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21. 부채꼴 자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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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06. 오전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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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직각으로 세웠다가 천천히 내리는 부채꼴 자세는 위장 장애 완화와 하복부 지방 제거, 허리 강화에 도움이 된다. 시연 허수정.


부채꼴 자세, 범어로는 '우르드바 프라사리타 파다 아사나'는 누운 상태에서 손을 아래나 위로 올리고 다리는 곧게 펴서 모아준다. 허리가 바닥에서 뜨지 않도록 주의하고 다리를 직각으로 세웠다가 천천히 내려서 60도에서 45도, 30도, 15도 각도가 되게 하고 정지 상태를 유지한 뒤 완전히 내린다.

무릎을 구부리면 복부에 힘이 덜 들어가 운동효과가 떨어지고 허리가 바닥에서 떨어지면 척추에 무리가 올 수 있다. 때로는 다리를 직각으로 들어 올렸다가 내리기를 연속으로 할 수 있다.

이 자세는 복부 기관의 활동을 도와 위장장애를 완화하고 장 내 가스를 제거해준다. 하복부의 지방을 제거하는 데도 효과가 있으며 허리 부분을 강화시켜 바른 자세를 돕는다. 하단전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수직으로 높게 발을 편 자세의 모양이 꼭 부채를 펼쳐놓은 것 같다 하여, 부채꼴 자세라 한다. 부채란 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이 말이 줄어서 ‘부채’가 된 것이다. 부채를 한자어로는 '선자(扇子)'라고 한다. 대오리로 살을 만들어 넓적하게 벌려서 그 위에 종이나 헝겊을 바른 것이다.

민요에 "가을에 곡식을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 되니 첩을 팔아 부채 산다"라는 해학적인 가사도 있다. 여름에는 무엇보다 부채가 제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부채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둥근(방구)부채요, 또 하나는 접었다 펼 수 있는 접부채이다. 인류가 맨 처음 부채를 사용한 것은 원시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부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백제 견훤왕이 부채를 선물하는 내용이 적힌 '삼국사기 견훤조'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은 여러 곤경에 처할 때마다 이 부채를 흔들며 묘수를 찾아낸다. 지모와 지략의 화신인 제갈량의 부채는 곧 지혜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부채는 왕의 하사품이나 사신들에게 건네는 선물로도 쓰였다. 공작의 깃털로 만든 공작선이나, 수꿩의 꼬리털로 만든 치미선, 그 외에도 흑우선 백우선이 그것이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킬 뿐 아니라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므로 재앙을 몰고 오는 악귀나 병을 몰고 오는 병귀 같은 삿된 것도 쫓는다 믿었다. 옛날에는 단오날 부채를 선물하는 습속이 보편화되어 있었는 바, 이 부채를 염병을 쫓는 부채라는 뜻으로 벽온선(僻瘟扇)이라고 일컬었다. 악마를 쫓고 신명을 부르는 굿에서도 부채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전통혼례식에서도 신랑, 신부가 얼굴 가리개 용도로 부채를 사용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숯불을 피울 때에 사용했으며, 재인들이 줄 위에서 줄을 탈 때에도 언제나 부채를 사용하여 몸의 중심을 잡았다. 또한 가면극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서는 주로 양반들이 부채를 사용한다.

부채에 관한 일화도 많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은 왜적이 쳐들어오자 고군분투 성을 지키다가 순절했는데, 죽기 직전에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나서 부모에게 보낼 글을 부채에다 사언절구로 써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조 때 시인 임제는 사랑하는 임에게 부채에다 연서를 써서 건네며 사랑을 전달하기도 하였고, 추사 김정희는 부채에 글씨를 써서 부채 장사에게 이득을 보게 한 일화도 전해진다.

선비들이 판소리나 시조창이라도 한 곡조 뽑으려면 부채로 장단을 맞추기도 했고, 호신용으로도 사용했다. 부채를 들고 추는 부채춤은 근대 한국 무용 중 우아한 선과 리듬 그리고 멋을 가장 잘 살린 춤으로 특히 해외공연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늘날 한국 무용 중 빼놓을 수 없는 춤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고보니 한옥 처마 끝 추녀의 부드러운 곡선도 부챗살을 닮았도다.

지금은 손에 쥐어 주어도 그닥 반가워하지 않는 물건이 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선풍기나 에어컨이 대중화되기 전만 해도 부채는 여름을 보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으며, 곧 한국인에게 있어서 생활의 여유이며 슬기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로 한시(漢詩)나 손수 지은 짧은 시 한 소절 근사하게 새긴 부채는 보기만 해도 한여름 땡볕 정도는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차라리 정신적인 휴식을, 평온을 가져다주는 물건이었으며 하나의 풍류이고 예술품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도 교역의 물결을 타고 중국의 부채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17세기에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부채가 만들어졌고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도 만들게 되었다.

조병추달(操柄椎達)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부채 자루를 꽉 잡고 필요할 때 미루어 쓴다는 뜻으로 눈앞의 삶이 고단해도 뜻을 꺾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이 딱 그런 때인것 같다.

이처럼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부채는 아련한 향수로 남아 있을 듯하다.

부채

/최진태

매미 울음 애닯구나

사랑노래 부르는지

무더위 끄는데엔

부채 한 자루 딱이련만

이내 몸의 깊은 불길은

무엇으로 끄오리까

벽온선(辟瘟扇)아! 이 바람은

/오기태

(중략)

벽온선아!

오늘은 날 위한 시원한 바람 대신

내 속에 살금살금 들어와 주인 행세하는

부끄런 탐욕과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침묵으로 침묵으로 살아내는

부끄런 마음 활활 태워다오

벽온선아!

가만히 부채 보낸 뜻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냈구나

눈물도 못 끄는 불 부채라서 어이끄려나

오늘은 날 위한 바람 대신

부끄런 우리네 삶 활활 태워다오.

염천의 무더위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이라고 화끈하게 부채꼴 자세를 취하며 우리 인체의 7개 차크라(기(氣)의 응집소) 중 아랫배쪽 하단전에 위치하고 있는 두 번째 스바디스타나 차크라에 힘 한번 불끈 주어 보자.

이 곳은 흔히 에너지 터미널이라고도 하는데 이 차크라가 뚫리면 몸과 마음, 영혼에 창조적인 생명 에너지가 흘러 삶의 경외와 정열로 채워진다 한다. 게다가 해인삼매(海印三昧)까지 이룬다고들 하니 어찌 귀가 솔깃해지지 않으리오.

이를 통해 떵떵거리는 무더위와 만인을 힘들게 하고 있는 시대의 희귀 전염성 질환도 동시에 헤쳐나가 보면 어떠할까.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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