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정은지, 욕을 해도 멋있는 '강한 여자' 판타지

입력2021.11.11. 오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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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티빙

"나 강지구,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꼭 술 안마시고 남자친구 먹을 거다."

티빙 오리지널 '술꾼 도시 여자들'의 강지구(정은지)는 사람 많은 술집에서 이 같이 소리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지구의 모습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통쾌한 기분을 들게 한다. 욕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분명 무시무시한 욕설을 퍼붓고 있는데, 욕이 너무 입에 착착 감겨 더 듣고 싶게 만든다. 섹드립과 욕설은 분명 유해한 것이지만, 적어도 지구 입에서 나온 것들은 무해하거나 멋있게 느껴진다.

소주는 절대 꺾어마시지 않는 화끈함에, 누구한테나 앞뒤 재지 않고 말은 짧고 뒤끝 없고 의리도 끝내주는. 아부하는 꼴도 못봐 선생님이던 시절 회식 자리에서 교장의 술 권유에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며 그대로 집에 가버리는 강단까지. 가르치던 학생들에겐 선물 한보따리를 받았을 정도로 사랑 받았고, 대학생 때는 춤 실력과 아우라로 클럽을 평정했던 '인싸'의 재질을 가진 그였다. 친구의 긴급 SOS 문자에 우사인볼트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화려한 발차기로 변태를 잡고, 친구에게 끈적한 손길로 추근대는 남자에겐 주먹부터 날리는 지구의 모습은 여자도 반할 만큼 멋있다. 

여자가 좋아하는 여자이자 친구하고 싶은 츤데레 스타일. 환상 속의 친구 모습을 하고 있는 지구는 여자 셋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에서 남주의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있는 여심 저격 캐릭터다. 하지만 이 '인싸'의 재질이 다분한 지구는 서른이 되어 은둔형이 되었다. 친구라곤 지연(한선화)과 소희(이선빈) 딱 둘뿐이고, 가족과도 연을 끊은 채 혼자 살고 있다. 당연히 애인도 없다. 종이접기 유튜버로 직업을 바꾼 지구는 방송을 할 때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종이만 접는다. 과거와 현재 모습 속의 이 간극은 지구라는 인물에 더욱 흥미를 갖게 만든다. 아마 그를 짝사랑하던 여학생으로부터 비롯된 변화가 아닐까 싶다만은. 사연있는 선택적 은둔자이자, 사랑 받는 멋진 언니의 폼을 모두 지닌 게 바로 지구다.



이런 다단한 캐릭터를 워너비로 열광하게 만든 건 이를 연기한 게 바로 정은지여서다. 무심한 손길로 맥주병을 따는 시니컬한 표정은 진짜 바이브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모습들이다.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종이접기만 하는 모습은 워너비 여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정은지는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언니의 기운으로 이것마저 멋있어 보이게 만든다. 지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부침 있는 삶을 살아온 정은지에 의해 완성됐다는 것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수백만 팬을 호령하던 에이핑크의 메인보컬이자, 배우 데뷔작 '응답하라 1997'으로 대번에 관심을 집중시켰던 그는 N년차 걸그룹 경력으로 집중력 있게 자신에게 포커스를 이끌 줄도 안다. 또한 연예계에 오래 발 담그며 겪어온 경험들로 현실에 발붙힌 캐릭터를 곧잘 연기하기도 한다. 

지구를 보며 이런 생각도 든다. '응답하라 1997' 고딩 시원이 서른이 됐다면 지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많은 교차점을 보이는 두 캐릭터 사이에서 정은지는 전매특허의 쿨한 바이브를 10년이 지난 오늘날 발전까지 시키며 시청자를 더욱 열광하게 만든다. 기시감 따윈 언급할 수도 없는, 같지만 또 다른 매력으로 말이다. 욕을 해도 멋있는 강한 여자의 판타지적인 연기는, 아마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은지를 따라올 자가 없다. 과거 시원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도 그렇게 선망의 캐릭터로 스며들고 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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