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코로나 충격과 산업지형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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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02. 오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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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는 그 자체로 역동적이다. 단기적으로 재화의 수급에 따라 가격이 변화하고 장기적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산업이 부침한다. 무수한 변수들은 주식시장에 집약된다. 전체 시가총액은 국가의 경제규모를 나타내고 개별기업 순위에 주력산업이 투영돼 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은 경제를 주도하는 산업의 현 주소이고 특히 1위 기업의 상징성은 크다.

제네럴모터스(GM)는 20세기 미국 산업의 표상이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다." 이 말은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발탁한 GM 사장 출신인 찰스 윌슨의 의회 인준 청문회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GM의 시대는 1970년대 초반 중동발 오일쇼크를 계기로 저물기 시작했다. 미국산 대형차량이 외면받으면서 높은 연비의 일본산 소형차가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에 도요타ㆍ혼다ㆍ소니 등 일본기업들이 약진하고 미국의 전통적 제조기업들이 퇴조하는 가운데 GM에 뒤이은 대표기업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디즈니가 미국 산업의 새로운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분석가들에 대비해서 영화와 콘텐츠라는 소프트 사업 위주의 디즈니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도 완강했다. 정보화 혁명으로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구조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되는 변혁기의 현상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 산업을 대표하는 구글ㆍ애플ㆍ마이크로소프트ㆍ페이스북 등은 모두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업들이다.

미국 대표기업들의 변천을 반추하는 이유는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지형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 이내에는 반도체 기업들이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바이오, 헬스케어, IT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코스닥은 바이오 기업들이 석권하는 와중에 콘텐츠, 게임 기업들이 명함을 내밀고 있다. 주식시장의 터줏대감 격이었던 금융주와 철강주, 자동차 관련주가 10위권 이내에서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부분이 충격의 강도를 나타낸다.

코로나19의 여파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난무한다. 그러나 경제산업의 관점에서 코로나는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는 일시적 충격이고 본질은 디지털 격변의 가속화다. 실제로 지금까지 진행돼 오던 비대면, 플랫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디지털 트렌드의 급속한 확산은 일상생활에서 체감된다. 온라인 유통의 성장과 오프라인 유통의 침체, 콘텐츠 스트리밍의 확산과 영화관의 불황, 직장 내 원격근무의 확대, 학교의 원격교육 도입 등이다. 생활공간에 대한 방역이 실행되면서 위생과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양상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순위변동이 대변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대표종목들은 산업의 흥망성쇠를 반영한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철도와 철강 관련 주식들이 각광을 받았고 이후 자동차, 전기전자, 컴퓨터, 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 변천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건설주에서 시작해 무역, 금융, 자동차, 반도체로 중심이 이동했다. 10여년 전에는 사업의 실체성조차도 의심받던 바이오, 게임 분야의 기업들이 당당히 간판으로 올라섰다. 물론 변화무쌍한 주식시장의 특성상 시가총액도 단기적으로는 요동치기 마련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산업의 부침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세상은 시나브로 변한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은 특정한 계기를 통해 불현듯 진행된다. 모래밭에 스며드는 물처럼 번져나가던 디지털, 바이오 등 신산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중심에 섰다. 최근의 시가총액 순위변동은 아날로그 시대의 업종에서 디지털 산업으로의 주도권 이전을 웅변한다. 기업들이 현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미래산업의 관점에서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정책당국은 역동적 생태계라는 21세기 신산업의 특성에 부합하는 개방성과 융합, 탈규제와 자율에 기반하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 배경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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