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원화는 물론이고 위안화, 엔화, 유로화 등이 모두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화 강세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와 고물가 등으로 다들 경기 둔화를 걱정하는 와중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홀로 강하게 돈줄을 죄겠다고 예고하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 상단을 코로나19 초기의 1285원 수준, 혹은 1300원까지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일 한국투자증권의 분석을 보면 올 4월 원·달러 환율 종가 평균은 달러당 1234.1원으로 코로나 공포가 급속히 확산했던 2020년 2분기 평균 1220.2원보다 14원가량 높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50원대를 넘어 1300원대에 육박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코로나19 사태 초기밖에 없다. 종가 기준으로 보면 2020년 3월19일(1285.7원), 3월23일(1266.5원) 이틀뿐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2원 오른 달러당 1265.1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9일 당국의 구두개입성 발언 이후 16.6원 급락했다가 다시 하루 만에 하락폭을 상당 부분 반납했다.
코로나 확산 초기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이던 2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경제는 비교적 양호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한 것은 워낙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최근 102~103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8%가량 강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초강세, 소위 ‘킹 달러’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면서 “물가압력이 지속되고 통화정책 차별화가 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연준은 오는 3~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실시할 것이 유력하다. 시장에서는 6~7월에도 연준이 빅스텝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가격 폭등을 겪고 있는 유럽, 코로나 봉쇄조치로 경기 둔화 우려가 높아진 중국, 경기부양에 나서는 일본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펴면서 달러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위안화와 연동하는 움직임이 뚜렷한 원화도 덩달아 약세다.
일각에선 ‘서학개미’라 불리는 한국의 해외투자 분위기 역시 원·달러 환율의 수준을 바꾸는 원인으로 본다. 외환당국은 2020년을 기점으로 서학개미들의 달러 매수 규모가 대폭 확대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의 달러 매수 수요가 강해졌다는 말로, 이 현상이 달러 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달러 강세를 누그러뜨릴 만한 재료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어서 원·달러 환율은 높은 변동성 속에 상승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선임연구위원은 “지속적으로 심리적 지지대가 무너진 가운데 추가 상승 여지는 계속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상단을 1300원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면서 “5~6월 FOMC 전후로 달러 강세가 완화되면서 하락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주요 통화의 약세,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등으로 달러에 대한 투기적 순매수 포지션이 유지되고 있어 원·달러 환율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