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미술관, 해외전시 특정작가 작품 검열 의혹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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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7. 오전 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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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주제 다룬 정유승 작가 선정 배제, “공론화하면 작가지원 줄어든다” 갑질까지 [박호재 기자(=광주)]
 

윤장현 전 시장 취임 초기,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을 놓고 광주는 몸살을 겪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김기춘의 꼭두각시로 적나라하게 비하했다는 이유로 광주 비엔날레 측에서 홍 작가의 그림을 내린 것이 논란의 불씨를 만들었고,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와 재단 대표가 사퇴한 것으로 겨우 사태가 종료됐다.

이 과정에서 시종일관 어정쩡한 태도를 위한 윤 시장은 훗날 박 정권 심장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해 또 한 차례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광주에서 다시 작품 검열 논란이 불거지며 지역 문화예술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파문은 최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문제로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시가 개막한지 3일 만에 문을 닫은 이슈와 맞물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조짐이다.

▲성매매의 가부장적 권력구조를 주제로 한 시각예술 작업에 전념해 온 정유승 작가 ⓒ프레시안(박호재)
지난 8월 20일, 광주에서 시각예술을 하는 정유승 작가는 페이스북에 장문의 사연을 하나 공개했다. ”저는 광주에서 시각예술을 하는 정유승 작가입니다”로 시작된 정 작가의 문건은 공립미술관인 광주 시립미술관의 작품 검열을 공론화하는 내용이었기에 지역 문화예술계는 물론 광주 시민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다. 홍성담 작가의 ‘세월 5월’ 사태의 데쟈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정 작가가 밝힌 사태일지에 따르면 지난 4월 공립미술관과 재외한국문화원의 협약전시에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시립미술관 해당 전시 큐레이터로부터 전달받았다. 큐레이터는 작가선정과정, 전시주제, 출품작품 등을 함께 안내했다.

이에 정 작가는 <집결지의 낮과 밤>(광주 성매매 집결지를 다룬 영상)작품사본, 신상정보 파일을 큐레이터에게 보냈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5월 큐레이터는 전시 주제가 ‘에코-자연’으로 변경되었음을 알리며 다른 작품이 있는지 문의했고, 정 작가는 다시 <오늘의 믿음>(성매매 여성의 미신-자연적 샤머니즘을 다룬 영상)을 보냈다. 그러나 일주일 후인 5월 16일 큐레이터로부터 선정작가에서 배제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큐레이터의 요구에 따라 두 차례나 작품 파일을 보냈지만 선정배제 결론에 이른 과정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던 정 작가는 당연히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해 담당 큐레이터는 “재외한국문화원 측에서 정유승작가의 작품이 한국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전시하기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미술관에서는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라는 답변을 했다.

정 작가의 입장에서 예술적 주제에 대한 검열의 문제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정 작가는 담당 큐레이터의 배제사유 해명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명했다. 사실을 확인할 필요성을 느낀 정 작가는 협약전시를 추진 중인 런던 재외한국문화원으로 문의를 했으나 큐레이터의 해명과는 상반된 답변을 받았다.

런던 문화원측은 “공립미술관으로부터 정유승 작가님의 작품 전시를 함에 있어 내용적인 부분에 서 큰 이슈가 없는지에 대한 문의를 받은 바 있었으며, 재외한국문화원에서는 해당 주제에 대해서 전혀 전시 제약이 없음을 전달 드렸다”고 밝혔다.

이어서 문화원측은 “전시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나, 추가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해당 공립미술관에서 더 정확히 안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 답변했다.

결국 재외한국문화원에서 작품을 전시하기 부담스러워했다는 해명은 큐레이터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그후로도 시립미술관 측은 <집결지의 낮과 밤>을 전시에서 배제한 이유에 대해 명백히 설명하지 않았다.

정 작가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여러 정황상 성매매와 여성 인권에 대한 주제를 편견으로 바라봤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큐레이터는 지난 3개월 동안 사유를 명백히 밝혔어야 했다. 성매매 문제는 가부장제 국가체제 혹은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로, 이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기는커녕 국가기구와 민간사회 양자의 외면이나 적대와 증오로 은폐되어온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이를 예술적 주제로 다루려는 제 작업에 대해 임의적인 '판단'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검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정 작가는 “최근 아이치 비엔날레서 한국의 소녀상 작품이 검열당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많은 검열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인권평화도시인 광주의 공립미술관이 이러한 문제를 앞장서 해결해 나가야 할 공적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작품이라 여기고 구분하는 행태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더구나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갑질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립미술관 측의 행태도 드러났다.

정 작가가 담당 큐레이터와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모든 전후 상황을 덮어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시에 다시 참여해라. 전시는 미술관과 작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큰 그림을 그려라. 이런 문제로 시끄러우면 작가지원 예산이 줄어들 것이니 공론화하지 말라”는 등 마치 시립미술관 측이 작가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듯 한 충격적인 내용이 확인됐다.

 

▲광주 시립미술관의 작품 검열 의혹을 공론화하기 위한 지역예술가 집담회가 26일 오후 7시 아이플렉스 1층(동구)에서 열렸다ⓒ프레시안(박호재 기자)

작가의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이번 문제를 정 작가 개인의 상처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취지에서 지역 예술인들의 집담회가 26일 오후 7시에 열렸다.

정 작가를 비롯해 이날 집담회에 참석한 예술인들은 ▲작품 검열 의혹에 대한 해명 ▲미술관 측의 공식 사과 ▲재발방지 대책 등 세가지 사후 조치를 시립미술관 측에 촉구했다.

예고 없이 집담회장을 찾은 전승보 미술관장은 이에 대해 “그동안 과정을 잘 몰랐다. 진상을 파악한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또 변길현 학예실장은 “전시 주제에 집중하려 했다”고 말하며 “전시 추진 과정에서 큐레이터가 실수를 했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나부터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미술관 측의 향후 조치가 미흡했을 때 국민신문고 청원, 미디어 전파 등 보다 강경한 후속행동을 예고했다.

집담회 마지막 발언을 요청받은 정 작가는 “작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큐레이터의 말이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호재 기자(=광주) (pj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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