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지금 사도 괜찮을까?…이미 많이 올랐다 vs 주택 공급 여전히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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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현장진단]

서울 지하철 4호선 미아역 4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약 15분 동안 걷다 보면 비교적 경사지면서 한적한 동네가 나온다. 서울 강북구 번동이다. 주택 노후화가 심하고 경사는 가팔라 서울에서도 재개발이 꼭 필요한 곳으로 꼽힌다. 특히 번동 148번지 일대는 암암리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재개발 후보지. 2021년 4월 공공 재개발에서 민간 재개발로 선회한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이곳은 요즘 오래된 노후 빌라(다세대주택)가 인기를 끌고 있다. 2021년 초 1억7000만원에 거래됐던 한 빌라는 최근 2억6000만원에 팔렸다. 번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실수요자 위주였던 지역이지만 2020년 말부터 투자 수요가 늘었다”면서도 “최근 들어 주택 경기가 다소 위축되고 금융 규제가 강화되면서 호가가 다소 떨어진 매물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강북구 번동 일대 빌라 밀집 지역. (윤관식 기자)


▶2021년 역대급 빌라 시장

▷14년 만 최고 가격 상승률

2021년 서울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빌라의 강세다.

2019년 월평균 약 3500건 수준이었던 서울 빌라 거래량은 2020년 월 4913건으로 치솟았다. 2021년 빌라의 강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2021년 상반기 서울 빌라 월평균 거래량은 5460건에 이르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1년 11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건수는 3293건으로 조사됐다.

지난 몇 년간 서울 빌라 매매 거래량은 아파트의 절반 이하 수준이었다.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낮고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대출까지 막히면서 비교적 저렴한 빌라로 시선을 돌리는 수요자가 늘었다.

급기야 2021년 빌라 거래량은 아파트를 앞질렀다. 2021년 1월 빌라 거래량은 5883건으로 아파트(5771건)를 넘어섰다. 이후 11월까지 아파트 거래량을 웃돌고 있다. 서울 전체 주택 거래량 중 빌라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1월 50.3%에서 3월 57.5%, 6월 58.1%, 9월 60.7%, 10월에는 63.9%까지 늘었다.

물론 아파트 가격이 워낙 오르다 보니 아파트 거래량 자체가 많이 줄어 빌라 거래량이 돋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1년 가까이 빌라 거래량이 아파트 거래량을 앞지르는 것은 이례적이다.

빌라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서울시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재개발 등을 노린 수요가 늘어난 것이 빌라 매매 활성화의 한 요인으로 보인다.

아파트 가격이 워낙 비싸져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진 것도 중요한 이유다.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여전히 많다. 하지만 가격이 크게 뛴 아파트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실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빌라 시장으로 옮겨 갔다는 분석이다. 각종 대출 규제나 금리 인상 등의 영향도 있다. 재개발을 노린 투자 수요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래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가격도 오르는 법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평균 매매 가격은 3억5038만원. 처음으로 3억5000만원을 넘어섰다. 1년 전인 2020년 11월(2억6365만원)과 비교하면 32.9% 급등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10월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 통계 자료를 봐도 비슷한 흐름이다. ‘10월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에 따르면 2021년 1~10월 서울 빌라 가격지수는 12.94% 올랐다. 이미 2020년 한 해 상승폭(10.25%)을 넘어서는 수치다. 연간 기준 26.3% 올랐던 2007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전망은 어떻게

▷정치적 변수 따라 달라질 수도

2021년을 휩쓸었던 빌라 열풍이 새해에도 계속 이어질까.

최근 빌라 시장은 과열 양상에서 다소 진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단기간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감 등의 여파로 매수세가 다소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주택 시장이 위축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금융당국의 돈줄 죄기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서울 집값은 두 달째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초부터 이어져온 거래 절벽 현상은 심화됐고 가격 상승폭은 둔화됐다. 아파트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빌라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주택 시장이 전반적으로 가라앉다 보니 빌라 매수 문의가 많이 줄었다”며 “이미 빌라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이라 문의를 하는 사람들도 선뜻 거래에 나서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빌라 시장이 변곡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빌라는 아파트보다 감가상각이 큰 상품이다. 일반적인 선호도가 낮다. 많은 땅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보다 공급하기 쉽다. 즉, 변동성에 취약해 주택 시장이 조정기에 접어들수록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한 이후 후폭풍으로 빌라 매입이 이어진다. 이는 무주택자의 불안 심리가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빌라 시장은 아파트 시장을 후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아파트 시장 상황을 따라가게 된다”고 말한다.

빌라 가격이 급등했던 2007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2006년과 2007년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덩달아 빌라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주택 시장이 침체기로 돌아서면서 빌라는 상대적으로 더 큰 하락을 경험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아파트 규제 흐름이 이어진다면 풍선 효과가 계속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택 실수요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파트 대체재로 빌라를 선택하는 실수요가 유지될 수 있다. 재개발 등 개발 호재가 있는 곳은 여전히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어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논리다.

임대차 3법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2022년 하반기가 되면 2020년 시행했던 전세계약청구권이 만료되는 주택이 대거 나온다. 이는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빌라 매매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정치적 변수다.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와 서울시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부동산 정책에 큰 변화가 있겠다. 만약 오세훈 시장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재개발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스럽게 노후 빌라를 중심으로 거래량이 늘어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서울 내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파트보다 대지지분이 넓은 빌라는 여전히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 다만 일부 현장에서는 지나치게 장밋빛 청사진만 보여주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1호 (2022.01.05~2021.01.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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