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톡톡] 조코위 대통령은 왜 천도를 결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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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04. 오전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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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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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인도네시아 조코위(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수도를 지금의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으로 알려진 칼리만탄섬 동부로 옮기는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수도 이전은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때부터 이어져온 묵은 의제다.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4월 재선에 성공,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2기 정부가 출범하는 올 10월이 되기도 전에 수도 이전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아직은 발표만 한 상태이지만 이것만으로도 50년 묵은 숙제를 해치운 역사적인 결정으로 평가된다. 청사진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타당성 조사가 이어지고 2021년부터 본격 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조코위 2기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까지는 어느 정도 천도작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수도 이전 발표 자체는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지만 그 속도는 예상 밖이다. 임기 내에 결실을 보고야 말겠다는 조코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조코위 대통령은 칼리만탄 동부를 새로운 수도로 정한 이유로 자연재해가 적고, 국토 중앙에 위치하여 입지조건이 전략적임을 들었다. 또, 칼리만탄 지역 주요 도시인 발릭빠빤, 사마린다와 가까워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는 점도 고려하였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에는 이미 16만ha 규모의 국유지가 있어 토지매입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자카르타는 순다 끌라빠라는 작은 어촌으로 시작해 향료 등을 실어나르는 무역항으로 발달해 35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문제는 자카르타와 동서남부의 위성도시를 아우르는 대(大)자카르타 지역이 3000만명이 넘는 인구를 품고, 인도네시아의 미래 발전을 견인해 가기에는 여러 모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자카르타의 유명한 교통체증을 들 수 있다. 통행량 증가에 따라 상황은 해마다 심해지고 있지만 도로를 신규로 건설하거나 기존 도로를 확장할 수 있는 여력은 크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퇴근 시간 주요도로 홀짝제 확대 시행이라는 극약처방으로 간신히 교통흐름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늘길도 답답하다. 자카르타의 관문공항인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은 2016년 제3터미널을 새로 열었지만 활주로 증설이 늦어져 늘어나는 국내외 항공수요를 잘 감당하지 못했다. 착륙할 때 공항 주변을 선회하며 관제사의 착륙허가를 기다리느라 몇십분을 허비하는 일도 흔했다. 지난 8월 중순 제3활주로 오픈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의 항공편 증가 예측 수요를 따라 잡기엔 충분하지 않다.

치수(治水)도 어렵다. 해마다 우기가 되면 시내 곳곳이 물에 잠긴다. 홍수 대비를 잘하는 것이 자카르타 주지사의 능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진 지는 이미 오래이다. 그러다가도 건기가 되어 가뭄이 들면 원활한 생활용수 공급이 어려워지곤 한다. 지반이 약한 데다 지하수를 많이 뽑아내서 도시 전체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기오염 이슈도 부각되고 있다.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대기오염 수치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자카르타의 대기오염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닐텐데 요즘들어 부쩍 언론에 문제제기가 많고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급기야 지난 7월에는 시민단체와 환경운동가들이 대기오염 저감 정책을 잘 펴지 못한 점을 들어 대통령과 정부를 고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행정기능을 새로운 수도로 옮겨도 자카르타는 경제중심지로 남을 것이기에 과밀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수도이전에도 불구 대중교통과 도로망 확충, 도심하천정비, 지반침하문제해결 등 자카르타에 남은 과제는 계속 해결해 나가야 한다.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번 천도계획에는 국토 중앙에 수도를 두어 자카르타와 자바섬에 발전의 과실이 집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고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복안도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전 계획은 야심차고 공격적이다.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 청사진으로 타당성을 판단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그 안에서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는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수도 이전 자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그룹도 분명히 있다. 절차적, 법적 흠결이 거론되기도 한다. 수도 이전으로 삶의 터전이었던 자카르타를 떠나 칼리만탄 동부로 가야 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 측은 관사 제공이나 편의시설 확충 같은 당근, 이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며 기한 내 이전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교육과 편의시설이 갖추어지기까지 가족을 자카르타에 남겨두고 오는 기러기 공무원들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경제중심지는 여전히 자카르타로 남을 것이기에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부처 이전계획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재무부 등 경제관련 부처는 자카르타에 남게 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중요한 협의가 자카르타와 신수도 양 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경우 양 도시를 오가며 잦은 출장을 다녀야 한다던지 하는 비효율은 당분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 및 공공부문과의 협업이 많은 기업이나 기관의 경우 사무소를 자카르타에 두어야 할지, 신수도에 두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고민도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될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동일 생활권이다. 자카르타에서 칼리만탄 동부까지는 순비행시간만 2시간이다. 공항 이동시간 및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더 길어진다. 인도네시아 관련 사업을 하며 하늘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불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양동철/정리=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은 누구 = 수출입은행에서 남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다. 동네에서 우연히 한국에 와 있던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을 만나면서 23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언어를 공부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책과 신문을 읽으며 인도네시아를 알아갔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금융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여름부터 3년간 자카르타 현지법인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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