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선수 대한항공 진지위가 그리는 내일

입력2020.02.28. 오후 2:10
수정2020.02.28. 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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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처럼 지난 겨울을 간절하게 보낸 선수가 있을까. 바로 홍콩인에서 한국인이 된 대한항공 진지위다. 2013년에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진지위는 길고 긴 인고의 시간 끝에 2019년 겨울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귀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V-리그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6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귀화 절차를 밟는 도중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궁금했다. <더스파이크>가 1월 10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대한항공 연습 체육관에서 홍콩인이 아닌 한국인 진지위를 만났다.


경희대 김찬호 감독이 건넨 명함
그의 운명을 바꾸다

진 알렉스 지위(진지위)는 13살 때 처음 배구공을 잡았다. 17살이던 2010년에는 홍콩 국가대표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이후에도 2013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각종 국제 대회에 나가 홍콩 대표팀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전력이 약한 홍콩에서 큰 선수로 성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며 한국으로 와서 같이 배구를 하자고 말했다. 바로 경희대 김찬호 감독이다.

진지위는 그때를 회상하며 “감독님이 명함을 주면서 같이 한국으로 가자고 이야기하셨죠. 돌아가 가족들하고 이야기를 나눴죠. 일주일의 긴 고민 끝에 한국에 가기로 맘을 먹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홍콩과 캐나다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는 진지위는 한국행 대신 캐나다행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아픈 어머니가 마음속에 걸렸다.

“캐나다에 가서 공부와 배구를 병행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몸이 많이 편찮으셨던 어머니가 계속 생각났어요. 홍콩이랑도 가깝고 배구도 잘하는 한국을 택하기로 결정했죠. 어머니가 아프면 바로 한국에서 홍콩으로 갈 수 있잖아요.”

그렇게 2013년 한국에 들어온 진지위는 2014년에 경희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배구를 취미처럼 했지만 한국은 아니었다. 아침에 눈떠 저녁에 잠들 때까지 배구만 했다. 진지위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꺼냈다.

진지위는 “아침 7시쯤에 친구들이 모두 일어나는 거예요. 다들 허겁지겁 옷을 입으면서 저를 깨우더니 ‘운동해야 돼, 운동, 운동’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그때 운동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였거든요. 옷 입고 마음 준비가 안 된 채로 운동장 20바퀴를 뛰었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7시에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났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국 문화 적응기에 들어간 진지위는 배구부 팀원들과 한국의 명소들도 돌아다니고 매운 한국 음식도 먹으면서 조금씩 한국의 맛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선수로 경희대 동문이자 같은 팀 동료인 이승호와 엄윤식을 뽑았다. 진지위는 이들을 프로에서 다시 만나 뿌듯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대학리그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한 진지위는 지난 2018년 처음으로 특별 귀화를 신청했다. 진지위는 당시 김호철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의 추천서를 받아 특별 귀화 신청서를 냈다. 대한체육회 심의 관문까지 통과했지만 법무부 심사 단계에서 대한민국배구협회 경기력 향상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진지위는 “잘 되지 않았을 때도 감독님이 먼저 와서 위로해주셨어요. 아쉽기도 했지만 귀화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라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 귀화 무산’이라는 상실감을 마음속에서 떨쳐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찮다고 마음을 먹었는데도 경기장 안에서 하나도 집중이 안됐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그때는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의지할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나이도 어리지 않고 여동생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으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결국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대한항공, 1라운드 6순위 지명

진지위는 2019 KOVO 남자부 신인 선수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까지도 한국 국적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지난해 9월 3일 한국배구연맹(KOVO)이 신인 드래프트 참가를 허용했다. 9월 16일 열린 KOVO 신인드래프트에서 대한항공은 1라운드 6순위로 진지위를 지명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10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특별 귀화 심의회에 참석했다.

그때 진지위는 귀화라는 절실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 돼도 실망하지 말자’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공존한 상태였다. 진지위는 “그때 면접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게 ‘특별 귀화 안 되더라도 일반 귀화가 있으니 편하게 생각하자’였어요. 운동하고, 제 스스로 노력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준비한 것 같아요.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면접에 임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진지위는 국내 거주 5년 이상의 일반 귀화 자격 요건을 갖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순서를 거칠 때마다 더욱 커지는 긴장감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그는 “면접은 떨림의 순간이었어요. 대한체육회에서도 보고, 법무부에서도 면접을 봤는데 법무부 면접이 가장 떨리더라고요. 또 운동복이 아닌 정장을 입고 하니까 너무 어색했죠”라고 웃었다. 약 두 달간의 시간이 흐른 지난 12월 11일, 진지위는 법무부 최종 면접에서 특별 귀화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고, 특별 귀화 관문을 모두 통과한 프로배구 선수 첫 번째 사례로 남게 됐다.

