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중반기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 콘트롤타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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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2.01. 오전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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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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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되었다”는 대통령 인식 쏟아지는 비판…정책 대안 외면 ‘불통’ 정부

기대는 이내 급실망으로 바뀌었다. 기자는 ‘부동산시장 정상화 모임’이라는 단톡방에 초대되어 있다. 진보성향의 한국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이 망라된 단톡방이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된 순간은 11월 19일 저녁.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나온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이날 생방송을 주최한 MBC는 25만 명의 국민이 참여한 실시간 채팅에서 추출한 질문 리스트를 제시했다.

‘집값은 이미 오를 대로 올랐는데 정부는 관망만 하나요?’라는 질문이 맨 상단에 나왔다. 진행자는 두 번째와 세 번째로 제시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검찰개혁 문제로 대통령의 답변을 유도했다. 다시 부동산 문제가 질문으로 나왔다.

문 대통령은 답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우리 정부는 설령 성장률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다. (임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고,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 부동산 전문가들, 기대에서 급실망으로



이날 사회를 맡은 방송인 배철수씨는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느냐”고 물었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서울에 사는 주부 이민혜씨는 이렇게 밝혔다. “아무래도 내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대부분 서민의 바람이다. 지금 아파트값이 오르고 있는데,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기 위해서는 보유세를 높이고, 양도세를 낮추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

“워킹맘이라고 밝힌 이민혜씨의 주장이 대통령보다 낫다. 지금은 그게 정답이다. 대통령은 공급을 잘하고 있다고 동문서답하며 이씨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는 검토해보겠다고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관전평’이다.

전 교수는 올해 초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라는 책을 냈다. 부동산정책의 시각에서 대한민국 경제사를 조망한 역작이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대한민국의 성공은 유상몰수·유상분배의 농지개혁에서부터 시작해 ‘평등지권’ 사회가 된 데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평등지권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하면서 토지문제의 중심이 도시토지로 이동한 1960년대부터 한국 사회는 불로소득지향 사회로 탈바꿈했다고 전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책은 최근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도 평가하고 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부동산 불로소득 때문에 발생하는 투기와 불평등을 어떻게 다루겠다는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 후 이 ‘침묵’에 대해 언론들은 참여정부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17차례의 부동산대책은 ‘부동산공화국’을 건드리는 근본 정책이 아니라 부동산시장을 적당히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보유세 강화없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시행한 결과 ‘똘똘한 한 채’로 투기 수요가 집중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임대주택등록제 시행에 있어도 등록한 경우 과도한 혜택을 부여해 거대한 ‘루프홀(loophole·허술한 구멍)’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중반 무렵엔 강남에 이어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서울 전역의 집값이 들썩인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천만원, 몇억원씩 집값이 뛰었다. 집값이 뛰니 거래시장도 얼어붙었다. 오르는 마당에 팔려는 사람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 소득주도성장 아닌 불로소득주도성장?

‘불로소득주도성장’이라는 유행어도 나왔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도 이번 국감 질의 때 인용한 말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주요 정책기조로 하던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풍자다. 기원이 궁금했다. 전 교수 책의 챕터명이다. 전 교수는 지난해 8월 28일 <경향신문>에 실린 시사만화 장도리에서 이 말을 인용하고 있다. “때로는 경제학자 수백 명보다 시인이나 만화가 한 명이 경제현실을 더 잘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다.

만화를 보면 땅 투기를 하는 지주와 ‘을’의 희생으로 가만히 앉아 돈을 걷는 재벌, 그리고 세입자 임대료로 배를 불리는 건물주가 성을 구축하고 ‘소득주도성장’을 비난하고 있다. 성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엔 ‘불로소득주도성장 만세’라고 적혀 있다.

“물론 부동산이라든지 건설경기를 부양하면 단기적인 경제활성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 부작용은 너무 크고, 한 번 그렇게 하고 나면 다시 돌리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 단기부양책의 쓴 열매를 지금 맛보고 있는 것 아닌가.”

전 교수의 말이다. 그는 부동산정책에 관한 한 ‘불통’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이 정부 들어 한 번도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전달한 적이 없다. 신문 등에 칼럼을 쓴 게 전부다. 참여정부 때는 달랐다.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의견을 제시했고, 그러면 정책이 바뀌기도 했다. 당시를 보면 개혁적인 지식인들과 굉장히 소통이 활발했다.”

그는 불통의 원흉을 사회수석 후 정책실장을 하다 물러선 김수현 전 정책실장을 지목했다.

“그 무렵(2018년 7월) 정책실패가 완연했기 때문에 지식인 선언을 한 뒤 비공식적으로 청와대 측을 만났다.(<주간경향> 1287호, ‘소득주도성장론 가고 ‘혁신·포용성장론’ 오나’ 기사 참조) 그때 우리 측에서는 장하성 당시 정책실장과 김수현 수석 교체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뒤는 보다시피 김수현 수석은 정책실장이 됐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좌우하는 실세 수석’ 소문이 나면서 주목을 받은 책이 김수현 수석이 2011년 펴낸 책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이다. 책에는 미간행 기록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탄생 비화(秘話)가 담겨 있다. 종부세에 대한 반대논리를 줄기차게 제기하며 좌초시키려 한 쪽은 기재부였다. 그리고 그것을 거들고 나선 것은 당시 여당, 열린우리당 의원들이었다.

