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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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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게임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일이 벌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5억 달러(약 2조 5천억 원)라는 거금을 들여 스웨덴의 게임회사 ‘모장(Mojang)’을 인수한 것이다. 모장의 대표작이 [마인크래프트] 하나였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디 게임 ‘하나’를 자신의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들였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더욱 화제가 된 것은 모장의 창업자이자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개발자인 마르쿠스 노치 페르손의 퇴사 선언이었다.

“기업가나 경영자가 아니라 개발자로 남고 싶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초심으로 돌아가 신작 개발에 매진하는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마인크래프트]로 인디 게임계의 살아있는 성공신화가 된 그가 영광을 뒤로 한 채 다시 인디 개발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의 팬들은 그의 이런 결정에 격려와 찬사를 보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걸출한 게임을 만들어 낸 그가 만들어낼 후속작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마인크래프트]는 어떤 게임이길래 마이크로소프트는 2조 5천억이라는 돈을 들여 인수 했을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마인크래프트]에 열렬하게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마인크래프트의 아버지, 마르쿠스 페르손

[마인크래프트]를 논하려면 개발자인 마르쿠스 페르손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레고를 좋아했던 마르쿠스 페르손은 7살 때 그의 아버지 비르예르가 가져온 '코모도어128'을 접하며 게임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컴퓨터 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마르쿠스는 게임을 만들고, 또 플레이를 하며 점점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청소년기에는 부모의 이혼과 여동생의 가출 등의 가정불화를 겪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그는 더욱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학창시절을 마친 마르쿠스 페르손은 스웨덴의 작은 개발사인 ‘미다스 플레이어’에서 게임 개발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미다스 플레이어에서 이후 공동 창업자가 되는 야콥 포서, 배우자가 되는 엘린을 만났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게임에 대한 열정을 나누기도 했지만, 수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다스 플레이어의 경영방식은 불만이었다고 한다. 결국 마르쿠스는 미다스 플레이어를 그만뒀고, 이후 들어간 아발란체에서도 2주를 버티지 못했다. 그 후 모장의 공동 창업자가 되는 카를 마네가 CEO로 있던 ‘제이앨범’에 들어가게 된다.

마르쿠스 페르손. 페도라는 그의 상징과도 같다.

2 마인크래프트 개발기

마르쿠스 페르손이 제이앨범에 입사하면서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자유시간에 자신이 게임을 만들어도 터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르쿠스가 유능한 프로그래머였기에 카를 마네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마르쿠스는 자유시간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며 지냈다. 인디게임 포럼에서 ‘노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여러 사람과 아이디어를 나눴다. 당시 마르쿠스는 [드워프 포트리스], [롤러코스터 타이쿤], [던전키퍼], [인피니마이너] 등을 즐기며 깊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자신이 만들 게임에 담고 싶었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드워프가 되어 생존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생존이라는 하나의 목적 외에는 유저에게 강요되는 것은 없으며, 유저는 자유롭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마르쿠스는 [드워프 포트리스]에서의 생존을 이어가는 짜릿한 느낌을 자신의 게임에 가져오고 싶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는 쉽고 빠르게 독창적인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것에, [던전키퍼]에서는 횃불이 늘어서 있는 중세시대 지하감옥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

게임의 형태를 결정지은 것은 [인피니마이너]였다. [인피니마이너]는 여러 명의 유저가 광물을 캐는 것을 겨루는 게임이다. 광물을 이용해 다른 유저의 광물 채집을 방해하는 용도로 건축물을 짓는 것도 가능했지만, 나중에는 건축물을 짓는 것에만 몰두하는 유저들이 더 많아졌다.

인피니마이너. 게임 화면이나 플레이 방식을 보면 현재의 [마인크래프트]와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좌) www.minecraftaddicts.com, (우) www.facepunch.com>

[인피니마이너]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출시 한 달 뒤 게임 소스가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저들에 의해 다양한 변종이 만들어졌다. 변종 간에 호환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유저들 간의 정상적인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제작자 자카리 바스는 멀티플레이어 커뮤니티를 만들려던 의도가 완전히 엇나가자 결단을 내렸다. 팬들을 위해 [인피니마이너]를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오픈 소스로 재출시한 것이다. [인피니마이너]가 오픈 소스로 풀리자 많은 프로그래머가 기뻐했다. 마르쿠스도 그 중 하나였다.

마르쿠스는 3인칭 시점이었던 [인피니마이너]를 1인칭 시점으로 바꾸고 그래픽 작업도 다시 했다. 2009년 5월 초, 유튜브에 마인크래프트의 전신인 [인피니마이너 클론]의 동영상을 공개하고, 인디 게임 포럼의 친구들과 논의해 게임 제목을 현재의 [마인크래프트]로 지었다. 그는 자신의 [마인크래프트]에 확신이 있었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 엘린도 그를 응원해줬다. 특히, 엘린은 [마인크래프트]에 푹 빠져 테스터를 자청하기도 했다.

2009년 5월 17일, 마르쿠스는 실행 가능한 최초의 [마인크래프트]를 인디 게임 포럼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반응은 뜨거웠다. 포럼 내의 여러 멤버들은 앞다퉈 [마인크래프트]의 세계를 탐험했고, “이런 젠장, 이거 정말 멋져.”라는 반응을 시작으로 칭찬이 이어졌다. 그런 반응을 꼼꼼히 살피던 마르쿠스는 자신이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다고 느꼈다. 그리고 6월 12일, [마인크래프트]의 판매가 시작됐다.

