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인간이 아닌 ‘머슴’이”…판결문에 드러난 ‘경비원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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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2.16. 오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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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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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강북구 ‘경비원 갑질’ 입주민에 징역 5년 선고
“오늘 죽어봐라”…판결문에 각종 갑질 담겨
반성문 7번 제출…가해자는 1심 불복해 항소
‘단지 내 주차 문제’로 시작된 한 입주민과의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초소 앞에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형기준이 정한 권고형의 상한을 벗어나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인 고 최희석(60)씨를 상대로 각종 갑질을 일삼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입주민 심아무개(49)씨에게 서울북부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허경호)는 지난 10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심씨가 저지른 여러 갑질에 대한 대법원 권고 형량 범위가 최소 징역 1년에서 최대 징역 3년 8개월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처다. 재판부는 심씨의 7가지 혐의(상해·보복상해·보복감금·강요미수·무고·보복폭행·협박)와 관련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는데, 판결문에는 4월21일부터 5월4일까지 최씨를 향한 심씨의 거친 말과 폭행이 고스란히 담겼다.

■ “경비 주제에…100대 맞아야 한다”

사건의 발단은 아파트 단지 내 주차 정리 문제였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심씨는 지난 4월21일 삼중 주차된 자신의 자동차를 손으로 밀고 있는 최씨에게 다가가 “이 자식아. 경비 주제에 너 우리가 돈 주는 걸로 먹고 살면서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냐”며 손바닥으로 얼굴 부위를 때렸다. 최씨가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폭행은 계속됐다. 경찰이 폐회로텔레비전(CCTV)를 확인했다는 소식을 접한 심씨는 4월27일 오전 11시께 자신을 피해 경비실로 도망가는 최씨를 따라 들어가 화장실에 가둔 채 폭행했다. 그는 “여기는 시시티브이가 없구나? 요○○, 아주 너 오늘 죽어봐”라고 소리치며 최씨의 얼굴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 이날 최씨는 화장실 벽에 수차례 머리를 부딪혀 코뼈 골절상을 입었다.

심씨는 폭행에 이어 최씨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기도 했다. ‘가족 생계’를 이유로 제출을 거부한 최씨에게 “사표 쓰지 않으면 100대 맞기로 했으니 100대 맞아야 한다”, “내가 그랬지? 당신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 “오늘 월요일이지 이번 주 매일 아침 올 거야. 알아서 해”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 경찰 수사 앞두고 무고와 협박

판결문에는 심씨가 경찰 수사를 대비해 무고와 협박으로 최씨를 집요하게 괴롭힌 정황이 자세히 담겨 있다. 심씨는 4월27일 오후 ‘최씨가 자신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해 모욕감을 느꼈고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취지의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했고 5월3일에는 최씨에게 사건과 무관한 교통사고 후유장해 진단서 사진을 문자로 보내 진료비를 청구하고 법적 조처를 할 것처럼 협박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사람들 얘기로 ‘머슴’인 당신의 끝없는 거짓이 어디까지인지 용서할 수가 없다”도 문자로 보냈다. 최씨 형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심씨에게 연락했지만, 거절당했다.

최씨는 계속된 폭행과 협박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다 지난 5월10일 집에서 숨졌다. “경비가 억울한 일을 안 당하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강력히 처벌해달라,” 마지막 순간 최씨는 음성 유서를 남겼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씨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의 폭언·폭력 등이 계속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또 양형 이유를 놓고선 “사직을 강요하고 자료를 조작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범행까지 연이어 저질러 범행의 경위, 방법 및 내용 등에 비춰 사안이 무겁고,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 “입주민 갑질도 직장 내 괴롭힘 간주해야”

심씨는 재판부에 선처를 구할 목적으로 선고 기일을 포함해 재판을 받는 동안 총 7번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되자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입주민의 갑질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는 특수관계인(친인척, 원청회사 등 3자)의 괴롭힘이 포함돼 있지 않다. 이를 보완한 개정안들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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