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섬기러 온 사람···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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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봉사 29년...伊출신 신부 김하종 '안나의집' 대표
코로나에 무료급식 줄줄이 문닫아
안나의집 찾는 노숙자 크게 늘어
한끼 밥보다 중요한건 희망 주는 것
재능기부 등 사회적 관심 이어지길
김하종 신부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건물 지하 조리실에서 노숙자와 독거노인들에게 제공할 새우국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경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독거노인과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 재활 조직을 운영 중인 안나의집 대표 김하종 신부를 만나기 위해 29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화이트보드에 쓰인 ‘마가복음’의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눈길을 끈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조직도가 그려져 있다. 보통 조직도는 대표를 가장 위에 놓고 나머지 조직을 밑에 배치하지만 안나의집은 정반대로 대표가 가장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나는 안나의집에서 봉사하는 사람이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김 신부의 설명이다.

지난 1992년부터 29년간 노숙인들을 위한 삶을 살아온 김 신부는 이역만리 이탈리아에서 온 외국인 출신 신부다. 원래 이름은 빈센시오 보르도. 2015년 귀화를 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도 했다. ‘김’을 성으로 한 것은 김대건 신부를 존경해서 따온 것이고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이다. 1992년부터 성남 상대원에서 독거노인과 노숙자를 위한 무료 급식소 ‘평화의집’을 운영하다 1998년 안나의집을 세워 23년간 운영 중이다.

김 신부는 서울경제와 인터뷰하는 도중 지갑에서 두 장의 카드를 꺼내 보였다. 장기기증등록증과 시신기증등록증. 이유를 물었더니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봉사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하종 안나의집 대표


그는 안나의집을 “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정의한다. 김 신부는 ‘일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길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본인의 심리·육체적 문제와 가정, 경제적 문제들 때문에 노숙인들이 생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신부는 “노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출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안나의집이 무료 급식보다 노숙인 자활 지원 서비스, 청소년 진학 상담 및 직업 체험 등에 더 신경을 쓰는 ‘밥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곳’인 이유다.

김하종(왼쪽) 신부가 건물 앞에서 도시락을 기다리고 있는 노숙자·독거노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도 마땅한 수입원이 없어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독거노인이나 노숙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먹는 문제의 해결일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는 이들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공공·민간 무료 급식소가 줄줄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노숙자들에게 코로나19는 가장 큰 악재”라며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무료 급식을 받은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는 하루 평균 550명이었지만 지금은 평일 기준 750명, 주말에는 850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김하종 신부가 건물 지하 조리실에서 노숙자들에게 줄 도시락을 소개하고 있다.


안나의집을 찾는 노숙자들이 크게 늘면서 민원도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급식 대신 도시락으로 대체하면서 줄을 길게 늘어서자 주변 이웃들의 항의가 잦아진 것이다. 김 신부는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이럴 때는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일까. 그는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 문화가 복원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 신부는 “30년 전에는 우리를 강조하고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 문화가 있었는데 이제는 나만 생각한다”며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사회를 더욱 피폐화시키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노숙자 등을 돕기 위해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발 벗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 좋은 일들이 너무 많다”며 “며칠 전에는 유치원생들이 각자 1,000원씩 모아 35만 5,000원을 전해줄 때는 감동을 받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 신부는 사회의 보다 많은 관심도 당부했다. 그는 “노숙자나 독거노인에게 한 끼 밥보다 중요한 것이 희망”이라며 “누구나 재능기부를 하면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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