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올해 32조 순매도… 한국 증시, 어쩌다 서러운 신세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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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6.10. 오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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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의 뉴스 저격] 고질병 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장보다 7.23포인트(0.28%) 내린 2618.92로 시작했고, 코스닥지수는 1.73포인트(0.20%) 내린 873.22에 개장했다./연합뉴스

“한국에 살 만한 주식이 없습니다. 북핵 리스크 때문은 아니고요. 선진국 중엔 단연 미국이고 신흥국 중에서도 대만 같은 매력적인 나라가 있는데 굳이 한국을 사야 할 이유를 못 찾는 거죠.”(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 A씨)

32조원. 올 들어 이달 8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순매도한 금액이다. 외국인들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는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선물·옵션 등을 모두 합쳐 4100조원어치를 사들였지만, 내다 판 금액이 4132조원으로 더 많았다. 이런 ‘셀(Sell) 코리아’ 행렬은 2000년 이후 몇 해를 제외하곤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부터 나타난 외국인들의 거센 매도 행렬은 각국 기준금리 인상 때문에 촉발된 것이긴 하지만, 한국 증시에서 이탈하는 자금은 유독 두드러지는 규모다. 한국 증시는 유사시 가장 먼저 돈을 빼가는 곳. 세계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 증시와 상장 기업들이 인기를 잃어간다는 건 단지 해당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민 전체의 노후도 달린 문제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이 1분기 말 기준 157조원. 전체 국민연금(930조원) 적립금의 16.9%쯤 된다. 이 돈이 적정한 평가를 받으며 불어날수록 국민도 더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평가절하)’ 고질병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고, 왜 고쳐지지 않는 걸까.

그래픽=백형선

한국 증시, 페루·칠레·남아공보다 저평가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어느덧 세계 10위에 올라 선진국 소리를 듣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서만큼은 선진국 클럽에 명함도 못 내미는 형편이다. 오히려 위상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실적이나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얼마나 평가받고 있는지를 보는 지표인 PER(주가수익비율)과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보면 민낯이 드러난다.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 전체 PER은 9.9배, PBR은 1.0배 수준이었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PER이 두 자릿수가 안 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전 세계 증시 평균 PER이 17배, 미국은 21배, 신흥국 평균조차 12배다. 중국, 대만은 물론이고 경제 규모나 증시 규모가 우리보다 작은 칠레(12.4배), 남아공(11.1배), 페루(10.5배) 주식도 한국보다는 후한 평가를 받는다.

시가총액이 장부가치 대비 몇 배 수준인지를 보는 PBR은 더하다. 현재 한국 증시 전체 PBR은 딱 1.0배. 현재 주가가 회사 자산을 다 팔고 청산했을 때 가치밖에 안 된다. 선진국 평균(2.8배)은 물론이고 신흥국 평균(1.6배)보다도 훨씬 낮다.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와 자주 비교하는 대만은 2.5배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 증시에서 한국 증시의 비율은 역주행 중이다. 세계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지표로 삼는 대표적인 지수인 MSCI ACW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전 세계 지수)에는 선진 23국, 신흥 24국 등 47국의 약 3000종목이 담겨 있다. 이 지수 대비 MSCI 한국 지수의 비율은 2011년 2.6%에서 올 들어선 1.6%까지 떨어졌다.

중국 성장세 약화되자 인기 잃어

한국 증시도 반짝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중국 경제가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폭풍 성장하던 2000년대, 세계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로 몰렸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웠던 때라 한국이 대리(proxy) 투자처로 각광받았던 것이다.

여기에 안주하던 한국 경제는 삼성전자·현대차 등 수출 제조업이 먹여 살리는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중국이 재채기하면 감기 걸리는 약골이 되어갔다. 한국 증시와 중국 증시의 상관계수는 2000년 이후 20년간 평균 0.84에 달한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깝다는 건 그만큼 강하게 연결된 시장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하면서 지금은 대리 투자처로서 역할을 잃었다. 최근에는 미·중 갈등과 중국 코로나 봉쇄 등이 겹치면서 중국 성장세가 급격히 식어 대(對)중국 산업 비중이 큰 우리나라 증시는 더욱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 중심의 탈(脫)세계화·탈중국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중국과 강하게 연동된 한국 증시는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공급망 분절에 따른 위험은 아직 우리 주식시장에 반영되지도 않았다”면서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발되는 ‘쪼개기 상장’도 저평가 원인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기업들의 ‘쪼개기 상장’ 문제다. 올 초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한 게 대표적 사례다. 핵심 사업부를 빼내 따로 상장하면 기존 회사 주주들은 ‘앙꼬 없는 찐빵’을 든 신세가 되고, 해당 주식 평가가치는 뚝 떨어진다.

카카오·네이버·SK 등이 자회사·계열사를 줄줄이 상장시켜 기존 주주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는데, 유독 우리 증시에서 이런 사례가 많아서 문제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사이 신규 상장기업 788곳 중 최대 주주가 또 다른 회사를 상장하거나 인수한 기업을 상장시킨 이른바 ‘모자(母子)기업 동시상장’ 사례가 20%인 157곳에 달했다. 찐빵에서 앙꼬를 빼내 자회사를 상장시키면 모회사 기업가치는 평균 33% 하락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 시장에서 이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 상장기업 수 대비로는 한국이 10배는 많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한국 기업들의 평균 배당 성향(20%대)과 배당 수익률(1%대)도 세계 최하위권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구글은 바보라서 알짜 유튜브를 상장 안 하는 게 아니다. PC·휴대폰·플랫폼 등 각종 미래산업을 다 가진 애플도 몰라서 자회사를 상장 안 시키는 게 아니다”라며 “기존 주주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이런 동시상장·중복상장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 한,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 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대부분의 한국 주식을 파는 중에도 최근 KB·신한·하나·우리 같은 금융주를 주워 담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남우 전 메릴린치 한국 공동대표(현 연세대 교수)는 “외국인들이 대주주가 없는 금융주를 사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 종목은 쪼개기 상장 같은 거버넌스(지배구조)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외국인들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대만에 투자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되면 나아질까]

정부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편으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번이 첫 번째 도전은 아니다. 벌써 4수(修)째다.

MSCI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사가 작성해 발표하는 지수로, 선진(DM)·신흥(EM)·프런티어시장(FM)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중국, 인도 등 25국과 함께 신흥 지수에 포함돼 있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MSCI 기준에선 아직 신흥국 신세인 것이다. 외환시장 개방이 미흡하다는 등 시장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이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자금 규모는 작년 6월 말 기준 16조3000억달러(약 2480조원). 세계 전체 펀드 자산의 약 30%가 이 지수를 따라 움직인다. 한국이 선진국 지수에 편입된다면 선진국에 투자하는 국제 자금이 우리나라 증시로 흘러들게 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이 자금 규모가 50억~360억달러가량 될 걸로 예상한다.

MSCI 선진국 편입을 위해선 먼저 후보 국가 목록을 뜻하는 관찰 대상국(watch list)으로 등재돼야 한다. MSCI는 매년 6월 리스트를 발표한다. 관찰 대상국에 오르더라도 최소 1년은 지나야 지수 편입 대상이 되고, 지수 편입은 편입 결정 1년 뒤에 이루어진다. 아무리 빨라도 2024년 이후에나 선진 지수 편입이 가능한 것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더라도 자본 유입이나 주가 상승 같은 긍정적 효과가 단기간에 일어나기 어렵다”며 “지수 편입보다는 우리 주식시장의 체질을 강화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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