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장르영화

비슷한 글5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따라서 픽션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기록하는 현실이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외형뿐만 아니라 영상에 담긴 인간의 내면 역시 포함하는 현실성이다. 다큐멘터리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상업적 이윤을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제작사와 투자자들은 선호하지 않는 장르다.

다큐멘터리의 개념과 의미

다큐멘터리(documentary)라는 개념은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이 처음 사용했는데, 사실에 입각한 촬영과 합리적인 재구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영화를 의미한다. 다큐멘터리는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 세트가 아닌 실제 공간,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다큐멘터리는 논픽션(nonfiction)이라는 용어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논픽션은 픽션(fiction)이 아닌 영상과 텍스트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논픽션은 다큐멘터리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며, 다큐멘터리는 논픽션의 한 하위 영역 중 하나다.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객관적 기록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객관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부터 현실은 주관적으로 변하며, 프레임이 담아내는 순간부터 해석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언제든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며, 특정 이념의 찬양으로 치우친다면 선전영화(propaganda film)로 변질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기대하는 다큐멘터리의 신빙성이란 장르의 관습적인 표현과 화법에 익숙해진 인지의 효과이며, 이는 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 아래 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 재현의 완벽성보다는 감독이 현실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통제했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작가적 정체성으로 이끌어 낸 주관적 현실이며, 현실 가치에 대한 존경과 비판의 창조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며, 사건의 주체인 동시에 관찰자다.

다큐멘터리의 역사와 발전

영화는 탄생했을 때부터 다큐멘터리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퇴근하는 공장 노동자의 모습이나 기차가 도착하는 상황을 담은 최초의 영화들은 모두 살아 있는 현실을 직접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분 남짓의 이 초단편들이 합리적인 재구성과 창의적 해석의 틀로 현실을 통제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다큐멘터리의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등장했던 뉴스영화(newsreel)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군(선)과 적군(악)의 이분법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 단차원적 보고일 뿐, 전쟁 발발의 원인이나 폐해에 대한 비판적 해석은 결여되었기에 진정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선구적 작품은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1922)다. 이는 북극의 한 이누이트 가족에 관한 민족지적 기록으로, 수동식 카메라와 저감도 필름을 이용해 원주민의 생활상을 투쟁하는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그렸다. 이 영화야말로 이누이트 가족의 일상을 사회적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현실의 가치를 작가적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제시한 진정한 다큐멘터리다.

키노 아이(kino eye) 그룹으로 대변되는 1920년대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은 다큐멘터리의 큰 발전을 이끌었다. 키노 아이는 '영화의 눈(kino glaz)'이라는 뜻으로, 이 집단의 작업 방식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은 영화의 눈인 카메라를 통해 보다 정확한 실체를 포착하려 했으며, 현실의 가치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바탕 위에서 바로 새기고자 했다. 반대로 삶의 인위적인 허구화를 추구하는 극영화를 부르주아 영화라고 비판했다.

대표작으로 '영화로 보는 진실'이라는 의미의 〈키노 프라우다(kino pravda)〉(1922∼25)를 들 수 있는데, 시나리오 없이 촬영된 이 23부작은 카메라의 응시만으로 삶 자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The Man with the Movie Camera)〉(1929)는 키노 아이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이 작품은 삶을 포착하고 그 가치를 인지하는 카메라의 능력에 대한 기록이며, 동시에 감독의 통찰력이 반영된 영상 에세이다.

1930년대 이후에는 유럽의 다큐멘터리가 주목받았다. 영국에서는 평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사회주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는데, 〈영국의 소리(Listen to Britain)〉(1942)가 대표적이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자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은 〈빵 없는 대지(Land without Bread)〉(1932)라는 단편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여기서 냉담한 카메라로 빈곤에 시달리는 벽촌을 제시했는데, 굶주린 빈민을 배부른 교회와 병치함으로써 사회적 폐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반면, 영화의 무한한 파급력을 일찍이 터득한 독일은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제작한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1935)와 〈올림피아(Olympia)〉(1938)는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이정표와 같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자는 뉘른베르크에서 개최되었던 나치의 전당대회를 기록한 영화로, 감독은 히틀러를 신격화했다는 비난을 평생 피할 수 없었다. 후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최초의 스포츠 다큐멘터리로서, 선수들의 육체적 건강함을 찬양하는 동시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건강성을 칭송하는 선전영화다. 이 작품은 특히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고(故)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 장면을 담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현재도 유용한 영상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알랭 레네(Alain Resnais)는 〈밤과 안개(Night and Fog)〉(1955)를 제작하여 홀로코스트 참상을 폭로했다. 감독은 여기서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대량학살에 관한 흑백 뉴스릴과 현재를 담은 컬러 필름을 병치하며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죄의식의 관계로 연결시켰다.

