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류하는 광역교통망 신설
노선·재원 분담 놓고 티격태격
용인·안양·수원·화성시 등서 앞다퉈 노선 추가 요구로
인덕원~동탄선 복선전철, 3년 지연에 노선도 구불구불
김포·인천시 사업비 분담 갈등…원당~태리 광역도로 끝내 무산
수도권서 서울 통근 1시간 넘어…OECD 평균보다 2배이상 길어
서울과 경기·인천을 오가는 철도·버스·도로 등 수도권 광역교통망 신설이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 노선, 재원 분담 등을 두고 지역 이기주의가 심해서다. 주무관청인 국토교통부는 강제 조정 권한이 없어 사실상 광역교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역철도 등 신설 줄줄이 표류
5일 서울시에 따르면 강서구 방화동에서 인천 검단신도시와 경기 김포한강신도시로 이어지는 지하철 5호선 연장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5호선 방화차량기지와 인근 건설폐기물처리장을 한꺼번에 옮기려는 서울시 계획에 인천시, 김포시가 반발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이른바 ‘혐오시설’인 건설폐기물처리장을 이전 대상에 끼워넣으려 하고 인천시 등은 선호시설만 받으려 하고 있다.
인덕원~동탄선 복선전철(경기 안양~화성)은 2015년 경기 용인·안양·수원·화성시가 앞다퉈 추가 역 신설을 요구하면서 사업이 3년가량 지연됐다.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나서 4개 역 신설을 관철한 탓에 전철 노선은 버스처럼 구불구불해졌다. 배차시간이 길어진 데다 굴곡이 워낙 심해 ‘거북철’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천 검단과 김포 일대를 지나는 ‘원당~태리 광역도로’는 김포시와 인천시 간 사업비 분담 비율을 두고 수년간 갈등을 빚다가 김포시가 예산 투입을 거부하면서 지난해 무산됐다.
광역버스의 이해관계는 더 복잡하다. 운수사업법에 따라 해당 시·도지사가 모두 동의해야 광역버스 운행이 가능해서다. 서울시는 ‘버스총량제’까지 도입해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버스 확충을 막고 있다. 서울시는 버스 적자를 보전해주는 ‘준공영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로 통근하는 경기도민에게 서울시 예산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늘어나는 도로 혼잡도도 서울시에는 부담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이유로 광역버스 노선을 폐선, 형간전환을 통해 2005년 26개에서 지난해 10개로 대폭 줄였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광역교통행정연구팀장은 “서울시민을 우선 고려하는 서울시와 경기버스 운영 외에 관심이 없는 경기도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통근자들이 교통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출퇴근 시간 OECD 최고
피해는 고스란히 수도권 통근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던 성상묵 씨(27)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데 하루 3시간이 걸리는데 그마저도 사당역으로 가는 광역버스가 한 대뿐이어서 수십 명의 승객이 끼여 탄다”며 “도저히 출퇴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두 달 전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을 주고 서울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사람은 하루 147만 명에 이른다. 수도권 거주 근로자 중 21.2%는 통근시간이 1시간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출퇴근 시간은 58분으로 평균(28분)의 2배가량이다. 광역교통망 구축이 늦어지면서 서울 교통혼잡비용은 2015년 기준 9조4353억원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37%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간 협의를 어렵게 하는 ‘칸막이’식 교통행정 체계가 광역교통망 구축을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는 행정구역 내 현안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지자체 경계를 넘나드는 광역교통 체계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반기마다 광역교통계획 추진 현황을 국토부에 보고하고 있지만 교통망 건설이 늦어져도 처벌 조항이 없어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강력한 법적 권한과 자체 인사·재정권을 쥔 광역교통행정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도권교통본부 '있으나마나'…'대광위' 출범해도 권한엔 한계
지방자치단체 간 광역교통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구성된 수도권교통본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내년 3월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를 출범시킬 예정이지만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조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교통본부는 2005년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에서 인력과 예산을 지원받아 출범했다. 사업 예산은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5 대 5 대 3의 비율로 나눠 출자했다. 인력도 같은 비율로 지자체에서 파견받았다. 그러나 컨트롤타워가 없어 갈등 조정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4년간 수도권교통본부에 제출된 수도권 광역버스 노선 조정안 21건 중 실제 조정된 건 41.9%에 그쳤다. 김종형 인천연구원 교통물류연구실장은 “수도권교통본부는 강제성이 없고, 예산도 없어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수도권교통본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대도시광역교통청 설립을 추진해왔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자 국정과제였다. 하지만 1년여 진통 끝에 위원회 형태의 대광위로 격하됐다. “청장이 최종 결정권을 쥔 독립 외청보다 합의·결정기구인 행정위원회가 지방분권 취지에 부합하다”는 의견을 낸 행정안전부의 의견이 관철됐다.
내년 3월 출범할 대광위는 차관급 상임 위원장을 둔다.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행안부 등 중앙부처 고위공무원과 지자체 부단체장, 지자체가 추천하는 교통 전문가 등 30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한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울산권, 대전·세종권, 광주권, 대구권 등 대도시 권역별 위원회가 지역별 교통대책을 논의한다.
대광위가 출범해도 광역교통 문제의 핵심인 지자체 간 갈등 조정이 쉽지 않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자체 부단체장을 비롯해 지자체 추천 전문가들이 각자의 의견을 강조하다 보면 수도권교통본부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광역교통행정연구팀장은 “대광위의 성패는 여러 지자체와 운수업체, 카드업체 등의 갈등을 얼마나 빠르게 조율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 단체장 등이 개입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은 市 인구 5만 넘으면 광역교통망 대상에 포함
영국 런던, 미국 워싱턴DC, 프랑스 파리 등 주요 선진국 대도시는 별도 기구를 꾸려 광역교통망 확충에 힘쓰고 있다. 별도 기구가 계획을 수립하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따라야 하는 구조여서 광역교통망 구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연방법에 행정구역과 별개의 광역교통행정조직을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인구 5만 명 이상 대도시는 모두 해당된다. ‘워싱턴 도시권대중교통청(WMATA)’이 대표 사례다. 버지니아·메릴랜드·컬럼비아 특별행정구 등 3개 주정부가 1967년 설립한 기구다. 재원을 공동으로 마련해 교통계획 수립, 인프라 투자 등 교통 행정 전반을 책임진다. WMATA는 3개 주정부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교통체계를 마련한다. 주정부가 아니라 정치인, 교수 등 각계 대표로 이뤄진 운영위원회가 결정권을 쥔다. 행정구역 간 갈등을 줄이면서 광역교통망을 효율적으로 확충한 이유다.
프랑스 파리는 1959년 ‘일드프랑스교통조합(STIF)’을 구성해 파리 주변 일드프랑스 지역까지 광역교통정책을 수립해 운영하고 있다. STIF는 광역교통정책 수립·조정에 종합적인 권한이 있는 기구다. 중앙과 지방정부 대표가 함께 참여한다. 교통계획 수립부터 재원 조달, 투자, 운영을 모두 관리한다. 파리교통공사(RATP), 프랑스국철(SNCF), 민영버스조합(OPTLE) 등과 계약을 맺고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제공한다.
영국은 2000년 설립된 ‘런던교통공사(TfL)’가 수도권 광역교통정책을 수립·운영한다. 한국과 달리 중앙정부가 운영 예산의 절반가량을 지원하는 점이 특징이다.
양길성/이정선/서기열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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