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人터뷰] 30년 ‘야구인생’, 마침표 없는 추신수의 또 다른 시작

입력2020.07.22. 오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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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개막을 앞둔 추신수와의 화상 인터뷰. 야구 인생의 종반부를 달리는 그가 언제 마침표를 찍을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멋진 엔딩을 위해 또 다른 시작을 하고 있는 중이다.(사진=동영상 캡처)>


마침내 2020시즌 메이저리그(MLB)의 문이 활짝 열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즌 개막이 무려 4개월 여 늦어졌지만 24일(한국시간)부터 변형된 스케줄로 개막전이 시작된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탬파베이 레이스 원정 개막전에 나서는 류현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처음으로 MLB 마운드에 오를 김광현, 그리고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이 각오를 달리하고 있는 가운데 맏형인 추신수의 2020시즌은 조금 다른 의미로 채워질 것 같다.

어느새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7년 계약 중 마지막 해를 맞이한 추신수. 올시즌을 마친 후 그가 어느 자리에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레인저스에 잔류할지 아니면 또다시 새로운 팀과 인연을 맺을지, 그것도 아니면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할지 결정된 게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3개월 동안 개인 훈련을 이어갈 때 추신수는 잠시 ‘은퇴’란 단어에 고민을 얹었다고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아빠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야구를 계속 하는 것.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야구를 이렇게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삭제됐지만 최근 한 매체에서는 롯데가 극비리에 추신수를 영입하려고 설득 중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추신수는 나중에 이 소식을 접하고 사실과 다르지만 “5초는 설레었다”고 말한다. 추신수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토드 프레이저의 안타까운 사연

추신수는 팀 훈련이 중단된 지난 3개월 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고 말한다.

“언제 야구가 시작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 한두 달은 곧 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가 이번 주에 (개막 일정이)나온다, 안 나온다가 몇 차례 반복됐다. 선수들은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6월 즈음에는 ‘(야구를)한다, 안 한다만 알려 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점점 정신적인 면에서 한계를 느꼈다.”

코로나19로 선수단은 대혼란을 겪었고, 3개월 만에 훈련이 재개된 후에는 선수들 사이에서 확진자가 나올까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선수의 허락 없이는 감염 여부가 공개되지 않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이런 부분을 숨겨야 할까 싶다. 누가 걸린 줄을 알아야 더 조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감염 여부를 숨기면 다른 선수들은 모르고 훈련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나도 구단의 한 일원이기 때문에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머 캠프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선수들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토드 프레이저가 전한 메시지에 선수들은 마스크 착용을 일상화했다고 한다.

“토드 프레이저가 뉴저지 출신이다. 코로나19가 처음에는 뉴욕 인근 지역까지 엄청나게 확산됐는데 그때 토드 프레이저 할머니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더라. 토드 프레이저는 선수들에게 사랑하는 할머니가 코로나19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마스크 착용을 안 하는 순간 우리도 그 길로 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원래 토드 프레이저의 성격이 활발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간섭도 안 한다. 그런 그가 클럽하우스에서나 이동할 때 마스크 안 쓴 선수가 눈에 띄면 바로 말한다. 마스크 제대로 쓰라고.”

서머캠프 앞두고 은퇴를 고민했던 추신수

추신수는 네이버에 연재하는 ‘추신수 MLB 일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선수 생활 지속 여부를 두고 내적 갈등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진짜 고민 많이 했다. 만약 내 계약 기간이 조금 더 남았다면 아마 난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약 마지막 해이고,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 살이면서 야구만 30년을 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야구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그만두기가 아쉬웠다. 만약 내가 올시즌을 포기한다면 그건 은퇴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내 나이에 1년을 쉬면 다음 해에 나를 받아줄 팀이 있을까 싶었다. 결국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야구를 통해 한 발 더 뛸 수 있게끔 힘을 실어줬다. 30년 야구 인생을 코로나19로 내려놓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 결정하기 전까지 많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추신수가 은퇴를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성장하는 아이들한테 아빠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며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자신이 놓치고 살았던 많은 일상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중에서 아이들의 성장에, 교육에, 아빠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은퇴를 고민하는 나를 아내가 다시 야구로 이끌어줬다. 2003년에 처음 만나 2004년부터 나와 함께 살면서 아내도 지금까지 야구 시즌과 동고동락했던 셈이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남편의 부재 속에서 홀로 육아와 교육을 담당했던 터라 그 일을 1,2년, 또는 2,3년 더 한다고 해서 뭐가 힘들겠느냐고 말하더라. 하고 싶은 야구하다가 잘 마무리한 후 제자리로만 돌아오라고 응원해줬다. 아내의 응원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

<텍사스 레인저스 타선의 축을 형성하는 선수들. 추신수, 엘비스 앤드루스, 루그네드 오도어(사진=레인저스 SNS)>


롯데행? 5초 설레었다!

얼마 전 추신수는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켜고 네이버에 들어갔다가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실시간 검색어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싶더라. 솔직히 내 이름을 클릭하기가 무서웠다. 내가 잘못한 게 있었나? 내 주위 사람들이 잘못한 게 있나? 이 시기에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일이 없는 터라 기대 10%, 두려움 90%를 안고 이름을 클릭했다. 그제야 롯데에서 나를 데려오려고 설득 중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그 기사가 싫지는 않았다(웃음). 한 5초 정도는 설레었던 것 같다.”