책에서는 ‘진보가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항간의 속설에 대한 해명에 올인한다. 참여정부 시기 부동산값 폭등에서 핵심은 ‘부동산의 금융화’다. 전 세계적인 부동산값 폭등의 사이클에 서울의 일부 지역 특히 강남이나 당시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이 연동된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상대적으로 부동산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정책을 잘 써서 잡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하강국면과 연동된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빚내서 집 사라’라는 최경환 당시 박근혜 정부 경제부총리가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폭락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최근 1~2년 부동산 급등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상승 사이클에 접어들었고, 문재인 정부는 억울하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일까.

시민사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은 여기서 엇갈린다. 전강수 교수는 부동산의 금융화로 시장구조가 2000년대부터 바뀌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정부는 근본대책을 과감하게 썼다는 점에서 내용상 우수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책실패 탓이 훨씬 크다”고 평가한다. 반면 부동산 가격급등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 재도입을 주장하는 경실련 등의 입장은 또 다르다.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 2008년 1월부터 폐지한 2014년 12월까지는 강남 집값이 뚜렷한 안정세를 보였지만 전후로는 급등했다는 것이다.

경실련 제공

■ 진보가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



“많은 사람이 잊고 있는데, 아파트 분양원가를 최초로 공개한 사람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었다. 2004년 2월에 서울 상암동 아파트 분양가를 건축비와 토지비를 나눠 공개한다. 남은 수익 35%는 임대주택을 짓거나 장학기금으로 쓰겠다고 했고, 그 약속은 대체로 지켜졌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의 말이다. 과거 한나라당은 분양원가 공개를 당론으로 만들었고, 남경필·원희룡·홍준표 등 한나라당 소장파가 추진하던 ‘반값 아파트 공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반값 아파트는 토지는 국가나 지자체가 마련하되, 건물값만 내고 들어가는 것으로 가능하며, 현재도 집값을 잡는 데 유효한 해법이라는 것이 김 본부장의 주장이다.

“반값 아파트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 시기의 여당, 오늘의 집권당 쪽이었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것도 노무현 정권 임기가 거의 끝나는 시점인 2008년 1월이었다.”

부동산의 금융화가 글로벌시장과 연계되고 있다는 시각에도 김 본부장 등은 동의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한국에만 존재하며 투기꾼의 돈줄이 되는’ 전세제도와 같은 특수성 때문에 글로벌 연동 현상은 일부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김 본부장 등의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주장”이라며 “재벌 등 문제의 원흉을 제시하기 때문에 때리기는 쉽지만 그것만으로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전 교수나 토지정의시민연대 등 다른 부동산전문단체는 ‘보유세 강화’가 근본적인 해법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조세저항 등을 내세우며 보유세 강화를 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최근 파리나 밴쿠버 등 외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들은 그 불로소득을 세금, 그러니까 보유세로 다 가져가버린다는 점이다.”

프랑스 동포신문 <오니바>를 발행하다 귀국해 보유세강화시민행동이라는 단체를 주도적으로 만든 김제완 좌우간에이념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외국은 보유세로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가져가기 때문에 부동산값 폭등이 위화감이나 박탈감을 야기하는 등 ‘사회갈등’ 대상이 아닌 반면, 한국은 시늉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번 정권 들어서 특히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수억원의 불로소득을 다 얻었다. 집 없는 사람들은 돈을 그만큼 더 내야 하니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김성달 경실련 국장은 “임기반환점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토건부양은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3기 신도시 추진 등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그런 기조라면 집값은 앞으로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경실련과 정동영 의원실 등은 문재인 정부 국토부의 3기 신도시 추진 정책과 관련 “2기 신도시의 정책효과도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만 드러난 상태에서 다시 신도시 건설로 집값을 잡는다는 것은 엉터리 정책에 가깝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는 “어떤 것이 집값을 잡는 주요한 방책일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지만 공시가격 현실화, 보유세 강화, 분양원가 투명공개 및 분양가상한제 전면실시, 3기 신도시 등 대형토건사업의 전면재검토 등의 정책을 추진해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정부는 핀셋규제로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만 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까닭을 잘 모르겠다. 실제 참여정부 시절에 보수·투기세력에게 너무 세게 당하는 것을 보고, 부동산을 근본적으로 건드리면 정권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실 김수현 전 실장을 비판하지만 예전에 친했다. 사석에서 그는 ‘참여정부 때는 부동산정책에 실패했지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거꾸로다. 참여정부는 그나마 성공한 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것이다. 임대주택등록제에 대해 오랫동안 집착해온 그의 도그마 때문에 벌어진 것일까. 지금이라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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