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연탄의 '빈곤 포르노'...'기름 기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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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1.09. 오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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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해진 기자, 이동우 기자] [편집자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2019년의 세상 사람들에게 연탄은 말한다. 다 식어가는 나의 온기라도 절실하고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고.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달동네, 쪽방촌 그 냉골을 버티게 하는 2019년 연탄의 얘기를 들어봤다.

[[2019 연탄은 지금]②기름보일러로 연탄보일러로 바꿔야 하는 연탄 편중 기부 바꿔야…"청정연료로 지원해야"]


"기부가 연탄으로만 몰리는데 별 수 있어? 연탄 보일러로 바꿔야 살지"

이달 4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윤모씨(78·여) 집은 4년 전 멀쩡한 기름보일러를 뜯어내고 연탄보일러를 설치했다. 윤씨는 "교체 비용이 80만원 정도였는데 시에서 지원해준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말해 바꿨다"고 했다. 윤씨는 본인 포함 다섯 집이 세 들어 사는 쪽방의 관리인이다. 하루 6~9개 연탄으로 1.5평씩인 쪽방 주민 5명이 난방을 한다.

이 동네에서만 10가구가 최근 5년 사이 윤씨처럼 기름에서 연탄 난방으로 바꿨다. 윤씨는 "고관절이 아파 연탄 갈기도 힘들고, 화재 위험을 생각해도 기름이 낫지만 돈이 없는데 어떡하느냐"며 "기부도 연탄으로 몰리지 않느냐"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이 연탄보일러로 회귀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쪽방촌 현실에 맞지 않는 기부문화와 연탄쿠폰 등 정부의 보조정책 때문이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506가구가 산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이곳은 연탄보일러가 65%, 나머지는 기름보일러로 겨울을 난다. 거주민 615명 가운데 119명이 65세 이상 독거노인이고, 344명이 기초수급자로 자력으로는 난방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기업과 복지단체 후원이 연탄으로만 쏠리면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를 위한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연탄=에너지 빈곤층'이란 공식이 상식처럼 통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널리 알리는 데 연탄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윤모씨(78)는 4년전 멀쩡한 기름보일러를 뜯어 연탄보일러로 바꿨다. 기부가 연탄으로만 몰려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사진은 윤씨가 교체한 연탄보일러/사진=이해진 기자

실제로 연말이면 연탄 봉사 이야기가 '연탄천사'라는 표현과 함께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도 얼굴에 연탄가루를 묻힌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일각에서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대중에게 빈곤을 부각해 모금 운동의 효과 등을 보는 사진과 영상물을 빗댄 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와 위탁계약을 맺고 영등포 쪽방촌 후원 업무를 담당하는 '영등포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쪽방촌에 연간 연탄 지원은 한 해 평균 5만장 정도(주택당 하루 5~9장 소요)다. 약 1만 가구가 하루 쓸 수 있는 규모다. 반면 매해 겨울 한철에만 지원되는 난방용 기름은 불과 1만5000ℓ(하루 9.5ℓ 소요)로 1570여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루 필요한 양을 기준으로 하면 기름보다 연탄이 많게는 6배 이상 더 지원되는 셈이다.

그래서 영등포 쪽방상담소에서도 기부 사각지대를 좁히고자 후원 기업과 단체들의 연탄 후원을 난방용 기름 후원으로 유도하고 있다.

김형옥 쪽방상담소 소장은 "기업이나 단체가 단합대회 차원에서 함께 연탄 나르기를 하는 등 연탄이 이른바 '티 잘 나는 기부'로 자리 잡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하지만 쪽방촌 현실을 고려해 기부 연탄의 수량을 일부 돌려 난방용 기름으로 후원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며 "기름을 때야 겨울을 날 수 있는 사람들도 연탄 가구와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이라고 말했다.

쪽방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연탄쿠폰(에너지바우처) 정책도 에너지 빈곤층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기초수급자인 쪽방촌 거주민들 대다수가 연탄쿠폰을 지급받지만, 정작 그 쿠폰으로 연탄을 구매해 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입자라 연탄보일러 관리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연탄보일러 1개로 4~5개 쪽방이 공동난방을 하는 쪽방촌은 관리인이나 집주인이 연탄을 구매해 땐다.

월세 20만원짜리 쪽방에 사는 김모씨(50)는 "때마다 연탄쿠폰을 받지만 연탄보일러 관리는 집주인 몫이라 내가 쿠폰을 주고 사서 땔 수 없다"며 "집주인에게 현금으로 팔아야 하는데 집주인이 안 사주면 꽝"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복지와 기부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에 옮겨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미세먼지 발생의 요인 가운데 하나인 연탄 사용 감소는 거스르기 힘든 전 세계적 흐름이라고도 지적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이 위험하고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연탄을 계속 사용하게 할 이유가 없다"며 "이들의 연탄 난방 시스템을 다른 난방시스템으로 바꾸고 도시가스나 실내등유 등의 바우처 금액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도 "위험한 연료인 석탄을 저소득층에게 선심 쓰듯이 주는 기부문화나 에너지 정책은 현실을 무시한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보온이 취약한 저소득층 가옥구조를 고려하면 전기장판이 가장 필요하다"며 "저소득층 전기사용료 보조나 가옥 단열 등을 개선해 난방 효율을 높이는 사업으로 정부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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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기자 hjl1210@, 이동우 기자 canel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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