최초로 공개됐던 [마인크래프트]의 알파버전 <출처: www.moddb.com>

첫날엔 15명이 사갔고 한동안은 평균 하루에 7장 정도가 판매됐다. 판매량은 점진적으로 늘어갔고, 입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는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2010년에는 하루에 평균 400장이 팔려나갔고, 같은 해 여름엔 2만 장을 판매했다.

백만 크로나(약 1억 7천만 원)의 수익을 올린 그는 팬들의 반응에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이 유행은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매출은 계속 올라 나중에는 하루에 2만 3천 카피 이상이 판매될 정도였다.

어느덧 마르쿠스 페르손은 인기 개발자이자 인디 게임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유명 게임 개발사 밸브에서는 그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일등석 비행기 표를 주며 미국에 초청할 정도였다. 밸브에서도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지만, 마르쿠스는 이를 거절했다.

[마인크래프트]가 자신에게 밸브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게 해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르쿠스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야콥 포서, 카를 마네와 함께 ‘모장’을 창업한다. [마인크래프트]의 인기는 이후로도 식을 줄 모르고 퍼져나갔고, 현재도 변함이 없다.

3 게임계의 레고, 마인크래프트

[마인크래프트]의 그래픽은 최근 게임과 비교해보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점이야 말로 [마인크래프트]의 커다란 장점이다. 유저의 상상력을 자극해 게임을 보다 실감 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인크래프트]의 세계에서는 밤이 되면 거미나 좀비가 출몰한다. 굉장히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들이 다가오는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그 어떤 공포게임보다 큰 스릴을 느낄 수도 있다. 단순한 생김새의 좀비와 거미에 자신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투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플레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마인크래프트]는 유저들에게 그저 거대한 놀이터를 제공할 뿐이다. 자유도 높은 게임을 지칭하는 ‘샌드박스 게임’에 가장 걸맞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땅을 파보거나 나무를 캐고, 사냥하는 등 게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고 나면 [마인크래프트]의 세상은 온전히 유저의 것이 된다. 집을 지을 수도 있고, 실존하는 유명 건축물을 게임에 재현할 수도 있다. 커다란 광산을 만들거나 농장 주인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또, 매일매일 긴장감 넘치는 생존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마인크래프트로 Let it go를 연주하는 영상 화면 <출처: Youtube.com>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픽셀 아트 <출처: www.minecraftaddicts.com>

특히, 반도체 회로 역할을 하는 ‘레드스톤’은 유저가 [마인크래프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엄청나게 늘려준다. 단순히 불이 켜지거나 문이 열리게 하는 스위치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멋진 연주를 하는 악기를 만들 수도 있다. 심지어는 컴퓨터를 만들어 게임 안에서 게임을 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회로에 대해 직관적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교재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위와 같은 특징 덕분에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UCC(User Creative Contents, 손수제작물) 제작도 활발하다. [마인크래프트]가 유저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도 각종 커뮤니티,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은 유저의 UCC가 올라오고 있다. [마인크래프트]가 전 세계의 유저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UCC의 힘이 크다.

교육용으로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덴마크 지리청에서는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해 덴마크를 1:1로 재현하기도 했다. <출처: www.gst.dk>

4 한국에서의 마인크래프트

[마인크래프트]가 외국에서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면, 한국에서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를 통해 알려졌다. BJ들은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며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다. [마인크래프트]로 스타덤에 오른 BJ도 있다. 인기 BJ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마인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픽셀 아트, 도트 그래픽 콘셉트의 게임을 볼 때 “마인크래프트 같다.”고 말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인기 게임이 된 것이다. 교육용으로도 쓰인다. 이미 외국에서는 교육용으로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에서도 [마인크래프트]를 교육용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양하게 생산된 마인크래프트 UCC

5 내가 만들어나가는 세상

[마인크래프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도구를 이용해 광석을 캐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마인(Mine)과 만드는 작업을 뜻하는 크래프트(Craft)를 조합한 것이다. 그리고 조금 억지를 보태면, 나의 것(Mine)을 만드는(Craft), 내가 만들어나가는 세상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모든 유저가 놀고 싶은 대로 놀 수 있다. 단순한 그래픽은 유저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열중하고, 상상 속에서 맘껏 뛰어 놀 수 있다. 어디서나 자신의 상상을 곁들여 놀았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즐거움과 비슷하다.

그리고 [마인크래프트]는 ‘잘 되는 게임’의 기준을 바꿨다. 화려한 그래픽, 감동적인 스토리, 막강한 자본력이 없는 인디 게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실현한 게임이다. 같은 꿈을 가진 인디 게임 개발자들의 희망이 됐다. 이것이 사람들이 [마인크래프트]에 열광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 마인크래프트 이야기, 인간희극
· 마인크래프트 위키(minecraft-ko.gamepedia.com)

  • 발행일2014.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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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식 게임어바웃 기자

    화려한 최신 게임도 좋아하지만 정감있는 도트 그래픽의 옛날 게임도 좋아하는 자칭 ‘올드 게이머’. ‘모든 게임은 재미있다’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편견 없이 게임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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