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에 갇혀 쪼개진 대한민국, 우린 생각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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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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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정년이 보장된 대학을 떠나 새말새몸짓이라는 법인을 세우고 한 달에 한 권 책을 정해 독후감을 나누는 ‘책 읽고 건너가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가 시민이에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해야 리더들이 마음대로 못 해요. 독서운동이라는 게 결국은 시민 양성 운동이죠.” 윤성호 기자

“지금 진영 간의 분열과 대립, 갈등은 우리 역사상 가장 심해졌어요. 나라가 가장 심하게 분열돼 있다는 거죠. 진영에 갇히는 건 생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진영에 갇히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진영에서 이미 만들어진 논리와 이념을 그대로 재생산하면 되거든요.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사느냐, 진영의 삶을 사느냐, 당신 자신은 어디 있는가.”

새해 첫 인터뷰를 위해 철학자 최진석(62) 서강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새해를 맞아 우리 사회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코로나19 이후 가야 할 방향에 관한 통찰을 듣고자 했다. 그는 노장철학의 권위자로 청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명쾌한 강의로 잘 알려진 스타 인문학 강사이기도 하다. 그와의 인터뷰에서는 ‘생각’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새해를 얘기하기에 앞서 먼저 지난해를 정리해볼까요. 예컨대 교수신문은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를 2020년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는데요, 2020년은 어떤 의미의 한 해였을까요?

“지난해의 우리나라를 아시타비로 규정한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내로남불’이 성행했고 배척의 논리만 강했지 포용의 논리는 없었잖아요.”

-모두의 기대처럼 올해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가 퇴치된다면 코로나 이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그 이상의 질문과 생각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요.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것에 방향을 맞춰야 합니다. 과거에 가장 강력한 팬데믹이었던 페스트를 계기로 중세가 극복되고 르네상스가 시작됐잖아요. 과학기술 문명이 준비돼 있고 사회의 제도적 모순도 극에 이르렀는데 인간은 과거에 익숙한 방식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팬데믹이나 전쟁처럼 이것을 강제로 적용하거나 강제로 모순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이 일어나요.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팬데믹을 이기기 위해서 도입되는 기술 문명에 과감하게 적응해서 우리 민족사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 선도국가가 되는 걸 한번 해보자는 거죠.”

-이전 강연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하셨는데 현재의 상황은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우리나라는 한계에 갇힌 지 이미 오래됐어요. 한계에 갇혔다는 말은 익숙한 방식으로 가능한 가장 높은 곳에 이미 도달했다는 뜻도 되죠.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했는데 박 대통령 때 있었던 많은 문제가 똑같은 형태로 다시 등장했어요. 우리는 수평적 왕복 운동만 하고 있어요. 수평적 왕복 운동을 멈추고 수직적 상승을 해야 합니다. 수직적 상승의 한 형태가 중진국을 벗어나서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겁니다. 중진국까지는 생각하는 능력이나 창의성이 크게 요구되지 않아요. 생각의 결과, 탐험의 결과, 창의의 결과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선도국가는 자기가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하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변화예요.”

-중진국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졌다고 보시는 건가요.

“역사에서 1820년대를 대분기(大分岐), Great Divergence라고 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어요. 당시의 선진국이 후진국으로 떨어진 예가 없고,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선 예도 거의 없어요. 따라가는 삶을 사느냐 생각하는 삶을 사느냐 이 큰 차이 때문에 간격이 좁혀지지 않죠. 그런데 이 간격을 확 좁힌 나라가 있어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대한민국이거든요. 세계에서 유일해요. 그런데 간격을 좁힌 것이지 아직 선진국으로 올라서지 못했어요. 양적으로 보면 선도국가라고 할 정도가 됐지만, 사유의 방식이 선도국가형으로 바뀌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기회가 왔어요. 과거의 패러다임이 깨지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이때에 마침 또 우리 국력이 제일 강해요. 선도국가로 올라서겠다는 의욕을 가진다면 지금이 기회죠. 지금밖에 없어요.”

