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의 명암… 유행의 선도자·여론 주도자이지만 자극적 글 재생산 공장 노릇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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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2.09.07. 오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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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임신부 폭행 사건’ 등 다양한 이슈

ㆍ오프라인으로 막강한 파급력

ㆍ제품 비평이 업계 판도 바꾸기도

지난해 5월 MBC 인기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아쉽게 편집된 독한 몸개그”라며 미방영분 한 편을 공개했다. 영상 속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 멤버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는, 일명 ‘웃으면 볼기 맞기’ 게임을 벌였다. 시청자들은 미방영분에서만 볼 수 있는 ‘B급 유머’ 코드에 배꼽을 잡았다. 당시 이를 본 누리꾼들은 웃기에 앞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 누리꾼에게 TV 속 소재는 어딘가에서 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손바닥으로 엉덩이 때리기, 그리고 때릴 때 등장하는 ‘찰지구나’라는 자막. 18세 고등학생(필명 ‘엉덩국’) 웹툰 만화가가 제작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끈 만화 <성정체성을 깨달은 아이>의 장면들이었다. 누리꾼들은 이날 “엉덩국, 무한도전 진출” “무한도전도 피해갈 수 없는 마성의 엉덩국”이라며 18세 소년이 그린 만화의 ‘위엄’을 찬양했다.

■ 인터넷 문화, 오프라인을 넘보다

‘엉덩국’의 만화,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의 소설, 웹툰 ‘파페포포’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에서 유행한 문화는 오프라인에도 빈번히 침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빠른 침투력을 보이는 분야는 언어다. ‘당근이지’(당연하지)부터 ‘개드립’(개 같은 애드리브), ‘안습’(안구에 습기찰 정도로 불쌍하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커뮤니티가 유행시킨 인터넷 신조어들은 이제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종결자’(논란을 종결지을 정도로 한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의 경우 인터넷보다 언론에서 더 크게 유행했다. 지난해 연예매체들이 쏟아낸 기사 제목에는 ‘종결자’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뒤태 종결자’ ‘미모 종결자’ ‘하의실종 종결자’ 같은 식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종결자’ 시리즈가 ‘누리꾼들이 가장 보기 싫은 기사 제목’으로 선정될 정도였다.

■ 산업 지형 흔드는 커뮤니티의 위력

인터넷 커뮤니티는 산업 지형도 바꿔놨다. 카메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관련 카페가 대표적이다. IT업계에서는 2000년대 초반 개인용 PC인 PDA가 인기를 끌고 DSLR(디지털일안반사식) 카메라 시장이 성장한 바탕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고 설명한다. 제품사용법 등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있었기에 일반인들이 어렵지 않게 IT기기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에 올리는 기업·제품 비평도 시장의 흐름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 대규모 회원이 가입해 있는 커뮤니티에서 특정 회사 상품의 불매운동을 벌일 경우 회사의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회사들은 광고기획사와 연계해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동향을 파악한다. 광고기획사들은 커뮤니티에 게재된 글들을 수집·분석해 특정 기업·제품에 대한 긍정과 부정 여론을 판단한다.

최근 일부 기업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직접 소통해 최신 유행을 잡아내기도 한다.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아디다스’는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유명 스니커즈(운동화의 일종) 커뮤니티 회원들을 초청해 일종의 벼룩시장 행사인 ‘스니커 콘’을 열었다. 아디다스는 이날 파악한 트렌드를 가지고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실험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비주류’들과 소통해 창의적이고 새로운 유행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 임신부 폭행사건, 세상을 뒤흔들다

지난 2월17일 오후 10시, 한 임신육아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자신을 24주 된 임신부라 소개한 한 누리꾼의 글이 올라왔다. “외식업체 ‘채○○’의 지점에서 종업원에게 배를 걷어차이고 밟혔다”는 내용이었다. 누리꾼들은 삽시간에 이 글을 다른 사이트로 퍼나르기 시작했다. 글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수 커뮤니티의 ‘많이 읽은 글’로 선정됐다. 다음날 오전에는 온·오프라인 기사로 모두 인용됐다. 언론에선 이 사건을 ‘채○○ 임신부 폭행사건’으로 명명했다. 이 사건명은 금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검색어를 통해 기사를 본 누리꾼들은 이를 커뮤니티와 트위터로 다시 전파했고, 다른 언론사들도 동일한 내용을 인용해 기사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임신부 폭행사건 기사는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고, 사건은 그주 주말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이는 최근 포털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론형성 과정이다.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 제보가 이런 과정을 거쳐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채○○ 임신부 폭행’과 ‘4호선 막말녀 사건’은 구글이 발표한 2012년 상반기 최다검색어 4, 5위에 각각 오르기도 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왜 언론과 결혼했나

어디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는 사건이 있고, 기사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그런 ‘거리’가 쉽게 나올 수 있는 곳은 비슷한 목적과 생각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정부부처,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 ‘거리’가 나올 만한 주요 길목을 출입처로 삼고 돌아다닌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속성이 비슷하다.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이들이 온라인에 뭉쳐 있다. 언제든 그 분야에서 도는 이야기, 이슈에 대한 논쟁이 불거진다. 기자들이 커뮤니티를 사이버 출입처로 삼아 돌아다니는 이유다.

최근 이 같은 특성이 빛을 발한 곳은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이다. 이곳은 얌체운전, 위험운전을 하는 사람을 제보하는 진원지다. 인천의 모 학교 운동장에서 여고생을 치어 논란을 일으킨 ‘김여사 사건’도 여기서 나왔다. 이 밖에 자동차 결함 관련 제보도 빈번히 올라오기 때문에 자동차 담당기자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곳은 현재 아예 제보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다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육아 관련 커뮤니티에선 어린이집과 관련된 사건 제보가 빈번히 올라와 ‘바늘학대 어린이집’ ‘썩은달걀 어린이집’ 등의 이슈를 만들어냈다. 동물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물학대 사례는 ‘고양이 은비’ ‘악마 에쿠스’ 사건 등을 만들어냈다.

■ 기자가 누리꾼 글을 ‘불펌’하는 시대

이 같은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밀월’ 관계는 문제점을 낳기도 한다. 기자들이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제보에 매달리며 이슈는 획일화됐고, 서둘러 기사를 내보내려다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가는 일도 잦아졌다. 기사의 연성화도 문제다. 다수 언론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우스갯소리, 놀이용 사진을 기사의 형식만 빌려 내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최근 한 온라인 게시판에는 ~한 글이 게재됐다’란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아줌마·언니 구별법’ ‘걸그룹 화장 전후’ 등이 기사로 나왔다. 이런 기사에는 으레 ‘요즘 기자는 아무나 한다’란 댓글이 달리곤 한다.

기자들의 ‘불펌질’(글을 쓴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글을 공유하거나 인용하는 것)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유머글이라 하더라도 작성자가 공을 들여 만든 것인데, 무단으로 복제해 기사 조회수 올리기에 열을 내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이다. 한 누리꾼은 “예전에는 언론사들이 누리꾼들의 불펌글을 고소한다 어쩐다 했는데, 이제는 기자들의 불펌을 누리꾼이 지적하고 있다”며 “뭔가 거꾸로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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