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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히잡 쓴 한국 외교관 천미성 서기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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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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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지대..."남자들 하는 건 다 해보려고요"


[駐이란 첫 여성 외교관 천미성] 


천정배 前 법무부 장관의 둘째딸 

'히잡' 어색하지만 율법 따라야 "불편해도 더 악착같이 돌아다녀"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에서 모든 여성은 외출할 때 히잡(머리카락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용 천)을 써야 한다. 외국 외교관도 예외는 아니다. '이란은 여성이 근무하기 어려운 곳'이란 인식 때문에 우리 외교부는 1967년 주(駐)이란 한국 대사관을 개설한 이래 단 한 번도 여성 외교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외교부에서 이란은 '금녀(禁女)지대'였다.


이 불문율이 깨졌다. 지난해 8월 이란에 파견된 천미성(36) 서기관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6일 테헤란의 한국 대사관 근처에서 그녀를 만났다. 긴 생머리 위에 히잡을 쓰고 나온 천 서기관은 "머리카락을 드러내놓고 다니면 어디선가 경찰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 경고를 한다"면서 "근무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히잡 쓰는 게 익숙하지 않지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천미성 서기관이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국 대사관 건물 앞에서 히잡을 쓰고 서 있다. 그는 “외출할 때마다 히잡을 써야 해서 바깥 활동을 안 하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돌아다니려고 한다”고 했다. /노석조 특파원




중국 칭화대 대학원에서 연수하고 오랫동안 주중 대사관에서 근무한 그녀는 외교부에서 중국통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난해 인사철 "이란에 가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중국에만 있으니 아시아 외교가 전부인 것 같더라고요. 주위에서 '이란을 왜 가느냐'며 걱정도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중국·일본 등 다른 나라 공관엔 여성 외교관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경우 대사가 여성이더라고요."


이란에서 여성 외교관으로 일하는 데는 히잡 말고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천 서기관은 작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함께 이란 외교부를 방문했는데, 바지 밑단과 구두 사이로 피부가 살짝 드러났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고 사진 촬영에서도 제외됐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악수하지 않으니, 인사를 할 때 손을 내밀지 마십시오'라는 지침도 받았다.


이란은 성직자가 신의 대리인으로서 나라를 통치한다는 신정(神政) 체제로 '여성은 신체 노출을 삼간다' 등의 내용이 담긴 이슬람 율법을 현행법에 대폭 적용하고 있다.


그녀는 히잡에 고마운 점도 있다고 했다. "어느 날 히잡 쓰기가 번거롭게 느껴져서 '에이 가지 말자'하며 외부 모임 일정을 취소하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게 옷차림만 제한하는 게 아니고 사고(思考)에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 뒤로 더 악착같이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고 행사 참여하며 열심히 일하게 됐습니다. '일단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본다'는 각오도 생겼고요. 다 히잡 덕입니다."


천 서기관은 지난해 9월 잠시 한국에 들어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로스쿨 재학 중인 남편을 한국에 두고 홀로 이란으로 돌아왔다. "보자기 몇 겹을 뒤집어쓰고 다녀도 사실 괜찮아요. 진짜 힘든 것은 가족과 떨어져 있는 거예요. 아직 남자보다 여자 외교관이 해외 근무지에 혼자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여자가 더 씩씩해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천 서기관은 최근 국민의당에 합류한 천정배 의원의 둘째 딸이다. 그녀가 이란에 파견된다고 했을 때, 대사관 직원 사이에서는 '전직 법무부 장관이자 현직 의원의 딸인데, 같이 일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천 서기관은 "아버지에게 도움은커녕 피해를 줄까 싶어 신경이 쓰였죠. '얼마나 똑똑한지 보자'는 시선이 종종 느껴지는데, 그럴 때일수록 안 똑똑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웃음)."


테헤란=노석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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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 기자(stonebird@ymail.com)의 취재기, 中東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 n 거대 이야기, 개인 일상사 등을 담은 공간입니다. 이 공간은 2007년 탄생했으며, 알차게 던져주시는 댓글과 이메일을 먹고 커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