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몽촌토성 인터뷰

[몽촌토성 인터뷰 28-1] 서교동 미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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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용

공식

2018.08.26. 12:45233 읽음

 어린 시절 필자가 의문을 가졌던 궁금증 하나가 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빨간색을 다른 사람도 똑같은 색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사람마다 다른 색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저 같은 대상을 빨간색이라고 합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궁금증이지만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동안 경험해오며 쌓아온 내 세계관이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아직도 의문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지만 상당 부분 의문점을 해소해 준 경험이 있다. 맛있는 음식. 도저히 이렇게나 황홀한 맛을 절대 다른 맛으로 느낄 수 없다는 강렬한 인상. 혀에 있는 미각 세포가 어쩌니 저쩌니, 진짜 맛은 뇌에서 느끼느니 마느니 하는 이론에 앞서 맛있는 음식은 입에 넣자마자 '맛있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는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황홀한 맛이야. 너도 그렇게 느끼지?'.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미식가다. 미각의 민감함과 음식에 대한 지식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있기에. 이왕이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우리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미식가다

 아름다운 맛(美食)을 내걸고 서교동에 순대집을 차린 이들이 있다. 자리에 함께 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 이들 모두 눈빛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황홀한 순대 요리. 서교동의 미식가를 자처한 이들이 어떤 맛과 이야기를 전해줄지 호기심이 생기는 과정은 당연지사다. 다시 한번 필자의 어릴 적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가지고 서교동을 찾았다. 식당 이름이 서교고메(Seogyo Gourmet). 청년 셋이 맞이해줬다.

반갑습니다. 각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최지형(이하 최) : 안녕하세요. 서교동에서 모던한식과 순대를 만들고 있는 최지형입니다.
정재용(이하 정) : 저는 서교고메에서 최지형 셰프를 도와 홀과 전반적인 운영일 맡고 있는 정재용입니다.
이정헌(이하 이) : 안녕하세요. 서교고메에서 나머지 잡일을 맡고 있는 이정헌입니다.

서교고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이름과 로고 모두 특이하네요.
최 : '서교고메’라는 이름은 단순하게 ‘서교동의 미식가’라는 의미예요. 제 누나가 작명에 센스가 있어서 누나가 지어주셨어요. 로고는 ‘+ - + L’이 나열되어 있는데 땅 지(地) 한자를 획으로 풀면 나오는 문자들이에요. 제 이름 ‘최지형’의 ‘지(地)’라는 글자가 저에게 중요한 의미라 로고로 만들었어요.

일반인들에게 ‘순대’라고 하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함께 먹는 순대 또는 순대국밥을 떠올립니다. 대중들에게 ‘순대’라는 소재로 어떤 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최 : 순대의 종류가 많아요. 우리나라만 해도 경기도 순대도 있고, 충청도, 전라도에도 있고, 북쪽으로 가면 함경도, 평안도 순대가 있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에 순대 요리가 있어요. 제가 열아홉 살에 처음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저희 집안의 내림음식인 순대를 포함해 명태 식혜, 명란젓, 멸치 식혜, 창난젓을 맛보고 자랐어요. 저희 할머니가 함경도 출신이셔서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저로 이어져온 음식이죠. 어렸을 때부터 순대가 저에게 친숙한 음식일 수밖에 없었어요.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등 많은 요리를 배우고 만들어봤지만 본질적으로 저를 표현하는 음식은 순대라는 생각으로 대중들에게 순대를 선보이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서교고메 로고

각자 처음 요식업계에 발을 딛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먼저 정헌 셰프님은 처음 요리를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가요?
이 : 열아홉 살 끝자락에 4년제 대학에 가기 싫어서 친구 따라 2년제 요리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을 때가 시작이에요. 남들처럼 특별하게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본래 어머니가 한식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셨지만 저는 관심이 없었다가 노량진에 오기 싫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요리를 시작했던 시기부터 현재 서교고메에 합류하기 전까지 어떤 커리어를 밟아왔는지 소개 부탁합니다.
이 : 2년제 요리학교에 들어가서 반년 공부하다가 학교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당시 같이 입학했던 친구가 저 몰래 같이 군대에 지원해서 해군 조리병으로 근무를 하게 됐죠. 해군 사관 당번으로 보직 발령받고 해외에 배 타고 다니며 요리하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꼈어요. 전역할 때까지 많은 생각을 하다가 전역하고 대구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1년 반 일했어요.

