  

  반미청년회 교육책을 담당했었던 강전 대표는 2007년 4월21일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 한국발전연구원(이사장 안무혁) 초청 조찬강연에서 자신이 교육시켰던 대표적인 주체사상 신봉자로 『안희정』을 꼽았다. 강 전 대표는 당시 안 지사가 노무현의 대북밀사로 북한과 접촉한 일과 관련,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지금까지 그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생각이 바뀌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특사로 갔으니 북측은 「오냐 내 새끼」라고 했을 것이다. 장군님이 바라는 것을 말만 해주면 알아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권력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니 김정일은 남한 권력을 친구로 여길 것이 분명하다.』(조갑제닷컴 안희정의 반미청년회 어떤조직이었나 참조)


반미청년회는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조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대협을 만든 후 서총련·한총련으로 조직을 확대해 간다.

 

전대협의 주류인 NL의 혁명론은 북한 혁명론을 직수입한 것으로, 반미투쟁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른 투쟁을 결합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사진은 전대협의 폭력 시위 모습.


프리존미디어 강길모 전 대표(당시 인터넷 미디어협회 회장)는 2009년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력서 뒤에 전대협 출신이라고 되어 있으면 백프로 주사파 이거나 주사파 조직에 의해 지도·관리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대 총선에서는 열우당 내에서 전대협 출신이 12명이었다. 보좌관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전했다.




강 전 대표는 연세대 신학과 82학번으로 전대협 결성을 주도한 반미청년회 출신이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지도부를 형성한 그룹이니 이를 결성한 반미청년회 일원이라면 운동권386 지도부 중에서도 핵심인 셈이다.


강 전 대표는 “20년 전에 주사파였던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주사파냐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 주사파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주사파적 뇌세포 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도식적인 친북반미 논리입니다. 주사파 출신들은 무조건적 반미, 습관화된 반미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미의식이 생활화된 신념 체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라 주장했다.


 당시 자신이 사회주의 혁명운동가이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면 노동운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85년 군대를 다녀온 이후 운동권 조직을 휩쓴 주사(主急)열풍을 접하게 되면서 진로를 바꿨다.


주사파는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자신들의 사회주의 혁명논리로 받아들인 이들이다. 강 회장은 주사파들이 북한의 직접적인 지령을 받았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주사파들이 북한의 직접적인 지령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법적으로 단죄할 때에는 일심회처럼 북한과 커넥션이 있었느냐는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주사파들이 ‘내재적 접근 방법’이라는 궤변을 가지고 북한을 이해하고 용인하고 있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권 때 이들이 청와대를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는 있지만 ‘대한민국이 적화된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를 했었죠.”


한편 안 지사는 15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젊은 시절 안희정은 반미청년회를 이끌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했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는 "청년기에 북한을 움직이는 주체사상에 대해 학습했지만, 대학교 때 섭렵했던 많은 사상과 사회주의 이론 중 하나였다"며 "전향했냐 아니냐고 묻는 것은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어 안 지사는 "민족주의적 독립정신과 민족해방 정신이라는 것은 작은 나라의 민족사에서 태어난 청년으로서의 패기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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