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TV정원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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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정원] 1974(2002)

설치ㅣ백남준아트센터 소장ㅣ©백남준 스튜디오

이 곳의 정원은 인공이면서 자연이다. 미술관 깊숙이 볕도 비도 바람도 들지 않는 공간, 키가 큰 초록의 아열대 식물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 하늘하늘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정원의 흙에는 화려한 색상의 큼지막한 꽃송이들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아, 그런데 꽃송이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 곳은 백남준의 [TV 정원]이다. 그리고 무성한 수풀 속 피어있는 꽃들은 바로 텔레비전의 영상들이다.

1974년 뉴욕 보니노갤러리의 개인전에서 처음 구상된 작품으로 당시에는 스무 대의 텔레비전만이 화면을 하늘로 향한 채 바닥에 놓인 [TV 바다]로 꾸며졌고, 이후 식물들이 추가되어 시라큐스의 에버슨미술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도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테이트 리버풀 등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설치되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TV 정원]은 회랑을 따라 정원의 둘레를 거닐 수 있고 또 메자닌으로 올라가 위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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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정원], 1974(2002), ©백남준 스튜디오
[TV 정원] 1974(2002), ©백남준 스튜디오

1 자연과 인위의 경계를 허물다

정원 속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고 있는 것은 [글로벌 그루브]라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이다. “지구상의 어떤 TV 채널도 쉽게 돌려 볼 수 있고 TV 가이드북은 맨해튼의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워질, 미래의 비디오 풍경이다”라는 소개로 시작하는 이 비디오는 ‘글로벌 빌리지’의 백남준식 표현이다.

흥겹게, 장단 맞춰, 리듬을 탄다는 의미의 ‘그루브’를 제목에서 사용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비디오를 통해 백남준은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인 음악과 춤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로 제시하고,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여 음악, 춤에 관련된 여러 다양한 영상들을 MTV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현란하게 이어 붙인다.

대중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존 케이지, 샬럿 무어먼 등 전위 예술가들의 공연이 오고 가며, 고고나 탭댄스를 추는 서양 무희와 북을 치는 나바호 여인, 부채춤을 추는 한국 여인이 교차하고, 상업 광고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영상들이 나란히 배치되기도 한다.

세계 각국, 여러 분야의 문화를 다채롭게 횡단하며 총 스물 두 개의 시퀀스로 펼쳐지는 만화경은,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종합하는 연속적인 줄거리 없이 단순하고 직관적 보기를 권유한다. 여러 개의 방송 채널을 “마치 피아노 건반 두들기듯 가지고 노는 미디어 지향적인 젊은이들”(1984)이라면 아마도 기꺼이 그 만화경 속으로 빠져들리라.


[글로벌 그루브] 부분, 1973
29분 39초, 컬러, 사운드,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백남준 스튜디오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시장공동체](1970)라는 글에서 백남준은,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한 인류의 고통이 문화간 이해와 소통 부족에 기인한다 보았고, 텔레비전이 이의 개선과 세계평화, 지구보존에 기여해야 한다고, 기여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재즈가 흑인과 백인을, 모차르트가 유럽인과 아시아인을, 록음악이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를 이어줬듯이, “세상 곳곳의 음악과 춤의 TV 축제들을 모아 엮어서 비디오 시장공동체를 통해 전 세계에 무료로 배포한다면 이는 교육과 오락에 경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말로 평화로운 지구촌의 미래를 구상했다.

이렇게 비디오를 통해 전지구적 소통을 꿈꿨던 백남준은 이후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바이바이 키플링](1986) 등 대규모 위성아트 프로젝트를 실현시킨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는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에 의해 통제 당하는 비관적 미래 사회를 전망한 조지 오웰의 소설을, [바이바이 키플링]에서는 동양과 서양은 너무 달라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노래한 루디야드 키플링의 시를 백남준의 방식으로 반박한다.

[글로벌 그루브]를 위시하여 백남준의 위성아트 프로젝트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스타카토의 전지구적 리듬으로 귀속된다.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구세대와 신세대, 전통과 현대 등의 대립되는 범주들이 그 리듬 안에서 상대화되고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탈바꿈하면서 모든 형식적, 지리적, 정치적 경계는 무색해진다.


