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군포로 송환 68년 동안 北에 요구조차 못한 한심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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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들이 평안남도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증언이 4일 나왔다. 1960년대 북한의 무자비한 숙청으로 일가족이 탄광으로 추방됐다는 탈북자는 최근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를 통해 당시 알고 지낸 국군포로 9명 실명과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군포로 신원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며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유엔이 추산한 국군포로·실종자는 8만2000여 명이다. 당시 연합군은 북한 인민군·중공군 포로 8만3000명 모두를 송환했지만 북한은 유엔군 5000명과 한국군 8800여 명만 돌려보냈다. 이후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괴뢰군 포로' 딱지를 붙인 채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넘게 탄광 발파나 불발탄 처리 같은 위험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대다수가 숨지고 생존자는 수백 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정전협정 이후 68년 동안 북한에 국군포로 송환 요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1994년 고 조창호 소위를 비롯해 2010년까지 총 80명의 국군포로 귀환이 이뤄졌으나 자력 탈출이거나 인권단체 도움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3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국군포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진 적은 없다. 반면 정부는 4·3사건, 여순사건 희생자에 대해선 명예 회복과 보상까지 거론하고 6·25남침 공로로 북한 훈장을 받은 사람을 국군의 뿌리인 양 추켜세우고 있다. 게다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고령의 국군포로들 앞에서 "거제도 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모독하기도 했다.

현충일 서울도서관 외벽에는 6·25전쟁 생존 참전용사 131명 사진과 함께 '마지막 한 분까지 기억하겠습니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달려간 국군포로들이 조국 품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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