 얼마 안 돼서 친구가 당시 노보텔(Novotel)에 근무하면서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하길래 노보텔로 들어갔죠(웃음). 이후 괜찮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강남 앰배서더 호텔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서울 올라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물다섯 살에 서울에 올라왔어요. 그때 오스테리아 꼬또(Osteria Cotto)에서 지형이형(최지형 셰프)과 송훈 셰프님을 만났고. 에스테번(S.TAEVERN) 오픈할 때 멤버로 참여했다가 지금 서교고메로 오게 됐어요. 서울 올라오고 나서 4년, 5년 정도 됐네요.

서교고메 이정헌 셰프

재용 매니저님은 어떤 계기로 요식업계에 발을 디뎠나요.
이 : 처음 시작은 뉴질랜드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바(Bar)에서 바텐더로 시작을 했어요. 첫째로 재밌어 보였어요(웃음). 돈을 벌면서도 노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술, 그중에서도 칵테일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칵테일바에서 일하다가 친구 한 명이 레스토랑에서 일해보는 것을 권했어요. 와인에도 관심이 생기던 차에 레스토랑에서 일하면 더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일 하게 된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서빙을 시작했어요. 와인도 함께 공부했는데 계속 빠져들더라고요.

 이후에 뉴욕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서 일레븐 메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지형이형(최지형 셰프)을 만나게 됐고, 그 후 비자 문제 때문에 케이먼 군도에 있는 리츠 칼튼(Ritz-Carlton)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군대를 가게 됐어요. 군대 전역하고 서교 고메에 합류했어요.

서교고메 정재용 매니저

지형 셰프님의 커리어도 궁금합니다.
최 : 대학교에서 호텔조리학과를 전공했어요. 당연하게도 호텔에 실습을 많이 나갔죠. 인턴이나 파트타임 형태로 일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어요. 군대 가기 전에 일식을 1년 동안 조리하다가 입대해서 군대에서도 장군들을 위한 특별 취사병으로 차출당해서 2년 군생활 동안 일식을 계속 만들다가 전역하고서도 1년 반 일식을 더 공부했어요.

 이후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리츠 칼튼 호텔, 멕시칸 파인 레스토랑(Mexican Fine Restaurant),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어요.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미국 존슨앤웨일즈(Johnson&Wales)라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서 마레아(Marea)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일레븐 메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에서 일했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양식을 더 배우고 싶어서 오스테리아 꼬또에서 일하고. 이탈리안 요리를 하는데 이탈리아를 가보지 않는 것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이탈리아에 가서 반년 정도 일도 해보고. 미국에서 관련 MBA 코스를 밟은 후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가장 나다운 요리를 고민하던 차에 서교고메를 오픈했습니다.

지금은 요리를 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에는 미술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최 :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미술 공부를 했어요. 결정적으로 성격과 맞지 않았어요. 저희 집안이 미술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는데 제 성격에는 맞지 않았던 거죠.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을 다녔는데 평생 먹고살만한 직업인지 고민했을 때 미술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께서도 미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셨고. 경영이나 경제 전공을 고민하다가 부모님께서 조리학과를 추천하셔서 요리를 시작하게 됐어요.

서교고메 최지형 셰프

재용 매니저님과 정헌 셰프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서교고메에 합류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지형 셰프님이 어떤 말로 꼬드겼나요?
정 : 지형이형이 순대로 메뉴를 정했다고 했을 때 신박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저는 지금껏 남의 밑에서 일해왔잖아요. 조금씩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하던 찰나에 서교고메 제안이 들어와서 매력을 느끼고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

이 : 어떤 말로 꼬드겼는지 물어보시면. 일단 돈 준다고 했어요(웃음). 당시 제가 일본에 있었거든요. 형이 전화해서 ‘놀면 뭐하냐. 돈 줄 테니 일해라’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식을 한다는 거예요. 예전부터 장난처럼 ‘나는 순대국밥 팔 거야’라고 말했던 형인데 실제로 순대 요리를 한다고 해서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동안 양식만 만들어 오다가 한식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워낙 요리 잘 하는 사람이니까 이왕 일할 거면 같이 하기로 했던 거죠. 무엇보다 잘 되면 돈 많이 준다고 해서 합류했어요(웃음).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려는 모습이 재밌었어요.