[바이바이 키플링] 부분, 1986
30분 23초, 컬러, 사운드,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백남준 스튜디오


[TV 정원]에서는 여기에 더해 자연과 인위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인공적으로 조성, 유지되는 자연의 환경과, 자연과는 상반되는 것이라 여겨지는 테크놀로지를 대변하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유기체적 공간을 이룬다. 이 안에서 다양한 식물군 사이사이 여러 문화 예술 형식의 흥겨운 혼재를 구축하는 TV 모니터들은 낯선 배치의 각도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일반적인 TV 시청을 위한 각도가 아니라, 화면이 하늘을 향하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텔레비전을 내려다보게 되며, 하나의 텔레비전 수상기만을 보기보다는 주변의 여러 대를 동시에 함께 시청하게 된다.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화면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대상을 규정하여 보여주는 프레임으로서 텔레비전을 자각하게 된다. 백남준은 멀티모니터 설치 작품을 통해, 비디오나 텔레비전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2 수족관이 모니터가 되고, 모니터가 수족관이 되다

미디어의 프레임을 사이에 둔 재현과 실체의 분열이라는 문제에 자연의 요소를 결합하는 형식은 백남준의 [비디오 물고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렬로 늘어선 스물 네 대의 모니터가 역시 스물 네 대의 수족관 뒤에 놓이고, 수족관 안에는 실제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다. 화면에는 춤을 추고 있는 안무가 머스 커닝엄의 모습,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리고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의 모습이 나온다.

수족관과 텔레비전 화면의 중첩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실제 물고기와 비디오 속 물고기가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지며, 물고기들과 함께 춤을 추는 머스 커닝엄, 물고기가 하늘을 헤엄치고 비행기가 바다 속을 날아다니는 그런 모습이 된다. 다시 말해 수족관이 모니터가 되고, 모니터는 수족관이 되는 인식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Real 물고기/생방송 Live 물고기]의 경우는 두 대의 텔레비전으로 구성되는데, 한 대의 수상기는 안이 비어있어서 그 안에 수족관을 넣어 물고기들이 노닐게 한다. 폐쇄회로 카메라로 촬영된 그 수족관의 이미지는 나머지 한 대의 텔레비전 화면에 실시간으로 송출된다.

백남준은 자연과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키면서 ‘리얼’과 ‘라이브’의 차이를 부각시켜 보는 이가 그 사이에서 시공간의 차이를 느끼도록 하고, 더불어 텔레비전이 세상의 이미지를 수신하기만 하는 매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생산하기도 하는 매체라는 점 또한 보여주고 있다.

[실제 물고기 / 생방송 물고기], 1982(1999)
설치,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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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물고기(비디오 물고기)], 1975(1997)
3 채널 비디오 설치,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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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TV 정원]에서 텔레비전은 프레임이 되는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이기도 하다. 화려한 영상 뒤의 텔레비전 수상기는 원시림의 덤불 속 이파리 뒤에서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화면을 형성하는 미세한 전자들의 임의적 움직임이 곧 자연 자체(1971)라고 말한 바 있는 백남준은 다양한 초록빛과 다양한 리듬 속에서 나뭇잎을 타고 흐르는 텔레비전의 전자적 영상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도록 한다.

이 정원에서 우리의 눈은 전자적 자극과 자연의 녹음을 동시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의 화면에 고정되어 있던 우리의 시선은 자유로워지고 박동하는 음악적 리듬을 따라 공간을 유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원의 생태계에서 텔레비전은 자연을 헤치는 테크놀로지의 침입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전자적 이미지로서 하나의 ‘테크노-에콜로지’의 풍경을 이룬다.

나의 실험 TV가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항상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이듯이,
– [실험 TV 전시회의 후주곡](1963) 중에서.

백남준은 다시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시장공동체]라는 글에서 삶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이며 기획으로서의 생태학에 대한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말을 인용하며, “생태학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경건한 세계에 대한 관념이다. 그것은 세계의 기획, 전 지구적인 순환, 인간 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그루브’로 박동하는 백남준의 [TV 정원]은 불연속적 이미지의 현혹적 변화로 사이키델릭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도, 이질적인 요소들 간에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라 종용하는 공간도 아니다. 이 곳은 매일 물을 주며 식물들을 보살피듯이, “‘너 아니면 나’로부터 ‘너와 나’로의 변화”를 도모했던 백남준의 그 믿음을 가꿔나가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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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일2011.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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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은 선임학예연구원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인류학 박사로 현대미술과 뮤지엄을 연구한다. 예술가이자 사상가인 백남준의 무궁한 세계를 창의적이고 선도적으로 탐사하고자 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국제 전시 및 학술 프로그램에 문화인류학적으로 기여하는 길을 도모하고 있다.
    Having gained her DPhil in anthropology from the University of Oxford, Seong Eun Kim has ongoing research interests in contemporary art and museums. She is committed to finding an anthropological way to contribute to the creative and innovative curatorship and scholarship of the NJP Art Center exploring the immense realm of Nam June Paik as an artist and th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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