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자영업자를 鬪士로 만든 文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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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8.31. 오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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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에 자영업자들, 폐업까지 각오하고 총궐기 나서
분식 통계·세금 퍼주기 의심 땐 납세자 저항으로 이어질 수도


최재혁 정치부 차장


전국 자영업자들이 그저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총궐기 국민대회'를 연 데 대해 한 대학교수는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들이 대거 가두 투쟁에 나선 것은 처음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 최다 56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자영업자는 동질성이 떨어져 조직화하기 힘든 대표적 집단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좌파(左派) 이론에서도 '계급의식'이 형성된 노동자 계급에 비해 주변적 존재로 취급된다. 1980년대 대학가 운동권에서는 '불철저한' 후배에게 "프티 부르주아 근성을 버리라"고 질책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소상공 자영업자는 바로 그 '프티 부르주아'의 전형인 것이다. 자영업자는 제도권 정치에서도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나 교사 집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홀대받아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영업자 대부분은 지금도 한계 선상에 있다. 5년 생존율로 자영업자의 성공 여부를 따지는데, 10명 중 7~8명은 실패한다. 일각에선 암 환자 생존율보다 낮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나마 성공한 이들마저 박근혜 정부 때 적잖이 타격받았다. 이익 좀 남긴다는 소상공인 상당수가 갑자기 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지방 세무서 직원에게서 오래된 냉면집을 '털었던' 경험담을 들었다. "냉면집 수입 파악하는 거 간단하다. 계란 몇 판 샀는지 파악하고 계란 개수에 곱하기 2 하면 된다." 냉면 한 그릇에는 계란 반쪽이 들어간다.

자영업자 역시 봉급 생활자처럼 '봉'이었던 셈이다. 세무조사를 당했던 자영업자들은 당시 "차라리 세금 더 내고 맘 편히 장사하는 게 낫다"며 순응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에는 집단행동을 선택했다. 이번은 생사(生死)가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는 5년간 공약 이행을 위해 178조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그 178조원에 포함된 초과 세수분 60조5000억원은 박근혜 정부가 남긴 '선물'이다. 자영업자나 임금 소득자뿐만 아니라 비과세·감면 축소로 대기업 법인세 부담을 키워 놨고 담뱃세까지 올린 그때의 조세(租稅) 체계 위에 지금 정부가 있다. 일부 전문가는 "세 부담 증가에 대한 반감(反感)이 탄핵 촛불 집회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여권 인사들은 전(前) 정부가 더 걷은 세금을 쌓아 놓았던 것을 두고 '그걸 왜 안 쓰고 그냥 놔뒀는지 모르겠다'고 해 왔다. 2년간 54조원(여당 주장은 41조원)의 일자리 예산을 투입하고도 '고용 쇼크'가 발생하자 그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더니 내년도 예산을 470조5000억원의 '수퍼 예산'으로 편성했다.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4조2000억원(22%) 늘어난 23조5000억원이었다. 재정 적자 증가, 국가 채무 악화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이제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은 "앞으로 소득 주도 성장이 옳았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만한 돈을 계속 퍼부었는데도 소득이 늘고 격차가 줄지 않는 게 이상하다. 통계청장을 바꾸고 통계 기준도 바꾸겠다고 하니 새로 개발된 '질 좋은' 통계도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와 정부 경제팀의 엇박자를 보면 결국 "'소득 주도 성장' 가운데 '성장'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반 국민 사이에 '내가 낸 세금이 정부의 정책 실패 방어용으로 쓰인 것 아니냐'는 의심(疑心)이 대세이자 확신으로 굳어진다면, 이번 자영업자들보다 더 큰 저항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최재혁 정치부 차장 jh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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