-강력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의 격동이 맞물렸다는 말씀이군요.

“지금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앞으로 몇백년 동안은 기회가 없어요. 어떤 특정한 패러다임에서 상하가 결정되면 뒤집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안타까운 게 민주화를 성공시키고 난 이후 너무 긴 시간 동안 민주화 다음으로 건너가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제는 건너가 볼 수 있는 때인데 어떻게 도약할 수 있는가를 궁리하지 않고 계속 극단적인 분열 속에서 국력을 낭비하고 있어요.”

최진석 명예교수에게 코로나19로 우울감에 빠지는 ‘코로나 블루’에 대해 물었다. “상황이나 조건에 굴복하면 블루해지겠죠. 저는 상황이나 조건에 투쟁하고 도전하는 사람이지, 상황이나 조건에 굴복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요. 블루해지기 싫어(웃음).” 윤성호 기자

-그렇다면 2021년의 어젠다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저는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 국가 리더십이 반쪽의 역사 리더십, 진영의 리더십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 레벨의 리더십은 궁극적으로 통합의 리더십이거든요.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으면 국가 역량을 총집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반쪽의 리더십을 극복해야 하고, 그 다음에 국가 레벨의 어젠다 설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가 한 점 오점 없이 완벽하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을 과거에 묶어 놓고 말거든요. 과거의 문제를 과거의 시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게 큰 오류예요. 과거는 미래로 해결하는 거예요. 미래를 어떻게 건설하느냐가 과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와 같은 말이거든요. 역사에서는 적폐를 청산하다가 새로운 적폐가 돼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반동적 현상이죠. 과거 문제를 미래의 시선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적폐가 되는 모순을 범할 수 있죠.”

-지난해에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혁명은 명(命)이 바뀌는 거예요. 어젠다, 구조가 바뀌는 거예요. 저는 촛불혁명은 실패했다고 말했는데, 이유는 이런 거예요.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는 게 적폐였어요. 그러면 언론장악이 사라져야 해요. 그래야 혁명이거든요. 정권의 검찰 장악이 적폐였어요. 그러면 검찰 장악이 사라져야 하거든요. 그래야 혁명이죠. 혁명의 대상들이 과거에 했던 일이 혁명 후에 안 일어나는 게 혁명이죠. 그런데 그런 일들이 그대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무슨 일만 생기면 법을 만들어 제어하려고 해요. 5·18 역사왜곡처벌법처럼요. 법을 남용하거나 임의로 적용하면서 법치를 흔들고,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로 전락하고,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민주와 자유가 오히려 후퇴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역사 퇴행을 겪고 있습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과 관련해 지난달 공개하셨던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시(詩)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때문만이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를 포기하고 법을 이용한 통치로 전락하는 불순한 흐름이 있고 그것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5·18이 법에 갇히거나 정권에 이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거죠. 5·18만큼은 그 숭고한 정신이 손상되지 않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 뜻이 모두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SNS에 해명하는 글을 올리셨고, 비판하는 글을 남긴 사람들에게는 ‘죄송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는데요.

“사람들은 글을 보고 싶은 대로 읽는 경향이 있어요. 5·18 같이 비극적인 사건에는 분노와 회환, 슬픔이 깊게 배어있죠. 그런데 저는 시에서 객관적으로 옳은 것에 대해서만 얘기했어요. 내 실력으로는 아픔이 있는 분들의 주관적인 마음까지 다 담는 글쓰기는 못 했어요. 아픔이 아직도 깊이 남아있는 분들에게는 역사왜곡처벌법이 위로가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결국은 민주와 자유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문제라고 저는 썼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의 아픔이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제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고, 이해를 했더라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거든요.
저는 그분들의 아픔도 어서 빨리 정치의 포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정치에 포획된 5·18을 정치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은 거예요. 그래야 5‧18이 살거든요. 그런데 5‧18을 법에 가두는 일을 비판하면서 그분들의 아픔 그대로를 담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죄송하다고 한 거예요.”

