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못믿어"…`종일 돌보미` 모시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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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는 유치원도 늘어
종일 돌보미 찾는 엄마들
석달새 2배 넘게 급증

月최고 300만원 비용
서민층선 부담 크고
자격·관리 불안감도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이 폐업해 급하게 아이돌보미를 구합니다."

충북 청주에 사는 워킹맘 A씨는 새해가 밝았지만 다섯 살 난 자녀의 보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걱정이 태산이다. 다른 유치원을 보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A씨는 고민 끝에 직접 선택한 아이돌보미에게 자녀 교육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후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아이를 돌봐줄 '종일형 베이비시터'를 찾는다는 공고를 최근 아이돌보미 관련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A씨는 "맞벌이 부부라 갑작스러운 폐원이 난감하다"며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실내 놀이, 책 읽기 등을 해 줄 돌보미를 절실히 찾는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워킹맘 B씨 역시 7일부터 자녀의 보육 방식을 확 바꿀 예정이다. B씨는 "좋은 아이돌보미를 찾아 홈스쿨링을 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을 보내기보다 어린이집 선생님 경험이 있는 돌보미가 자녀를 가르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집에 홈스쿨 교재와 교구, 식단까지 모두 준비해놓을 계획이다.

폐원하거나 폐원을 추진 중인 유치원이 전국 108곳에 달하는 등 비리 유치원 사태가 해를 넘겨 이어지면서 사설 아이돌보미를 찾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믿지 못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그간 등·하원 도우미 등 보완적 역할만을 주로 수행하던 아이돌보미에게 보육기관을 대체하는 역할까지 맡기는 셈이다.

6일 아이돌보미 구인·구직사이트 '맘시터'에 따르면 베이비시터를 찾는 수요는 지난해 10월 비리 유치원 사태 이후 급증했다.

지난해 9월 8만명에 불과했던 맘시터 전체 회원 수는 지난달 11만명으로 3개월 사이 3만명이나 증가했다. 특히 맘시터에 새롭게 가입한 부모 회원 수는 지난해 상반기에 월평균 2000명대를 넘지 못했으나 비리 유치원 사태가 터진 10월 한 달 동안에는 신규 회원 수가 4196명, 11월에는 5268명으로 확 늘었다. 지난달 신규 회원 수는 약 6500명으로 또 한 차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에는 증가세가 미미했던 '종일형 베이비시터'를 찾는 부모 회원이 많아진 것도 눈길을 끈다. 맘시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종일형 베이비시터 신청 건수는 503건으로 전체의 9.4% 수준이었다. 반면 지난달 종일형 베이비시터 신청 건수는 1237건(11.9%)으로 급증했다.

정지예 맘시터 대표는 "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보육기관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부모 회원 유입이 늘어난 듯하다"며 "육아의 보완재였던 베이비시터가 대체재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배우는 면이 크기 때문에 일대일 돌봄을 찾는 현상이 좀 안타깝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아이돌보미 구인·구직사이트 '시터넷'에서도 종일형 베이비시터를 찾는 게시글이 지난해 10월 174건에서 12월 415건으로 약 2.4배 늘었다.

시터넷 관계자는 "연말에는 아이돌보미 수요가 조금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지난해 10~12월 사이 종일형 베이비시터에 대한 수요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이례적인데, 비리 유치원 사태 여파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이돌보미 플랫폼 '새누리헬퍼' 관계자 역시 "10월 전후로 비교했을 때 베이비시터 채용 희망 건수가 1.5배가량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일부 학부모들에겐 베이비시터마저 그림의 떡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5살 난 아들을 키우는 30대 주부 이 모씨는 "사설 아이돌보미를 종일 고용하려면 매달 250만~30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공공기관의 아이돌보미 서비스는 이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하루빨리 유치원 사태가 해결돼 제대로 된 보육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설 아이돌보미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각에선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상에 올라온 구직 글이나 입소문만으로는 자격 검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베이비시터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해도 민간 업체가 발행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면 쉽게 딸 수 있는 상황이다. 광주 광산구에 사는 한 네티즌(eh******)은 "새해부터 일을 하게 돼 사설 베이비시터를 쓰려는데 과연 보육을 할 자격이 되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기 어려워 불안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시터 관리 감독이 제도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정희 경북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민간 베이비시터 자격 요건에 대한 관리 감독이 부실해선 안 된다"며 "어린이를 돌보는 사람들인 만큼 민간 베이비시터 역시 신분, 전과 등 자격을 명확히 하고 전문성을 갖도록 하는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희수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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