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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하지 못했던 비밀들... '울프' 이재완의 마지막 인사

기사입력 2019.11.29. 오후 11:53 최종수정 2019.11.30. 오전 12:39 기사원문


지난 25일 오후, '울프' 이재완의 갑작스러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예전에 인터뷰를 마치고 '겨울에 조개구이나 먹자'라는 약속을 나눈 그였기에, 으레 조개구이를 위한 연락이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조개구이를 먹자는 연락이 맞았습니다.

울프의 길은 드라마틱하면서도, 험난했습니다. 2012년, 나진 실드를 통해 프로가 된 그는 CTU를 거쳐 2013년에 비로소 SKT T1 S에 입단합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울프-그리고 '뱅'과 함께 한 봇듀오로서의 화려한 모습은 이 때부터였죠. 그렇게 2연속 롤드컵 우승과 숱한 국제대회 및 롤챔스 우승에 기여한 그는 2018년에 이르러 터키의 슈퍼 매시브로 입단해 새 커리어를 만들어 갔습니다. 여기까진 '드라마틱'에 속하는 부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화려한 커리어,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와 풍채에 가려진 울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그는 지극히 비밀스러운 고난을 혼자 짊어지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숨겨왔던 그만의 '험난한' 길. 이제는 모두에게 말할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카페나 스튜디오가 아닌, 술 한 잔 기울이는 인터뷰를 요청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 멀리서 T1 패딩을 입은 울프가 눈에 보였습니다. 가장 오래 몸담았던 T1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일까요? 아니면... 어쩌면 T1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었을까요? 사실, 울프는 패딩 자켓이 그것 뿐이었습니다. 또 다시 사람 좋은 웃음과, 그리고 주고받는 술잔과 함께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Q.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요?

네, 오랜만이에요. 저야 뭐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한국에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재미있게 살고 있었어요.

Q. 터키에서는 아쉽게 롤드컵을 못 가고 팀을 나오게 되었어요. 올해 기분은 좀 어때요?

정말 아쉬웠어요. 한 끗 차이로 이기지 못한 기분이에요. 제 경기력이나 생활 면에선 어느 정도 만족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아쉬운 한 해가 되었어요.

Q. 오늘은 조개구이에요. 조개구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개구이가... 평소에 쉽게 먹긴 힘들잖아요. 다른 고기나 회 같은 건 혼자 먹을 수도 있는데... 조개구이는 영화를 보면 어른들이 술 한잔 하면서 먹고, 그런 장면이 생각도 나요.


Q. 아, 어른의 인터뷰가 하고 싶었던 건가요? 녹음을 꺼야겠는데...

(웃음) 그렇죠. 아직 제가 스물 넷밖에 되진 않았지만, 가끔씩은 그래요. 카페에서 커피만 시켜놓고 인터뷰를 하기보단 술 들어가야 나오는 진중한 이야기,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Q. 그렇죠. 진중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모였는데, 이제 들려주세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이 바뀌기도 했어요. 프로 생활을 더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은퇴를 하려고 해요. 제 시간은 끝난 것 같아요. 그 얘기를 하려고 왔어요.

Q. 그런 생각을 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직 거의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에요. 김정균 감독님이나 매니저님 등 정말 가까운 분들만 아는 이야기에요. 저는 제 정신병 때문에 프로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Q. 최근 강박증 때문에 프로를 그만두는 선수도 있었어요. 비슷한 경우인가요?

비슷하죠. 저는 네 가지의 정신병이 있었어요. 상상도 못 했어요 저도. 우선 첫 번째인 우울증은 현대인들이면 많이들 가질 수 있는 것이라 크게 신경은 안 썼지만 그 외에도 적응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있어요. 진단 받은지도 꽤 오래 되었어요. 그게 17년도였으니까.

