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착용이 불 댕긴 ‘팬데믹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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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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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확산 차단 위한 활동 제한 등
공중보건 강화 차원 ‘집단적 헌신’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예방·백신
인체실험·죽음·뇌과학 이슈까지
생명윤리·보건의료 쟁점들 고찰


책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은 팬데믹 윤리의 본질이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집단적 헌신’에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에서 정부의 코로나19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도심을 행진하고 있는 모습. 베를린 전역에서 열린 코로나19 방역 철폐 요구 시위에는 약 3만8000명이 참가해 “마스크는 재갈”, “팬데믹은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에이미 거트먼·조너선 모레노/박종주 옮김/후마니타스/2만2000원

12만5000여명. 2020년 6월,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지난 70년간 한국, 베트남, 걸프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미국이 치른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수를 넘어섰다. 여러 도시에서 집중치료실 수용 역량이 초과되고, 당연한 일상이 붕괴하면서 많은 이들이 생계와 현실 경제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한편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과장됐다. 바이러스는 조만간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1만9000석 규모의 실내 경기장에서 대규모 유세를 벌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없었다. 유세 참석자들은 ‘어떤 병이나 부상에 대해서도 트럼프 선거운동 캠프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

미국 대통령과 몇몇 주지사들은 자발성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마스크 착용을 ‘누구를 지지하느냐’의 정치적 문제로 만들었다. 그들은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다른 메시지를 내보내며 국민들에게 혼란을 줬고, 이 여파는 물리적 거리 두기, 선별 검사, 접촉자 추적, 양성 확진자 격리 등의 국가적인 정책에 방해가 됐을 뿐 아니라 확진자 급증이라는 비상사태를 초래했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인종차별과 같은 만성적 부정의의 영향력이 배가된다. 흑인, 히스패닉, 원주민 등의 저소득 노동자들은 백인이나 중산층 이상 계급보다 훨씬 많은 필수 노동, 즉 고위험 노동을 감당한다. 또한 이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실직하지만, ‘미등록 구성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가구에는 부양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 때문에 국가의 경기부양책 법안에서 소외당한다. 팬데믹 윤리가 요구하는 차원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공중보건 비상 상황 대처 이상의 것이다.
에이미 거트먼·조너선 모레노/박종주 옮김/후마니타스/2만2000원
신간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은 코로나19를 포함한 전염병 예방이나 백신 접종, 건강보험 등의 공중보건 이슈에서 인체·동물 실험, 장기이식, 죽음, 임신중지, 뇌과학 이슈까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생명윤리와 보건의료의 쟁점들을 소재로 한 책이다. 저자 에이미 거트먼과 조너선 모레노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생명윤리학적쟁점연구대통령직속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정치학자와 철학자다.

이들은 팬데믹 윤리의 본질이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집단적 헌신’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마스크 착용’이라는 ‘헌신’은 정치적 싸움의 땔감이 됐다. 저자들은 “전 지구적 팬데믹 앞에 민족주의를 둘 자리는 없다”면서 “전 세계의 공중보건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득”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폭넓은 연구, 공평하고 비용 부담 없는 보건의료 체제, 강력한 보건의료 인프라, 해당 분야 전문가를 신뢰하고 충분한 정보에 기반해 생명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지도자와 시민을 동시에 촉구한다.

생명윤리학은 현실이다. 유망한 의학 연구를 추구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인권, 윤리 등 다른 중요한 가치가 서로 경합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준들, 이를테면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자유 활동 제한, 정보에 기반한 집단적 동의를 구하는 일, 증명되지 않은 약물을 시도할 권리, 백신 공급과 산소호흡기 배분 등의 문제는 모두 생명윤리학의 핵심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재난 상황에서 지도자나 사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쉽게 간과되기도, 악용되기도 한다.

미 앨라배마주에서는 1930년대 초부터 40여년간 600명의 저소득층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매독 실험을 해왔다.

혹자는 비윤리적 인체 실험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1999년 펜실베이니아대 유전자 치료 실험에 참가한 제시 겔싱어는 몸에 주입된 바이러스로 인해 격렬한 면역반응을 겪은 끝에 사망했다. FDA는 겔싱어가 임상실험에 참여해서는 안 되는 상태였으며, 이전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겪은 부작용과 원숭이의 폐사 사례를 미리 밝혔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연구자 중 한 사람과 대학이 이 실험에 금전적 지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겔싱어의 죽음을 한층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2001년 존스홉킨스대학에서도 FDA 승인이 취소된 바 있는 약물로 인해 피실험자인 엘런 로시가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은 보건의료사의 유의미한 사건·사례들을 언급하며 피해 갈 수 없는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진다. “정당화할 수 있는 대가는 무엇이고 정당화할 수 없는 대가는 무엇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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