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PT→면접…취업만큼 어려운 大學 금융학회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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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학회가 금융권 취업 ‘지름길’로 여겨져

졸업생이 취업 정보 주고, 무리한 뒷조사로 구설도

"일단 지원 서류를 제출하신 다음에 서류전형에서 합격하면 개인 면접이 있습니다. 개인면접에서 합격하면 5명이 한 팀이 돼서 프레젠테이션하는 PT 면접을 봅니다. PT 면접에서 합격하면 마지막에 알럼나이(alumni·졸업생) 면접이 있습니다."

신한은행이나 현대카드 같은 유명 금융회사의 채용 과정이 아니다. 한 대학교에 있는 금융학회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청년 실업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원래부터 취업준비생에게 인기가 있던 금융권은 그야말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다. 대학마다 있는 금융 관련 학회도 금융권 취업을 위한 '지름길'로 불리면서 금융학회에 들어가는 문턱도 덩달아 높아졌다.

지난달 열린 한 금융권 채용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이 하나은행에서 모의 면접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오전 11시, 하늘은 때늦은 가을장마 탓에 꾸물꾸물했지만,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건물인 대우관에는 활력이 넘쳤다. 새 학기를 맞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여러 동아리와 학회가 홍보데스크와 입간판을 세우고 지나가는 학생마다 리플렛을 나눠주고 있었다.

건물 복도를 따라 줄지어 들어선 홍보데스크 가운데 단연 인기는 금융학회였다. 한 금융학회가 건넨 홍보 책자에는 금융권 취업에 성공한 학회 출신 선배들의 이름과 직장이 빼곡했다. 한 금융학회 회원은 "금융회사에 취업하고 싶으면 우리 학회에 들어오면 된다. 최근 졸업생 기수는 100% 금융회사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학회 출신 금융사 직원이 면접관으로 참여하기도

대학의 금융학회는 학부생이 모여 금융뿐 아니라 경제·경영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공모전이나 산학협력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일종의 동아리다. 일반적인 동아리보다는 스터디와 공모전에 집중하면서 학회로 불린다. 다양한 분야의 학회 중에서도 최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금융학회다. 높은 급여와 안정적인 복리후생, 전문성이 보장되는 금융공기업과 금융회사에 취업하는데 금융학회 경력이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퍼진 덕분이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금융학회 회원과 금융학회 출신 금융인들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부생 때 금융학회에서 활동하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모(24·여)씨는 "내 기수는 인원이 15명 정도인데 전원이 금융권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씨를 제외하면 사실상 100%의 금융권 취업률이다. 투자학회에서 활동 중인 한찬희(23·남)씨 또한 "한 기수에서 80% 이상은 금융권 취직에 성공한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대우관 복도에 금융·경제 학회들이 리크루팅을 위해 데스크를 설치하고 있다. /김지훈 인턴기자

학회 활동 자체가 금융산업에 대한 스터디와 공모전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세대학교의 금융 관련 학회에서 활동한 A씨는 "학회 활동을 할 때는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서 학회원들과 함께 공모전,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준비했다"며 "수업을 들을 때도 손발이 맞는 학회원들과 함께 들으면서 팀 프로젝트를 하기 때문에 성적도 잘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학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학회에 들어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졌다. 지원자에 비해 뽑는 인원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통상 금융학회가 신입 회원을 뽑을 때는 백여명 정도가 지원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선발되는 인원은 열 명 안팎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정원을 늘 채우는 건 아니다. 한 투자학회 관계자는 "내부 심사 기준이 있어서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정원이 남아도 채워서 뽑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선발 절차도 유명 금융회사의 채용 과정이 쉬워 보일 정도로 험난하다. 서류 전형과 실무면접은 기본이고, 필기시험을 보는 곳도 있다. 한 유명대학의 금융학회는 ▲재무 ▲통계 ▲파생상품 ▲시사 등 4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른다. 면접 단계를 세분화해서 PT 면접이나 졸업생이 참여하는 면접이 있는 경우도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올해 상반기(일반직 전형)에 서류전형-필기시험-직무적합도 면접-최종면접의 순으로 채용이 진행됐는데, 선발 절차만 보면 금융학회가 오히려 어려워 보인다.

한 금융 관련 학회 관계자는 "금융회사에 다니는 졸업생이 토요일에 직접 학교에 와서 최종면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생이 아닌 금융회사에 다니는 졸업생이 채용 과정에 참여하는 만큼 준비가 소홀하면 합격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5일 신촌 연세대 경영관에서 열린 금융학회 YFL 설명회에 60여명의 학생이 몰려 선발 절차에 대해 듣고 있다. /김지훈 인턴기자

워낙에 선발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운 탓에 학회 차원에서 강당이나 강의실을 빌려서 학회원 선발 설명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5일 연세대학교 경영관의 한 강의실에서 열린 금융학회 설명회에는 저녁 시간에도 60여명의 학생이 참석해 선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금융학회에 들어가기 위해 방학을 이용해 따로 준비하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취업준비반을 준비하는 격'이다. 한 금융학회 관계자는 "학회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합격만 하면 휴학하겠다고 말하는 지원자도 있다"고 했다.

◇금융학회의 진짜 매력은 '네트워킹'

금융회사의 공채 경쟁률은 보통 100대 1 정도다. 최근에는 채용 규모를 줄이는 추세라 경쟁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학회가 인기를 끄는 건 금융권 취업문이 바늘 구멍처럼 좁아지는 탓도 있다.

전·현직 금융학회 출신들은 학회가 제공하는 가장 큰 혜택이 현직 선배들과의 '네트워킹'이라고 입 모아서 말한다. 학회 출신의 금융권 선배들이 취업 관련 정보와 인맥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주요 금융공기업의 경우, 관례로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 앞서 금융회사에 입사한 선배가 기출문제나 면접 노하우를 학회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합격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 입사에는 금융학회의 네트워킹이 더 중요하다는 게 학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통상 외국계 금융기업은 공개채용을 진행하지 않고 알음알음 공고를 내어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를 통해 채용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찬희씨는 "외국계 회사는 인맥이 없으면 애초에 입사부터가 힘들기에 금융학회를 통해 인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평했다.

지난해 한국수출입은행 신입행원 필기시험장의 풍경. /연합뉴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회원 선발 과정에서 암암리에 과하다 싶은 방식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 금융학회는 신입회원을 뽑는 회의에서 지원자의 소셜미디어를 조사했다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또 다른 학회는 지원자의 신상을 캐내 학내 평판이나 과거 행적을 조사하기도 했다. 혹시 모를 결격사유를 찾기 위해 ‘뒷조사’를 벌이는 것이다.

도를 넘는 선발 방식에 불만을 표출하는 지원자도 있다. 학회의 뒷조사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대학생 김모(26)씨는 "내 사생활을 캐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이 나빴다"며 "실력과 관계없는 주관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9월은 금융학회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주요 금융공기업과 시중은행의 하반기 채용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주요 금융공기업의 필기시험 날짜는 10월 19일로 정해졌다. 이른바 'A매치 데이'다. 시중은행들도 추석 연휴가 지나면 채용 공고를 낼 예정이다.

[이종현 기자 iu@chosunbiz.com] [김지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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