Q. SKT 시절이네요. 당시 팀에 심리 상담사가 있던 걸로 아는데, 그 때도 이미 알고 계셨겠네요.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16년도부터 조금씩 시작된 것 같아요. 게임을 하면 속이 메슥거리던데, 당시엔 단순히 긴장을 많이 한 탓으로 넘겼어요. 1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악화되었죠. 그 때부터는 경기를 지든 이기든, 끝나면 바로 대기실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어요. 그리고 괜찮아지면 비로소 인터뷰든 뭐든 했죠.

병원을 다녔는데, 당시엔 경미한 적응장애와 불안장애 정도를 진단 받았어요. 그 때부턴 팀에 제 상태에 대해 말을 했고, 상담사와도 매주 상담을 했어요. 그리고 ‘이 환경에서 멀어져야 호전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17년도 말에 휴가를 떠나서 프로 생활에서 잠시 멀어져보고 나선, 18년도 초반엔 좀 괜찮았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 본격적인 공황장애가 왔어요. 팬 분들께선 제가 단순히 '건강이 좋지 않다'라고만 알고 계셨을 거에요. 그 당시엔 경기가 끝나면 구토를 하러 가는 정도가 아니라, 키보드를 뺄 때부터 공황 장애가 와서 항상 의자를 빼놓고 책상 밑에 들어가서 10분이 넘게 토하고, 떨고, 울기도 했어요. 그 후에 진정이 되면 코치진이 절 데리러 오셨어요. 몇 개월을 그렇게 지냈어요.

팀에선 배려를 많이 해 줘서, 리프트 라이벌즈 이후엔 요양을 좀 했어요. 다행히 ‘에포트’도 정말 잘 해줬죠. 19년도에 들어와서 저는 ‘한국 생활이 내게 안 맞나? 해외를 가면 나아지려나?’ 라는 생각도 들어, 해외 팀을 알아봤죠. 그런데 해외로 가서도 그렇더라고요. 경기 후에 캐스터 방에서 15분 동안 같은 증상을 보였고... 

그리고나서 한국에 돌아와 ‘내년에도 프로 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니, 이젠 정말 답이 없다고 느꼈어요. 이 생활은 더 하기 어려울 것 같고... 단순히 실력이 떨어져 세대교체 겸 은퇴를 한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서 너무나 아쉬워요. 몸 건강이 먼저니까요.

Q. 지난 몇 년 간 은퇴 번복을 하며 팬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했는데, 사실 말은 안 했지만 그 때도 굉장히 상황이 안 좋았고 고민이 많았던 것이었겠네요. 그래도 호전될 가능성을 봐 왔던 것이고요.

네, 제가 좀 심적으로 편한 상황이 되면 호전되리라 생각도 들었는데 말이죠. 저 역시 공황 장애의 원인에 대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관객들의 반응이 원인인가, 나에 대한 퍼포먼스와 구단의 압박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등등. 결국 이유를 찾긴 했어요. 저는 제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공황 장애가 크게 오고, 좀 놀면서 하면 괜찮더라고요. 어이가 없었죠.

이렇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계속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프로게이머인 제가 이런 상태인 것 자체가 모두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아쉽지만... 은퇴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잖아요. 밖으로 새어나가면 난리가 났을 거에요.


Q. 그렇네요. 말했듯 은퇴하는 길이 개운치 않아서 아쉬워요.

속상하죠. 너무 속상해요. 제일 아쉬운 건, 저는 여전히 제가 못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제게 이런 병이 없었다면, 앞으로 몇년 간 더 열심히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새겨질 수 있었을텐데요.

Q. 쭉 들어보니 정말 심각하고, 이 것이 단순히 울프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종류의 고충에 대해 선수들끼리는 고민을 나누기도 하나요?

모르겠어요. 제가 폐쇄적이라 그런지, 저는 가까이 아는 사람들에게만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마 제 상황을 아는 프로들도 얼마 없을 거에요.

