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블로거지→믿거페→내돈내산… 세상에 믿을 後記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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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27. 오전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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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SNS 점령한 위장 광고들
#1. 구독자 15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이수민(가명·25)씨는 한 달에 서너 편의 브랜디드 콘텐츠(특정 브랜드를 홍보할 목적으로 생산된 콘텐츠)를 건당 500만~600만원씩 받고 제작한다. 브랜디드 콘텐츠의 핵심은 '광고 같지 않은 광고'. 얼마 사용해보지 않은 제품도 오랜 기간 애용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문구를 달긴 하지만, 최대한 광고 티를 빼야 해요. 일부 광고주들은 아예 '광고라는 문구를 빼고 제작해달라'고 하기도 하죠. 광고 영상과 일상 콘텐츠를 구분하기 어렵도록요."

#2. 직장인 정병범(26)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맛집을 찾을 때 상호명과 '×나 맛있네' 같은 비속어를 함께 검색한다. 구매하고 싶은 제품이 있을 때는 네이버에 '○○제품 실망'을 쳐본다. 정씨는 "'맛집' '추천' 등 뻔한 검색어로 검색하면 팔할은 돈 받고 작성한 광고글"이라며 "단점 위주로 서술한 리뷰나 비속어가 섞인 포스팅을 찾아야만 광고글을 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일러스트=김영석

바야흐로 '광고 전성시대'다. 내게 맞는 화장품을 찾을 때도, 맛집을 알아볼 때도 우리는 광고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얀켈로비치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에 광고 약 5000개를 마주한다고 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전광판 광고처럼 '대놓고 광고'도 있지만, 이씨 사례처럼 평범한 게시글로 위장한 '몰래 광고'도 많다.

그런데 잠깐. 우리는 실제 정보와 정보를 가장한 광고를 구분할 수 있을까. 네이버,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광고는 어떻게 후기(後記)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을까.

파워블로거지에서 '내돈내산'까지

업계에서는 일평균 방문자 수가 1만명을 넘는 일명 '파워블로거'들이 대거 등장한 2000년대 중·후반에 위장 광고가 대폭 늘었을 거라고 보고 있다. 당시 블로거들은 기존 광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솔직담백한 후기로 방문자를 모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소비가 개인적 활동에서 사회적 활동으로 확장됐다. 소비자들은 광고를 보는 대신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 게시된 후기와 댓글을 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영향력을 체감한 일부 블로거들은 방문자 수를 활용해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섰다. 업체에서 몰래 대가를 받고 후기글을 작성하거나, 공동구매에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2011년에는 업체에서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마치 비영리 공동구매인 것처럼 꾸민 블로거 7명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이 중 한 블로거는 수수료 8억8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부터 비양심적인 파워블로거를 비꼬는 신조어 '파워블로거지'가 등장했다.

허위 광고에 속는 피해자가 늘어나자 공정위는 2011년 7월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개정하면서 대가를 받고 블로그에 광고를 낼 경우 이를 본문에 명시하도록 규정했다. 그럼에도 '○○사와 함께한다'처럼 모호한 문구를 사용해 소비자들이 광고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자 2014년에는 아예 '표준 문구'를 제정했다. 표준 문구는 '위 상품을 추천하면서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는 명확한 표현을 담았다. 그러나 후기를 가장한 광고를 담은 블로거들은 계속 적발됐다.

블로그가 광고에 점령되자 소비자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신흥 소셜미디어로 떠났다. 문제는 광고주들도 소비자들과 함께 움직였다는 것. 페이스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용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도록 설계된 바이럴 광고의 성지(聖地)가 됐다. '믿거페(믿고 거르는 페이스북)'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바이럴 광고의 전형은 대동소이하다. 일반인을 가장한 모델이 광고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 모델의 입을 빌려 '너무 좋은 제품'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제품의 실제 효과는 보증할 수 없다. 페이스북 바이럴 광고 수십 편에 출연한 모델 A(28)씨는 "제품을 처음 써보는 일반인인 척 연기하지만, 실제로는 전문 제작사가 붙어 대본대로 촬영하는 것"이라며 "바이럴 생태계를 아는 나도 광고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소비자들이 칭찬 일색의 바이럴 광고에도 신물을 내자 이번에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 리뷰가 인기를 끌었다. '내돈내산'은 원래 아무런 경제적 대가를 지급받지 않고 직접 구매한 물건을 솔직하게 리뷰하는 이용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업체에서 홍보를 명목으로 대가를 받고도 마치 내돈내산 리뷰인 것처럼 홍보한 인플루언서들이 최근 연이어 적발됐다. 유튜브 구독자 80만명을 보유한 패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은 홍보비 수천만원을 받은 신발을 '힘들게 구했다'며 소개했다가 탄로나 사과 영상을 올렸다. 다비치 멤버 강민경도 개인 소셜미디어에서 별도의 광고 표기 없이 PPL을 진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내돈내산도 못 믿는다"는 한탄(?)이 흘러나왔다.

광고업계 관계자들은 내돈내산을 가장한 광고가 이미 널리 퍼져 있다고 말한다. 광고 회사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박모(25)씨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성형외과 등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달라 부탁하고 건당 5만~20만원을 지급했다. 광고라는 설명은 없었다. 박씨는 "표시광고법에 위반되는 걸 알지만, 팔로어 1만명 정도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은 적발된 사례가 없다"고 했다.

구독자 5만여 명을 보유한 유튜버 차민영(가명·25)씨도 최근 강남의 유명 피부과 병원에서 '전신 지방분해 시술을 무료로 진행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후기 영상을 올리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차씨가 병원 측에서 건네받은 계약서에는 '영상에서는 물론 가족에게도 비용 전액을 직접 지불했다고 말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차씨는 "계약서를 받아든 순간 범죄자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차씨는 병원의 제안을 거절했다.

커뮤니티서 광고 거르는 팁 공유하기도



온라인에서는 '후기로 위장한 광고를 거르는 법'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맛집의 상호명 뒤에 '오빠랑'이라는 단어를 넣어 검색하기.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한 블로거가 쓴 글은 광고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서다. 이 외에 '사진을 너무 잘 찍은 게시글은 거른다' '본인 사비로 구매했다는 인증샷을 꼭 확인한다' 등이 광고 거르는 팁이다. 그런데 이 팁들, 효과는 있는 걸까. 네이버 블로그에 가짜 후기를 전문적으로 올리는 한 광고대행사 직원은 "그런 방식으로는 광고를 거를 수 없다"고 단언했다. "광고주들도 바보가 아니에요. 어떤 단어를 입력할지, 사진은 어떤 구도로 찍을지 등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하고 주문합니다." 그는 대신 '다른 인플루언서의 게시물과 내용이 비슷한지 비교해보라'고 조언했다. 대부분 광고는 광고주가 제공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쓰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더 이상 인플루언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9년 미국의 광고대행사 UM이 81개국 인터넷 사용자를 조사한 결과 인플루언서가 공유한 정보를 신뢰하는 사용자는 4%에 불과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10대들이 '인플루언서 피로증(influencer fatigue)'을 느끼고 소셜미디어를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커진 상황에서 이들이 후기를 가장한 광고를 올리는 건 소비자를 기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종헌 기자 bel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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