농구에서는 문태종(은퇴)-문태영(삼성) 형제, 김한별(삼성생명), 라건아(KCC)가 특별 귀화했다. “특별 귀화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태어나서 그렇게 큰 감정을 느낀 날은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정말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김찬호 감독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진지위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김찬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고민 상담을 한다고 털어놨다. 진지위는 “모든 면접이 끝난 후에 김찬호 감독님에게 가장 먼저 연락이 왔어요. 정말 수고 많았다고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한국에서 제 아버지 역할을 해주신 분이에요”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진지위는 지난 12월 17일 경기도 수원 법무부 수원청에서 열린 국적 수여 증정식에도 참가했다. 그는 한국 국적을 얻은 약 130여 명을 대표해 선서자 대표 역할을 맡았다. 그다음 날인 12월 18일 등번호 8번, 등록명 진지위로 KOVO 선수 등록을 마쳤다. 한국 이름을 진지위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원래 제 본명이 진 알렉스 지위에요. 거기서 이름을 가져와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이름은 부모님이 남겨두고 가신 선물이라고 봐요. 지금은 곁에 없지만 항상 제 옆에 부모님이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싶어서 진지위로 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지위는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않은 숙제가 있다고 밝혔다. 바로 국적 문제다. 진지위는 홍콩-캐나다 이중 국적을 가진 선수다. 국적 정리가 필요하다. 진지위는 “국적 정리하는 데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일단 시즌을 마친 후 구단과 국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아직까지는 국적 세 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라고 설명했다.



목표는 대한항공 주전과 V-리그 블로킹 1위

진지위의 데뷔전은 예상보다 당겨졌다. 진지위는 2019년 12월 19일 우리카드 전 4세트 막판에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 투입되며 V-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예상치 못한 데뷔전이었다. 박기원 감독뿐만 대한항공 관계자들도 진지위의 컨디션이 아직 100%까지 올라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진지위도 자신의 생각보다 빨리 데뷔전을 가졌다고 웃었다. 그는 “갑자기 감독님이 들어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코트 위에 들어가니 정신도 없고 드래프트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긴장 안 될 줄 알았는데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아직은 어리숙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데뷔전 소감을 전했다.

진지위는 2월 28일 기준으로 리그 5경기(7세트)에 출전했으나 블로킹이나 공격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아직은 원포인트 블로커로 잠시 코트에 들어갈 뿐이다. 신인 선수가 한 팀에 주전을 차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국가대표가 다수 포진한 대한항공에서 경기 출전 기회를 잡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지위는 현재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규민이 형, (진)상헌이 형, (이)지훈이 형이 운동하는 것을 보면 정말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아요. 아직 대한항공이라는 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지금은 충분히 컨디션을 끌어올린 뒤에 원포인트 블로커로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는 내년, 내후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확고했다. 팀 주전, 리그 블로킹 1위 그리고 먼 훗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한국을 빛내는 것이다. 진지위는 “미들블로커가 해야 될 역할은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잖아요. 블로킹을 많이 해 리그 블로킹상을 꼭 타고 싶어요. 블로킹상보다 중요한 건 대한항공의 주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국제 대회에 나가 한국을 빛내고 싶습니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진지위는 경희대 재학 시절 자신의 롤 모델로 현대캐피탈 미들블로커 신영석을 말했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그는 “예전에는 신영석 선수였는데 바뀌었어요. 지금은 (김)규민이 형이에요. 같이 훈련하면서 느껴요. 규민이 형은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팀 분위를 끌어올려 주시죠. 저도 규민이 형처럼 긍정적인 선수가 될래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남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꿈이 생기면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갖고 있으라고요. 실패해도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수로서 올바른 선수로 성장하고, 항상 팀에 민폐가 되지 않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할 테니 지금과 같은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



진지위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한 마디

TO. 경희대 김찬호 감독님께
"제가 한국인으로 귀화하기까지 감독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저와 관련된 많은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게요. 항상 건강하세요."

TO.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님께
"감독님, 저를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감독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활약을 펼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리그에서도 블로킹 많이 잡아내겠습니다."

TO.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부모님께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부모님께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해요. 항상 제 마음속에 계세요.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사랑합니다, 부모님."

진지위 프로필
생년월일 1993. 04. 18
신장/체중 195cm/93kg
포지션 미들블로커
프로입단 2019~2020시즌 1라운드 6순위 대한항공 지명
경력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홍콩 남자배구 국가대표
2014 인천아시안게임 홍콩 남자배구 국가대표

글/ 이정원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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