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전야’도 네이버 노조답게…‘어벤져스’ 단관하는 2019년형 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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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24. 오후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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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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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쪽과 교섭·조정 결렬에 업무 시간 첫 쟁의 행위



2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씨지브이(CGV) 오리에서 진행된 네이버 노조의 ‘무비데이’ 쟁의 행위에 참가하기 위해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조합원들.
“어머, 이게 무슨 줄이야?”

24일 오후 3시4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씨지브이(CGV) 오리 1관 앞. 젊은 직장인 200여명이 이날 개봉하는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단체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섰다. 팝콘과 콜라를 들고 들뜬 모습의 이들은 근무시간 중 업무를 ‘째고’ 영화를 보러 나온 네이버 직원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245개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모두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의 조합원들로 교섭에 나서지 않는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파업 대오’다.

지난해 4월 출범해 아이티(IT) 업계에 노조 설립 붐을 일으킨 네이버 노조가 영화 단체관람으로 5번째 쟁의 행위에 나섰다. 이날 단체관람은 지난 2월 쟁의 행위 돌입 선언 뒤 처음으로 근무시간 중 업무를 중단하고 벌인 단체행동이다. 네이버 노조는 그동안 업무에 지장을 주는 시간을 피해 점심시간과 퇴근 무렵에 피케팅 등의 쟁의 행위만 벌여왔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회사가 65일째 노조와 대화에 나서지 않아 압박 수위를 높이기로 했고, 마침 많은 조합원들이 좋아하는 영화 <어벤져스>의 개봉일과 겹쳐 단체관람 형식의 쟁의 행위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노조는 “팀내 조합원 비율에 따라 업무 지장 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자회사 컴파트너스의 경우 고객·광고주 상담 담당자들이 부분 파업에 참여해 불편이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단체관람을 위해 정자·판교·서현 사옥에 나뉘어 일하는 네이버와 자회사 엔비피(NBP)·컴파트너스 직원들은 오후 3시께 사무실에서 나와 45인승 버스 3대 등을 타고 극장으로 향했다. 네이버 본사(그린팩토리) 앞에서 버스를 탄 조합원 윤아무개(34)씨는 “노조 쟁의 행위로 단체 영화 관람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가족들도 참신한 아이디어라며 참여를 적극 지지해줬다”며 “젊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과 역할을 학습해 나가는 단계에 맞는 쟁의 행위 같다. 노조에 콘텐츠 기획 천재가 있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쟁의에 참여하기 위해 오전부터 업무를 서둘러 마감했다는 정아무개(28)씨도 “노조는 회사에서 튀는 사람만 가입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거부감도 컸다. 그런데 노조가 생긴 이후 회사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노조를 지지하게 됐다”며 “오늘 쟁의 행위로 당장 회사 업무가 마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조합원들이 이런 단체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회사에 보여줬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 4차례 쟁의에서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투쟁’이라는 글씨가 적힌 빨간색 머리띠나 조끼, 깃발은 쓰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풍선을 들고 프로야구팀 에스케이(SK) 와이번스의 내야수 최정 선수 응원가를 개사해 만든 구호를 외쳤다. 쟁의 행위에 참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인증샷 이벤트도 진행했다.

2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씨지브이(CGV)오리에서 진행된 네이버 노조의 ‘무비데이’ 쟁의 행위 안내 표지.
네이버 노조와 사쪽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15차례 단체교섭(정식교섭 13차례, 실무교섭 2차례)을 진행해 왔다. 노사는 고용부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절차에 돌입했지만, 사쪽은 노조가 ‘협정근로자’(필수유지 업무를 위해 쟁의 행위에 참가할 수 없는 노동자)의 범위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정안을 거부했고, 결국 조정은 결렬됐다. 노조는 회사 요구대로 협정근로자를 지정할 경우 네이버 직원의 80%가 쟁의 행위에 참여할 수 없어 사실상 노동3권이 침해된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와 조합원들은 사쪽의 요구는 “사실상 노조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협정 근로자가 80%에 달한다’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네이버는 “국민 다수가 이용하는 네이버의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협정근로자는 꼭 필요하며, 그 범위는 정해진것이 아니라 노사가 협의해 범위를 지정할 수 있다. 케이티(KT)나 에스케이티(SKT) 같은 아이티(IT)기업도 협정근로자를 지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그린팩토리 앞에는 “직원들이 똑똑하길 바라면서, 왜 멍청한 사람 대하듯 합니까?”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월급에 인생을 판 건 아닙니다”와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9년 네이버 노조는 직원을 ‘멍청한 사람’으로 대하는 회사에 ‘똑똑하게’ 맞서고 있다.

글·사진 성남/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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