Q. 어려운 결정인데, 은퇴에 대해 주변에 조언은 많이 구했나요?

많이 구했어요. 김정균 감독님이나, 매니저님이나 푸만두 형이나... 모두들 ‘정 힘들면 못하는 게 맞지만, 아쉽지 않겠냐, 후회하지 않겠냐’하고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마음에 참 와닿았어요. 저는 정말 더 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공황장애는 일상 생활에도 침투했어요. 감정 기복이 생기거나 하면 어김없이 찾아왔죠. 은퇴 이야기를 부모님께 꺼낼 때도 왔어요. 이러다보니 ‘울프’가 아닌 ‘이재완’이 죽겠다 싶었어요. 사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다음에 갈 팀을 알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공황장애가 오다보니... 이젠 아니다 싶었죠.

Q. 결정을 내리고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들었나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 안 했어요. 흘러가는 듯이 말씀만 드리면, 그리고 또 반응을 들으면 괜히 제 마음이 또 흔들리고, 다시 번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결정을 내린 후에 차근차근 말씀을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

Q.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면... 프로 생활도 어느덧 8년차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정말 의외일 수도 있는데, 프로 입단 바로 전이에요. 요새는 은퇴 생각을 많이 했다보니, 오히려 시작할 적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그 당시 제 생일에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세 곳에서 제게 연락이 왔어요. 나진, IM, 그리고 레퍼드 형이 새로 만든다는 SKT였어요.

그 때 IM에서는 숙소가 제 집과 가깝다고, ‘얘기나 하자’며 IM 팀원들로 가득 찬 차에 저를 태워 질답을 하며 동네 한바퀴를 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니, 뭐 이런 식으로 면접을 하나’ 싶기도 하고 웃겼죠. 그리고나서 레퍼드 형을 따라 SKT로 갔어요. 그 때 정글러로 오려던 선수가 ‘벵기’ 배성웅 형이었어요. 그런데 (배)성웅 형이 다른 팀으로 롤챔스를 뚫어버리는 바람에, 제가 갑자기 정글러 대타로 뛰게 되었죠. 그러던 중 새 정글러인 ‘호로’ (이)재환이가 왔어요. 그러고나니 저는 정글러와 서포터 중 주전 경쟁을 할 포지션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 되었죠. 저는 처음에 서포터로 내정이 되어 있었는데 말이에요. 정글러 ‘땜빵’을 하고나니 또 주전 경쟁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진으로 갔죠. 그 다이나믹한 한 달이 기억에 남아요. 정말 제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였고, 재미있었어요.

Q. 여러 팀에 있었지만, 아무래도 SKT 울프로 기억에 오래 남을 거에요. SKT에서의 마지막 18년도의 자신이 어떻게 기억에 남게 될까요?

매년 프로 생활을 하며 생각하는 게,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만약 경기력이 형편없어지면 미련없이 떠나자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18년도에는 경기를 많이 뛰지도 못하고 그나마도 잘 하지 못했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반면, 제 생각에 그 때의 저는 참 노력은 많이 했다고 생각은 들어요. 차마 말 못할 그런 안 좋은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했으니까요.

Q. 그리고 또 가장 기억에 가장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배)성웅 형이 군대를 가기 전에, 송별회를 겸해 전용준 캐스터의 고깃집에서 다같이 술을 마셨어요. 저는 그 때 술을 잘 마실 줄 몰랐던 때였어요. 캐스터님께서 맥주 반 소주 반을 섞어 주셨고, 저는 단 두 잔만에 정신이 나가버렸어요. 그 후 성웅이 형을 붙잡고 ‘아이고, 이렇게 나가시면 어떡해요’ 하며 울고 그랬죠. 그리고 돌아와선 밤새 토하고 응급실에 가고... 그 땐 술에 정말 익숙하지 않았던 때에요. 그런 게 기억에 남아요.

Q. 울프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참 많았었어요. 유쾌한 모습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죠. 전에는 ‘샥즈’가 울프와의 인터뷰가 아주 즐겁다고도 했고요.