1960년대에 다큐멘터리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촬영 장비의 소형화 및 경량화가 두 가지의 새로운 영상철학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와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감독의 관찰자적 접근을 중시하며 철저히 비공식적인 작업 태도를 추구한다. 여기서 감독은 생생한 사건의 직접성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 앞의 대상을 방해하지 않고 최대한 배려한다. 케네디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다룬 〈프라이머리(Primary)〉(1960)와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의 공연 실황을 담은 〈김미 셸터(Gimme Shelter)〉(1970)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시네마 베리테는 감독의 의도적 연출과 등장인물의 연기를 허용함으로써 카메라의 존재를 공식화했다. 따라서 감독은 특정 순간을 예상하고 자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선동자이며,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자다. 대표작으로 〈어느 여름의 기록(Chronicle of A Summer)〉(1961)과 〈아름다운 5월(The Merry Month of May)〉(1963) 등이 있다.

두 양식 모두 현실의 직접적인 재현을 추구하기에 사전준비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저급한 대본의 횡포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직관적인 영상을 창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양식은 기동력이 강화된 카메라를 이용한 다큐멘터리 제작의 방법론만을 의미하며, 그 자체가 작품 형식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다큐멘터리는 TV로 자리를 옮겼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저렴한 TV 다큐멘터리는 제작과 보급의 차원에서 많은 장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TV는 광범위한 네트워크 방영을 전제로 하기에 다큐멘터리 고유의 정체성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의 사회 비판적 관점은 각종 단체의 압력을 받기 쉬워졌으며, 방송사를 곤란하게 할 소지가 다분하기에 검열도 생겨났다.

현대의 다큐멘터리

1980년대 이후에는 다큐멘터리의 자명성을 거부하는 자기 성찰적 움직임이 등장했다. 성찰적 다큐멘터리는 주관적 의식 자체에 관한 영화로서, 개인의 지각이 현실을 해석하는 데 부적절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가에 대한 의심마저 소재로 다룬다. 창의적인 영상 담론으로 심오한 여운을 남기는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의 〈태양 없이(Sans Soleil)〉(1983)가 대표적이다.

반면에 다큐멘터리의 사실주의 정신을 도용하는 페이크(fake) 다큐멘터리, 일명 모큐멘터리(mockumentary)도 등장했는데, 장선우의 〈나쁜 영화〉(1997)를 예로 들 수 있다. TV로 옮겨간 다큐멘터리는 드라마와 융합하면서 하이브리드 형식의 다큐드라마(docudrama)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다큐드라마는 단막극으로 시작하여 미니시리즈로 발전했는데, 〈불멸의 이순신〉(2004), 〈미국을 일으킨 거인들(The Men Who Built America)〉(2012) 등이 대표적이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전통은 〈샤인 어 라이트(Shine A Light)〉(2009)와 같이 콘서트 실황을 담은 음악 영화로 계승되었으며, 시네마 베리테는 〈화씨 9/11(Fahrenheit 9/11)〉(2004) 등에서 그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2

확장영역 접기

Barnouw, Erik(1993). Documentary: A History of the Non-Fiction Film. 이상모 옮김(2000).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 다락방.
Gauthier, Guy(2005). Le Documentaire, Un Autre Cinema. 김원중·이호은 옮김(2006).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영화』. 커뮤니케이션북스.

출처

출처 도움말
확장영역 접기

영화 장르의 개념과 장르영화의 속성, 그리고 그 역사와 발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더보기

  • 저자

    저자 배상준은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다. 건국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마르부르크필립스대학교에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미학적 양식화에 관한 연구’로 영화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엘에이치 멀티미디어사업팀 제작이사, 인문콘텐츠학회 학술이사와 편집이사, 한국방송학회 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영상과 상호 미디어성』(2013), 『영상 이론과 실제』(2012), 『영화예술학 입문』(2009), 『유럽 애니메이션 대표작가 24인』(2006) 등이 있다. “SF영화의 다문화(주의)적 시선: [디스트릭트 9]”(2014),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사회고발 매체로서의 법정영화” (2013), “필름 누아르? 필름 블랑크!: 박찬욱 감독의 [박쥐]” (2011), “미하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 폭력의 형상화와 장르의 전복”(2010)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유럽의 작가영화와 영화 이론, 장르영화, 이미지와 미장센 등이 주요 연구 분야다.

    더보기
  • 제공처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