지형 셰프님은 어떤 기준으로 두 사람에게 합류 제안을 했나요?
최 : 요식 업계에서 어떤 사람을 신뢰하고 같이 일 하기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아는 사람이 편하기도 하고. 정헌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함께 일 하면서 만났어요. 무엇보다 일 처리가 깔끔하고 손도 빠르고 습득력도 좋았어요. 당시 재용이는 안타깝게도 군대에 있었지만 워낙 일 잘하기로 소문난 친구라서. 성격도 물론 좋고. 재용이가 군대 전역하자마자 같이 일하자고 연락해서 다행히 같이 일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셰프로서 커리어를 밟아왔지만 이제는 대표라는 직함을 달았습니다.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있었겠어요.
최 : 예전에는 팀장이었다면 현재는 보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팀장일 때는 팀원을 잘 이끌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대표는 더 나아가 수익까지 창출을 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죠. 사실 팀장 역할이 저에게는 더 맞다고 생각해요. 솔선수범 하면서 팀원과 으쌰 으쌰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좋거든요.

 대표는 거기서 머무를 수가 없죠. 열심히 일 하는 모습은 본인의 사업체를 위해 당연한 모습이고. 그 이상으로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죠. 팀장보다는 대표가 더 어렵고 까다롭고 보는 눈도 많아서 힘들어요. 매일 배우고 있어요.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팀장일 때 쉽게 표출할 수 있었던 감정들을 대표일 때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서 쉽지 않은 자리예요.

세 분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현재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일을 해오고 있는데, 어떤 매력을 느꼈기에 지속해오고 있나요?
이 :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먼저 알고 싶었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알게 되면 음식을 대하는 재미가 두 배가 되거든요. 알고 먹으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이를 위해 더 많이 알아야 해요. 제 생각이나 마음을 음식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어요. 요리 경력 1년 차에 이 매력을 느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이 : 책을 읽으면서 노력을 하기도 했는데, 저는 사실 운이 많이 따랐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있었음에도 유학을 다녀온 셰프나 외국인 셰프를 만나면서 외국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접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그 실력을 따라가려면 본인이 노력을 해야 하죠. 지형이 형도 같이 일했을 때 본인이 찾은 좋은 학습 영상을 보여줬거든요. 이렇게 혼자서 할 수 없는 부분들을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 이상을 얻게 됐죠.

지형 셰프님이 요리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쳤나요?
이 :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인 것은 확실해요(웃음).

정 : 어떤 업계든 비슷할 것 같아요. 배울 점이 무궁무진해요. 와인 한 분야만 하더라도 배울 내용이 끝이 없죠. 사람들에게 진짜 매력을 느꼈어요. 같이 일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매일 다른 사람을 대하다 보니 여기에서 배우는 점들도 많아요. 또 세계 어디에 가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매력도 있어요. 뉴욕에 가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도 그래서 생겼고, 이전까지 들어보지도 못했던 케이먼 군도에 가서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해보기도 하고. 정말 많은 매력이 있는 직업이에요.

최 : 저는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어요. 어떤 날에는 요리가 즐겁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잠에서 깨기 싫은데 새벽같이 장을 보러 가야 할 때도 있고. 피곤하지만 하루 12시간 ~ 14시간 일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고. 손에 물 마를 날이 없기도 해요.

 예전에는 셰프라는 직업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음식이 비워진 접시를 봤을 때 희열을 느껴요’라고 했어요. 물론 지금도 유효하지만 지금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커요. 스스로 옳다고 결정한 일을 끝까지 믿으며 지속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매일 질리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싫증 났으면 진작에 그만뒀겠죠.

서교동 미식가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 이시용   @사진 : 배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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