그랬죠. 제가 그 분(샥즈)과 사진도 찍었는데, 제가 항상 든 생각은... 그 누나는 화장을 정말 못 하는 것 같아요(웃음). 아, 이거 칭찬이에요. 실물과 본판(?)이 너무 아름다우시거든요.

그리고 MSI에서 ‘아프로무’ 선수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제 것과 바꿔 가져간 적이 있었어요. 당시 제가 쓰던 기종을 다른 선수들은 불편해해서 LCK에선 저만 쓰던 것이었기에 그 현장에서도 의심 없이 챙겼거든요. 바꿔 가져간 사실을 알고 제가 아프로무에게 사과를 했는데, 그는 ‘괜찮다. 최고의 선수들이야말로 이 장비를 쓴다’며 쿨하게 넘어갔어요.

그리고 G2에 있던 시절의 ‘미티’ 선수가 기억나요. 경기 후에도 몇달 간 저와 메시지를 통해 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경기력이 좀 안 좋아지고선 저도 모르게 미티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가능하면 또 메시지로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Q. '이것 만큼은 프로 동안 이뤄냈다' 라고 한다면? 커리어나, 생활이나 뭐든지요. 건물주가 된 것도 중요한 거 아닌가요!

그럼요. 건물도 어떻게보면 위업이고요(웃음). 그리고 저는 관종이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람들에게 저를 많이 알렸고, 제 이름이 어딘가에서 오르내리고, 뭔가를 보고 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러워요.

Q. 반면에 이루지 못해 아쉬운 게 있다면요?

이것도 어린 생각이긴 한데, 누구나 공감할 ‘역체’ 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제가 몇 년 더 해서, 10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서포터 하면 울프지’ 하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여기서 끝을 맺는다는 것이 많이 아쉬워요.

Q. 결과로 보면 '세체폿'이라는 타이틀이 걸맞은 적도 있었는데, 그게 어떻든 본인의 만족이 중요한 거겠네요.

그렇죠. 관객들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만족도도 중요하니까요. 잘 한 부분만큼 못 한 부분도 많았고, 다른 선수들보다 못한 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Q. 요즘 이적 소식에서 들리듯, 함께 했던 SKT 전 팀원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졌어요. 은퇴하는 입장에서도 이걸 보며 기분이 묘할 것 같아요.

저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죠. 어떻게 보면 다들 동기 같아요. ‘뱅’이나, ‘페이커’나, 김정균 감독님이나. 저 혼자 이렇게 은퇴하는 것이 아쉬워요. 누가 봐도 영원할 것 같았고, 함께할 것 같았던 SKT가 하나씩 흩어지고 있고요. 시간이 더 흐르면 페이커까지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SKT는 그 SKT가 맞게 되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솔직히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응원은 계속 할 거지만, 씁쓸한 기분은 드네요. 

특히 페이커는 이제 올드 멤버로서 홀로 남았는데, 정말 저는 페이커가 선수로서 존경할 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Q. 혹시 아직까지 전 동료들에게 못한 말이 있다면요?

보기에 따라선 참 형식적일 수 있겠네요. 일단은 제 마음 속에서 가장 감사한 사람은 김정균 감독님이에요. 이제 은퇴하고나선 ‘정균이 형’이라고 부를 건데요(웃음), 인격적으로 너무나 감사한 분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함께 한 동료들이에요. SKT뿐만 아닌 나진이나 슈퍼매시브 선수들까지 모두요. 그 다음은 사무국이에요. 매니저님, 프론트, 사무국... 너무 고생 많으셨죠. 그리고 팬분들과 모든 관계자 분들도 감사드려요.

아, 무작정 ‘악플’을 다는 분들께는 아직도 할 말이 있어요(웃음). 가끔은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뭐 그렇게까지 잘못을 한 건가?’.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았죠.