-우리사회가 진영과 성별, 세대로 나뉘면서 서로를 향한 갈등과 혐오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통합으로 가는 해법이 있을까요.

“당장은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국가는 국방과 조세라는 두 기둥으로 서 있고, 정치와 교육이라는 두 톱니바퀴가 작동해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서 정치 역량이 형성되고, 정치는 교육에 굉장히 강력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분열과 갈등이 심하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정치에서 제공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는 오히려 분열을 이용하고 있어요. 정치 환경이 변화되지 않고는 정치인들이 분열을 통해 얻는 기능적인 효과를 버리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멀리 보면 공멸의 길이지만, 언뜻 보면 자기 진영을 더 공고히 하거나 단기적인 승리를 거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정치공작만 남고 정치는 망가지는 것이죠.”

-왜 이렇게 나뉘게 됐을까요.

“우리나라는 한 나라 두 국민이 된 지 오래예요. 해방 때부터 진영들의 싸움이 있었죠. 김구와 이승만의 싸움이 아직도 안 끝난 것 아니에요? 지금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반대세력을 향해 살인자라고 할 정도로 진영 간의 대립이 극단화됐어요. 적대감이 증오의 단계까지 갔고, 권력은 한쪽 진영에 갇혀 오히려 이 분열을 조장하고 이용하면서 행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결국은 생각하는 능력, 반성 능력, 각성 능력이 훈련되지 않아서입니다.”

-진영 싸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해주신다면요.

“생각하는 능력을 빨리 회복해야 해요. 생각이라는 것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기반으로 하거든요. 궁금증과 호기심은 항상 밖을 향해 열려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개방적이에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폐쇄적이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폐쇄화가 극단화돼 있어요. 제가 지금 새말새몸짓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전남 함평에서 기본학교를 하고 있거든요. 목표는 하나예요. 생각하는 자를 만드는 것. 내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사는지 아니면 고유하고 독립적인 나 자신의 삶을 사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
저는 이게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를 묻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자신이 자신에게 분명해지면 탁월해집니다. 진영에 갇혀서 분기탱천하는 지질한 삶을 살지 않죠.”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0월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1기 학생들을 맞았다. 지원자 100여명 중 스펙을 보지 않고 뽑은 28명의 학생들이 주말마다 무료로 그와 교수들의 수업을 듣는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겸하지만 원래 전남 함평 최 명예교수의 고향집 터에 세운 ‘호접몽가’에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학생 중 60%가 서울에 거주하지만 함평까지 내려오는 걸 마다하지 않았을 만큼 열성적이다. 새말새몸짓 제공

-그래서 기본학교로군요.

“그렇죠. 지금 우리는 그 기본을 놓치고 있는 거죠. 왕정에서 생각은 왕만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왕의 생각을 집행만 하면 돼요. 민주정이라는 것은 생각을 구성원들이 한다는 거거든요. 유권자가 자신의 생각을 국회의원들한테 대행시키는 거예요.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요.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왜 후퇴하느냐, 사람들이 리더의 생각을 수행하려고 하지 자기 생각을 리더한테 대행시키려 하지 않거든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도 나와요. 독재자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고 하면서 나머지 구성원들은 생각을 포기하죠. 나폴레옹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이 생각을 수행만 합니다. 왕정 독재와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생각을 포기하면, 바로 노예로 전락합니다.”

-언론에서는 교수님을 실천철학자라고 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철학자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철학자가 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느냐’며 반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개는 제 말을 듣기 싫어하는 분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사실 이게 철학이에요. 소크라테스도, 칸트도, 플라톤도, 노자도, 공자도 다 그랬죠. 이 세계에서 문제를 발견해서 그 문제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사유하고 활동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에요. 그래서 철학은 과학, 정치, 사회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구체적으로 등장해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발언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철학이 아닌 겁니다.”

