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정재계 네트워크 총동원…박정호 '윈윈전략' 주효
中, SSD 가격제한 등 조건부 승인에도…전문가들 "통상적"
국내 업계, D램 이어 낸드에서도 ‘과반’
중국 SAMR은 초보심사, 진일보심사 등을 거쳐 SK하이닉스·인텔 낸드 기업결합(M&A)건을 이날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사업부를 국내 M&A 사상 최고액인 90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지 14개월 만이다. 이제 SK하이닉스는 인텔의 SSD 사업 부문과 낸드 단품 및 웨이퍼 비즈니스 관련해 중국 다롄에 있는 생산시설을 인수하게 될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이번 승인으로 낸드플래시 글로벌 시장 업계 2위를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매출 비중은 11.6%, 인텔은 8.6%다. 양사가 합쳐지면 글로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가 되며, 2위 자리의 일본 키옥시아의 점유율(19.5%)을 앞지를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와 점유율을 합치면 50%를 훌쩍 넘게 된다. D램에 이어 낸드 시장에서도 국내 업계가 ‘과반’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인수를 위해 최 회장은 물밑 지원을 깊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포럼, 상하이포럼, 남경포럼 등을 매년 개최한 데 이어 보아오포럼에도 오랜 기간 참여하면서 중국 정부는 물론 정계·재계 네트워크를 쌓아온 덕을 톡톡히 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 회장은 지난 9월 중국사업총괄로 임명한 서진우 부회장을 중국으로 보내 우시·다롄 정부 주요 관계자를 만나 중앙정부에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인수 승인 필요성을 설득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7년 키옥시아 지분 투자에 대한 중국 승인 심사 당시 최 회장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투자 필요성을 역설하고 결국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SK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정호 부회장 역시 자신이 강점인 M&A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텔 낸드 인수팀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박 부회장은 국내외 시장 관계자들에게 이번 딜이 SK하이닉스, 인텔은 물론 중국과 미국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 딜임을 설파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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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자국보호 ‘6개 조건’ 달아
물론 꺼림칙한 부분도 있다. 중국 당국이 자국 사업 보호를 위해 솔리드 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제품 가격 인상 금지 등의 6개 조건을 내건 ‘제한적 승인’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중국이 내건 6개 조건은 먼저 PCIe 엔터프라이즈급 SSD 제품과 SATA 엔터프라이즈급 SSD 제품을 중국 내 시장에 부당한 가격에 공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해당 제품을 판매할 때 계약 조건이 비슷한 상황이라면 발효일 전 24개월 간 평균 가격보다 높아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또 발효일부터 5년간 PCIe 엔터프라이즈급 SSD 제품과 SATA 엔터프라이즈급 SSD 제품의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아울러 공평, 합리, 차별 없는 원칙에 따라 중국 내 시장에 모든 제품을 계속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 당국은 SK하이닉스 또는 SK하이닉스가 통제하는 어떤 회사도 중국 내 시장의 고객에 배타적으로 제품을 구매하도록 강제할 수 없고, 묶어 팔기 등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밖에 △PCIe 엔터프라이즈급 SSD와 SATA 엔터프라이즈급 SSD 시장에 제3의 경쟁자가 진출하도록 돕고 △판매 가격, 생산량 혹은 판매량 방면에서 중국에서의 주요 경쟁 상대와 경쟁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어떠한 서면이나 구두 협의, 결정 혹은 기타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제한조건은 발효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회사가 시장감독총국에 해제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이 이 같은 조건을 단 건 합병 이후 시장 지위를 남용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 경쟁 당국이 승인을 내주면서 조건을 다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며 “통상적으로 기업이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조율하기에 기업결합 절차 자체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도 “SSD 가격 제한 등은 SK하이닉스 쪽에서 너무 아픈 사안들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