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유통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정부가 도입한 유통관련 지침·규제를 업계가 우회하는 상황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사각 지대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법을 지키는 쪽이 바보’라는 자조(自嘲)도 나온다.
편의점 출점이 어려워지자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자사의 H&B 스토어(랄라블라)에 유사 편의점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한다. 법적으로 편의점이 아닌 매장에서 편의점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GS리테일은 “H&B스토어를 방문하는 소비자가 식품도 구입을 원하기 때문에, 소비자 요구에 부응했다”며 “매장 융·복합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롯데슈퍼가 시범운영 중인 ‘델리카페’도 비슷하다. 델리카페는 편의점처럼 컵라면·도시락·삼각김밥 등을 판매한다. 테이블·전자레인지 등 취식·조리 공간도 있다. 델리카페 1호점은 인근 50m 이내에 편의점이 2개다(CU·GS25). 델리카페 2호점도 바로 맞은편에 편의점(세븐일레븐)이 있다. 이에 대해 롯데쇼핑은 “편의점과 상품군이 일부 겹치긴 하지만, 델리카페와 편의점은 콘셉트가 명확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마트는 “이마트24와 노브랜드는 업태가 다르다”며 “대법원에 계류돼있긴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마트가 승소했다”고 설명했다.
계상혁 전국편의점연합회장은 “편의점 전용 제품을 H&B스토어·빵집에서 판매하거나, 대기업 계열사가 편의점 인근에 출점하는 건 가맹사업법 위반 소지가 크다”이라며 “제도권 안에서 규제받는 업종만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규제의 허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위 기사엔 유사 사례로 생활협동조합 관련 내용이 있었으나, 생협 측 해명이 중앙일보 애초 보도와 일부 다른 점이 있어 관련 내용을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