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쟁이입니다."
지난달부터 보디빌더들 사이에서 몸을 키우기 위해 약물을 복용했다는 고백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성범죄 피해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미투(Me Too) 운동에 빗대 약투라고 부른다.
보디빌더 사이에서 '로이더'와 '내추럴'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로이더는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 내추럴은 운동만으로 몸을 키운 사람을 뜻하는 업계 은어다. 로이더들은 보통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성장 호르몬, 인슐린 등을 혼합한 약물을 주사기로 몸에 투여한다. "너는 내추럴이냐, 로이더냐"라며 다투지만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이상 알 길은 없다.
자신이 직접 약물을 사용했다고 고백한 보디빌더는 처음이다. 약투의 첫 포문을 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을 고민하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23일 기준 조회 수 57만 회를 기록했다. 약물을 사용해 짧은 시간에 근육질의 몸으로 키우는 사람이 많은데, 이를 근절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는 약투와 관련된 게시물과 동영상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주인공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승현(29)씨. 박씨는 '박승현 TV'라는 유튜브 채널 소개에 자신을 약쟁이라고 소개한다. 지난달 24일 동영상을 통해 "나는 약물을 5년째 사용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부작용이 없는 약물 사용은 없다. 결국 신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남성 호르몬을 분비시켜 짧은 시간에 근육을 만들 수 있는 약물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자신감을 얻으려 약물을 투여했지만, 약을 멈추면 몸이 작아져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약물 사용은 정신도 파괴하는 행위"라며 "여러분은 이런 슬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여성 보디빌더는 약물 부작용으로 남자 목소리가 됐고 턱수염이 난다고 밝혔다. 4년간 약물을 사용했다는 피트니스 엔터테이너 이나현(29)씨는 지난달 31일 박승현 TV에 출연해 "이건 다 하는 거다.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약물 사용을 권유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트레이너가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고지를 하지 않았다. 얼굴이 달처럼 둥글어지고 남자처럼 변해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여잔데 형 같다' '트랜스젠더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방송 전에는 내추럴이라고 시청자들을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며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13일, 성기능 관련 부작용을 겪는다는 보디빌더도 등장했다. 보디빌딩 경력 13년 차인 김동현(29)씨는 유튜브를 통해 약물 사용 후유증으로 발기부전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발기가 안 되고, 치료제도 복용했지만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의학의 도움을 받아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확률은 50% 정도"라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나는 간지 나는 고X(성불구를 뜻하는 비속어)다"라며 화면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시종일관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던 김씨였지만 영상 말미에서는 결국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몸을 키우고 멋있고 싶어져서 약물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후회가 많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방송을 계기로 약물 근절을 위한 세미나, 캠페인을 할 예정이다.
약투에 대한 우려도 있다. tvN 코미디빅리그의 '징맨'으로 알려진 보디빌더 황철순(36)씨는 지난 22일 소셜미디어에 "약투로 인해 대중이 보디빌딩을 색안경 끼고 볼까 봐 걱정이 된다. 일부의 이야기를 피트니스 전체로 해석하지 말아달라"는 글을 남겼다. 보디빌더들은 약물 사용 사실을 고백하라는 항의를 받는다고도 한다. 2016년 세계 보디빌딩 선수권 대회 금메달리스트 설기관(36) 선수는 "소셜 미디어에 '너도 약쟁이 아니냐'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며 "한 번도 약물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갑작스러운 추궁에 당황스럽다"고 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는 약투에 대해 "위원회도 약투 운동을 인지하고 있다. 현재 보디빌더 중 조사할 대상이 있는지 파악 중이다"라고 23일 밝혔다. 대한보디빌딩협회 관계자는 "과거부터 약물 근절을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라며 "이번 계기로 약물 판매자, 구매자 모두 벌금형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법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영빈 기자 be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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