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욕망의 대명사
롤리타
하지만 우리는 '롤리타 콤플렉스'가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는 알지 못한다. 간혹 소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책을 실제로 읽은 사람은 또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후자에 속했는데, 이번 기회에 <롤리타>라는 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회자되는지 알아보고 싶어 책을 집었다. 끝까지 책을 읽는데 정말 어려웠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고, 남자 주인공이 역겹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의 마음은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이다. 그렇다면 이번 포스팅을 통해 롤리타 콤플렉스와 이 책을 무슨 상관이 있는지, <롤리타>의 주인공들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롤리타>에 대한 나의 감상평을 얘기하며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롤리타>와 롤리타 콤플렉스의 연관성
<롤리타> 등장인물 소개
<롤리타> 감상평
1. 비유, 묘사 표현들이 좋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2. 한 남자의 일대기 전체를 다룬 완성도 높은 책이다.
이 책은 험버트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그가 어렸을 적 겪은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의 기억에서부터 감옥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고 있다. 책 분량이 500페이지나 되는 것도 이 때문. 보통 다른 책들 같은 경우에는 남녀 주인공의 만남을 중심으로 앞뒤 내용 정도만 다루고 끝난다. 하지만 이 책은 험버트라는 인물의 인생 전체를 다루고 있어서 마치 우리가 그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일장일단이 있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누구보다 주인공 가까이에서 사건을 지켜보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하다. 하지만 후반부 갈수록 지루해진다. 적당히 롤리타가 험버트를 벗어나고 잠적하는 정도에서 얘기를 끝내도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데, 책은 롤리타가 가정을 차리고 그리고 그녀를 험버트에게 벗어나게 도운 남자를 험버트가 찾아 죽이는 장면까지 담아낸다. 책을 다 보고 난 지금 시점에서는 제대로 마무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시원하기도 하지만 읽을 때는 힘들었다. 안 그래도 험버트가 늙으면서 보이는 욕망으로 얼룩진 행동들을 참고 읽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용은 왜 이렇게 많이 남았는지. <롤리타>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 읽기 전에 각오하고 읽기를 바란다. 이 책, 쉽지 않다.
3.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품 특징들이 여럿 보인다.
나는 <롤리타>를 읽기 전에 <절망>을 읽었다. <절망>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인데, 이 작품 역시 비유와 묘사가 뛰어나다. 다음은 <절망>의 마지막 장면이다. '다시 커튼을 걷었다. 서서 바라들 본다. 그들은 수백, 수천, 수백만. 그러나 완전한 침묵. 들리는 건 숨소리뿐. 창을 열고 짤막한 연설을 해볼까'
그리고 중간중간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서술 방식도 비슷했다. <롤리타>의 경우에는 험버트가 독자에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서술 방식이 쓰였다. 예를 들어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나의 수려하고 우수 띈 외모를 마음속에 또렷이 새겨둬야 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그렇다. <절망>의 경우 '독자여 당신이 알 바가 아니다', '얼굴은 들여다보지 말자구요'라며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과 같은 이런 표현들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서술 방식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보다 생생하게 장면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험버트라는 인물에 관해
초반부, 나는 험버트라는 인물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릴 적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정신병을 앓게 되어 어린 소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들을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롤리타를 그는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그저 어린 소녀면 누구든지 사랑하는 남성이었다. 책의 중반부, 험버트는 어느 스페인 귀족의 창백한 딸을 만난다. 그녀에게 너무나 끌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는 아쉬워하며 자리를 뜬다. 이런 상황이 책 속에서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로는 롤리타가 최고라고 하지만 결국 그는 어린 소녀라면 누구든지 사랑하는, 그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동물에 불과했다.
한편 험버트라는 인물은 본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주저한다. 그리고 자신이 롤리타에게 저지르는 온갖 추악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말로는 화려하게 치장할 수 있을지언정 그의 행위의 진정성까지 꾸며낼 수는 없다. 그는 그의 묘사만큼이나 아름다운 인물이 아니다. '나는 범죄라는 것을 의식하면서...'라는 문구처럼 그는 자기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면 행동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욕구 충족 외에 다른 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험버트는 인간의 7대 죄악을 의인화한 인물이었다. 어린 소녀에 대한 색정으로 롤리타에 대한 탐욕을 주체하지 못했으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분노로까지 이어져 살인을 저지르고만 험버트. 이는 롤리타에 대한 질투로 눈이 멀어 과욕을 부리고 결과이다. 그는 분명 자신의 인생을 되돌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에 근거해 교만했고, 나태를 부렸다. 그리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이 이렇게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 때,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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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3.03.04.
추천 ㅣ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