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6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5909억원으로 전년 말(709조529억원)에 비해 4영업일 만에 4619억원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이 전년 말보다 2054억원 줄었고, 신용대출도 845억원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만 해도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에 따른 대출 한도 문의가 있었지만, 현재는 관련 문의마저 드문 상황”이라며 “계절적 요인에 더해 주택 가격이 하락 추세로 돌아서며 대출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1월은 은행 대출의 비수기로 꼽힌다. 연초에 받은 성과급 등으로 지갑 사정이 넉넉한 데다, 이사 등의 자금 수요도 적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1월 초에는 영끌과 빚투 열풍으로 4영업일 만에 신용대출이 4534억원 늘어났다.
새해 들어 대출 잔액이 줄어든 건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출 금리가 오르며 '개인들이 대출을 받을까 한 번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난해 말 시중은행으로부터 들은 뒤 가계대출이 잡혔다는 신호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예금은행의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5.16%로 2014년 10월(연 5.08%) 이후 7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연 5%를 넘었다. 지난해 1월(연 3.46%)과 비교하면 1년 사이 1.7%포인트 올랐다.
돈을 빌리는 가격은 올라간 반면,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상승세는 주춤해졌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데다 자산가격이 이미 많이 올라 가격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위험 선호가 줄어들고 있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더 빠르게 많이 올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지난 6일 발표한 3분기 자금순환 통계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했다.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여유자금은 35조원으로 1년 전(29조8000억원)보다 5조2000억원 늘었다. 주택 거래 둔화와 대출규제 등으로 돈을 덜 빌린 결과다. 가계에서 국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돈(26조1000억원)도 직전 분기(29조2000억원)보다 3조1000억원 줄었다.
우선 돈값(금리)이 비싸지고 있다. 한은이 오는 1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Fed가 긴축의 속도를 높이며 시장금리도 오르고 있다. 고정금리 주담대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의 금리는 지난해 말 2.259%에서 지난 7일 2.5%까지 올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중 억눌렸던 수요가 분출할 가능성 있는 만큼 대출 감소세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이 주춤하며 대출 수요 자체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적격대출 등에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주택금융공사가 민간 금융사를 통해 판매하는 적격대출은 최장 40년간 고정금리로 대출해준다. 적격대출 상품의 올해 1월 금리는 연 3.4%로 주요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보다 낮게 판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농협 등 일부 은행에서는 판매된 지 1·2일 만에 판매 한도가 마감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전에도 적격대출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긴 했지만, 최근처럼 몰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금리 인상이 우려되는 데다 일반 대출상품 대비 금리 매력도가 높아지면서 관심이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