-5·18 시를 공개하셨을 때 ‘좋아하는 철학자를 잃은 것 같다’ ‘철학자로만 남아달라’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저한테 호감을 가지고 하는 말씀이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제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어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사는 방식이에요. 짧은 인생을 누구 좋으라고 살아요? 나 좋으라고 사는 거지. 저는 철학자로 살거나 철학자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나는 나로 살다가 나한테 인정받으면 충분해요. 저는 그저 나를 향해서 걸을 뿐이에요.”

-정년을 7년 남겨두고 대학에 사표를 내셨던 것도 같은 맥락이겠군요.

“그렇죠. 내가 나로 사는데 교수직이 더 이상 도움이 안 되면 그만두는 거죠. 뭘 위해서 교수직을 유지하나요. 돈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안락한 삶을 위해서?”

-교육을 위한 새말새몸짓을 세운 것은 정치와 교육이라는 두 톱니바퀴 중에 교육을 택하신 건가요?

“교육이 사실은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정치도 인재가 하는 거예요. 미래도 인재가 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교육이라는 범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치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죠. 정치와 교육은 국가를 작동시키는 두 톱니바퀴여서 굉장히 가깝게 있어요. 지금 정치가 진영에 갇혀있는 건 교육에서 생각하는 인재를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정치의 실패는 교육의 실패, 정치가 혼란스럽다는 건 교육이 혼란스럽다는 말을 반드시 함축하죠.”

반백의 짧은 머리, 상대를 꿰뚫을 것처럼 강한 눈빛, 청바지와 스니커즈가 최진석 명예교수의 트레이드마크다.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생각했을 때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다 가는 것밖에 다른 게 없더라고요. 그러면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내가 묻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더 자유로운가, 이게 더 독립적인가.” 윤성호 기자

-최장집 홍세화 강준만 선생님 등 진보 지식인들이 현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도 정부에 아픈 얘기를 하시는데 비판적인 지지, 애정 어린 비판인 건가요.

“애정 어린 비판이라고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비판은 그냥 비판인 거죠. 저는 비판 대상들에게 애정은 없고, 대한민국에만 애정이 있어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편 가르기예요. 진보냐 보수냐를 따져서 진보 지식인들이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그냥 지식인들이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진보니 보수니 하는 프레임에 가두는 일을 해요. 그러면 언어들이 발화되는 순간 정치화돼버려요. 그러면 어떤 치료 효과도 나지 않죠. 프레임을 공유하는 진영의 문제로 작아진 후 휘발돼버리죠. 그래서 제가 이런 말들을 해도 정치와 사회가 개선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기대가 없음에도 발언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말들이 어떤 프레임 속에서 잠시 소비되고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아요. 이것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나로 살고 싶어 하고 지식인의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해야 할 말은 흔적으로라도 남겨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자 나 자신에게 남기는 흔적들이죠. 말을 해야 할 때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것보다 했다는 기록 하나라도 남긴다는 게 내가 나를 스스로 증명하는 한 방식이거든요. 나한테 떳떳하고 싶으니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고, 보궐선거가 끝나면 2022년 대선 국면에 돌입하게 됩니다. 새 시대에는 어떤 리더십이 요구될까요?

“기품과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기품이라는 것은 절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은 염치와 수치심을 안다는 거예요. 염치를 알고 수치심을 가지면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거짓말이 너무 일상화됐어요. 염치를 알면 권력도 남용하지 않죠. 진영에서 벗어나 국가 레벨의 미래 어젠다를 설정하는 건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합니다.”

최진석 명예교수의 전남 함평 고향집 터에 세워진 ‘호접몽가’. 건축가 윤경식의 작품으로 제35회 세계건축상을 수상했다. 최진석 명예교수 제공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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