추신수는 부산고 시절 롯데 1차 지명을 받았음에도 자신이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고교 시절 접했던 애리조나 인스트럭셔널리그의 환경이었다.

“롯데 지명되기 전에 애리조나 인스트럭셔널리그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제일 나이 많은 선수가 스무 살이었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나랑 엇비슷한 열여섯, 열일곱 살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자부심이 강했다. 이대호, 김태균, 이정호도 최고의 선수였지만 그 누구랑 붙어도 실력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 자신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큰 충격을 받았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땅볼이 오면 두 손으로 잡으라고 하는데 나보다 두세 살 어린 선수들은 땅볼이나 느린 타구가 오면 그걸 맨손으로 잡아 던지더라.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제구가 뛰어나진 않았어도 열여섯, 열일곱 살 선수들이 150, 155km의 공을 던지고 타격 후 주루 플레이, 송구 등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진짜 엄청난 선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루키 리그가 가장 낮은 레벨이라고 들은 추신수는 궁금증을 가졌다. 과연 한 단계 더 높은 레벨은 어떨까, 그 위로 올라서면 어떤 세계가 보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서 야구했으면 어떤 선수가 됐을지 모르지만 나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무대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메이저리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추신수는 어린 시절 야구를 시작하고 나서 학교 훈련 마치면 사직구장에 가서 롯데 자이언츠 경기를 보는 게 일과였다. 야구가 6,7회로 넘어가면 표를 구입하지 않아도 입장을 허락해줬기 때문에 하교 후 야구장 방문을 즐겨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고 자란 나로선 프로 선수가 돼 롯데 유니폼을 입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애리조나의 인스트럭셔널리그를 보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상태였다. 롯데 구단 관계자 분한테도 내 생각을 전달하며 지명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나를 지명하셨더라. 그렇게 어긋났던 롯데와의 인연이었는데 20여년 만에 다시 회자된 것이다. 처음 기사를 봤을 때는 ‘내가 롯데에서 뛸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가 이후 바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제도적인 어려움도 있고(추신수는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은 터라 KBO리그에 복귀하더라도 SK에서 1년을 뛰어야 한다), 한창 야구 선수로 성장 중인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내도 가족과 떨어져 남편이 혼자 한국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마냥 응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내 집처럼 들락거렸던 사직야구장에서 야구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다시 떠올랐으니까.”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만난 추신수와 나성범(사진=보라스 코퍼레이션 제공)>


나성범을 응원하는 추신수

KBO리그가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되는 상황에서 추신수는 레인저스 선수들로부터 ‘어느 팀이 가장 잘하는 팀이냐’ ‘어떤 선수가 잘하느냐’ 그리고 ‘어떤 선수가 미국에서 야구할 수 있느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선수는 (나)성범이 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노력 중이고, 현재 메이저리그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는 생각에 선수들한테 성범이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물론 야수에서 이정후나 강백호도 있지만 직접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단 이정후는 이종범 선배님 아들이라 눈여겨봤는데 진짜 야구를 잘 하더라. 야구 센스가 대단했다.”

추신수와 나성범과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1월 중순경 미국 LA 공항 국내선 환승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던 두 사람은 그해 스프링캠프 때 추신수가 나성범이 훈련하는 NC 다이노스의 투산 훈련장을 방문하면서 제대로 된 만남을 가졌다(기사 참조). 이후 추신수는 나성범에게 필요한 방망이와 야구용품을 한국으로 보냈고, 나성범의 첫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아기 옷들을 선물하는 등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지난 3월에도 두 사람은 애리조나에서 해후했다. 이번에는 투산에서 훈련 중이던 나성범이 휴식일을 이용해 서프라이즈에 있는 추신수를 찾았고, 함께 식사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성범이가 지난해 큰 부상을 당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잘 극복하고 이겨낸 덕분에 올시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진심으로 반가웠다. 흔히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비유하는데 어떤 선수도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마이크 트라웃도 데뷔 1,2년은 어렵게 보냈듯이 대부분의 선수들은 시련과 희망을 반복하며 더 멀리 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나도 2016년 한 시즌에 4차례의 부상을 당했다. 힘든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 성범이에게 지금의 어려움은 다시 일어서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조언해줬다.”

만약 추신수가 올시즌을 마치고 선수 생활을 이어 간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나성범을 만날 수 있을까. 추신수는 나성범의 포지션이 외야수라는 이야기에 자신이랑 포지션이 겹치니 텍사스 레인저스에는 오지 말라며 활짝 웃었다.

“성범이가 올 때까지 내가 야구를 하고 있다면 그가 어느 리그, 어느 팀에 있든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워낙 성실한 선수이고 친화력이 있어 걱정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추신수의 2020시즌은 새로 지은 홈구장,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시작된다. 글로브라이프필드는 4만300명을 수용하는 개폐식 돔구장이다. 추신수는 “야구장이 예술”이라면서 “이런 야구장에서 관중 없이 야구해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시즌은 시작되고 야구는 계속해야 하는 일. 그는 “나중에 관중들 입장했을 때 더 멋진 야구 보여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올시즌 각오를 묻는 상투적인 질문에 추신수의 대답은 명료했다.

“코로나19 조심하기, 코로나19 안 걸리기!”


<이영미 기자>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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