Q. 이제 '울프'가 아닌 '이재완'으로서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요새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자요. 제가 뭘 해야하고, 하고 싶은지 생각을 하다가요. 일단은 혼자 살 거에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더 열심히 살고 싶어요. 요즘 집에서 두 달 간 아무 일도 안 하고 가족들과 지내니, 너무 백수 같고 제가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 들었어요. 두 달 간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있다보니 막막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잠시 접어뒀던 것들을 다시 하려 해요. 운동도 다시 하고요. 간만에 하려니 되던 게 안 되던데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주체적으로 좀 살아보려 해요.

Q. 프로게이머 울프에서 이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인간 이재완으로.

그렇죠. 그리고 방송을 열심히 할 거에요. 그리고 아직은 먼 계획일 수도 있는데, 항상 PC방을 차리고 싶었어요. 제 이름을 건 PC방. ‘사장을 이겨라’같은 이벤트도 해서 100시간 정액권도 채워주고요.

Q.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손톱은 깎을 건가요?

부모님께서도 그러시고, 보는 모두가 깎으라고 해요. 물론 저는 게임할 때 편하려고 기른 것이지만, 그보단 이제 손톱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너무 불편해졌어요. 예를 들어서, 기자님은 손톱이 없으면 상자에 붙은 스티커를 뗄 수 있나요? 어딘가 가려워 긁을 때도, 곱절로 시원하죠. 이미 적응되어 버렸어요. 생각해보니 프로 생활은 손톱을 기르는 데 좋은 변명거리였는데, 이젠 변명할 게 없어서 아쉽네요. 이것도 프로를 관두며 아쉬운 점으로 꼽겠습니다.

Q. 선수로는 은퇴해도, 앞으로 이스포츠 씬에서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은퇴가 정말 거창한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중대사는 아닐 수도 있어요. 좀 개인적인 휴식을 갖고 나서 코치를 할 수도 있고, 잘 갈고 닦아 해설을 할 수도 있고요. 앞 길은 열려 있다고 생각을 해요. 기자로의 진로도 정말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보통 인터뷰를 하면 인기가 많아 자주 불려가는 선수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할 말이 있어도 기회가 없거든요. 그런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조회수가 안 나오겠죠(웃음).

Q. 10년 뒤의 자신은 뭘 하고 있을까요?

정말 감을 못 잡겠어요. 10년 뒤면 서른 넷... 10년 뒤가 서른 넷이군요(장다솔 기자). 아, 정말 죄송합니다... 뭐, 모르죠. 어느 지역의 PC방 사업을 독점해놓을 수도 있고요.

Q. 아쉬워할 팬들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게 있나요? 팬미팅이나.

아직까진 계획하지 않고 있어요. 혹시나 팬분들 계신 자리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거나 하면 안 되니까... 우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말이에요. 최대한 기사나 방송으로만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팬분들은 많이 속상해하실 것 같네요.

Q. 어쨌든 이 인터뷰는 은퇴 소식 그 이상으로 화제가 될 수도 있어요. 다들 몰랐던 프로들의 고충을 들려 주셨으니까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몰랐던 고충들에 대해 다시 조명되었으면, 그로 인해 많은 프로들의 고민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맞아요. 앞으로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팬분들도 읽고 나선 생각이 많아질 거에요. 그래서 저의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많이 속상해하실 거니까요.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다들 한번 쯤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프로들은 이런 고충이 있고, 저희도 사람이라는 것을요.

Q. 은퇴 소식에 많은 연락이 올 텐데, 대비는 되어 있나요?

네. 두 달 간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해놨어요. 저는 괜찮을거라 믿어요.

Q. 그러면 프로로서의 인터뷰 질문은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어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항상 응원해주시던 팬 여러분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잘 안 와닿으실 수 있겠지만, 여러분 덕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16년 우승 후 인터뷰에서 저를 '수많은 톱니 중의 하나'로 비유를 했는데, 사실 저를 구성하고 지탱해주던 작은 톱니 하나하나는 모든 팬 여러분이셨고,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요.

'프로게이머 울프'의 시간은 멈췄지만, '일반인 이재완'의 시간은 이제 시작일 거니까요.


석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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