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 어땠어?] 뻔하지 않아서, 오글거리지 않아서, 그래서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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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2.16. 오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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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남장 여자 왕의 남-남, 여-여 케미
비현실성 잊게 한 배우들 연기 눈길
<연모>는 남장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녹여 인기를 얻었다. <한국방송> 제공


볼까말까 고민은 이제 그만! 매주 수요일 11시 <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평가단’이 최근 시작한 기대작을 파헤칩니다. 주말에 몰아볼 작품 수요일쯤에 결정해야겠죠?



20부작 드라마 <연모>(한국방송2)가 지난 14일 종영했다. 10월11일 6.2%(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13회 10%를 넘어서더니, 마지막회 12.1%로 해피엔딩을 맞았다. 남장 여자가 주인공인 로맨스 사극이라니! 너무 뻔하다며 외면했던 이들은 7회 정도부터 곳곳에서 들려오는 “연모”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17회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서 티브이쇼 부문 7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도 아닌데, 왜? “<연모> 시작해도 될까요?” “<연모> 어때요?” 뒤늦게 묻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부작을 시작하려니 엄두가 안 나는 이들을 위해 수요일마다 찾아오는 ‘수요 평가단’이 대신 몰아봤다. 이번 주말에 <연모> 몰아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면 참고하시라.

호흡이 잘 맞았던 박은빈과 로운. <한국방송> 제공


남-남, 여-여 케미 기존 사극 로맨스물 뛰어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1회부터 꾸준히 본방사수 했다. 현대물에서 운명적인 멜로는 이제 잘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됐다. 사극이 멜로를 품기 시작한지 오래됐지만, <연모>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했다. 과거 시조를 보면 왕에 대한 신하의 그리움이나 충심이 마치 연심처럼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실제로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 되는 이야기를 잘 담았다. 그런 점에선 판타지이지만, 어쩌면 판타지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남지은 기자] 
시작할 때 초반 몇회만 보고 멈췄었다. 평소 사극이 배경인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남장 여자라는 설정이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등 이전 작품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광해, 왕이 된 남자>처럼 닮은 왕이 바뀌는 게 더해졌다는 정도? 죽을 고비 넘기며 탈출시킨 쌍생아 중 여자 아이가 자라서 너무 쉽게 궁녀로 들어온 것처럼 사극 로맨스물은 개연성이 없어서 소꿉놀이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1회부터 10부까지 보고 난 뒤 김효실 요원한테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 왜 <연모>가 재밌는 거니! 은빈과 로운 왜 설레는 거니!”

[김효실 기자]  이휘(박은빈)와 정지운(로운)이 알콩달콩하지. <연모>가 다른 작품보다 사극 로맨스물의 특성이 강해서 인 것 같다. 이전 작품들이 남자 주인공이 남장 여자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지는 정도였다면 <연모>는 더 나아간다. 남장 여자 설정이니 대놓고 남성간의 사랑(BL)이나 여성간의 사랑(GL)물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가 더해졌다. 비엘 요소는 이휘와 정지운, 이휘와 이현의 관계, 지엘 요소는 중전 노하경(정채연)과 이휘의 관계다. 적절히 귀엽고 사랑스럽게 잘 담았다.

<한국방송> 제공


[정덕현]  과거의 남장 여자 콘셉트 사극보다 확실히 과감해 진 게 인기를 얻은 중요한 요소다. 궁궐 내에서 이휘와 정지운이 가깝게 지내면서 남색이라는 소문이 파문을 일으키고, 이휘가 여자인 사실을 모르는 중전과 여성들끼리의 멜로 구도도 담겨 있다. 과거 남장 여자 콘셉트보다 훨씬 퀴어적 요소들도 담고 있다. 물론 <연모>는 남장 여자 코드를 극적으로 활용해 극성을 만들 뿐, 퀴어 드라마라 보긴 어렵지만 여러모로 과거보다는 개방적인 연애관을 담고 있다.

[남지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방송>에서 몸사리지 않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 그런 부분에 민감한 특정 어른들이 봐도 이야기 전개에서 필요한 부분으로 인식하도록 자연스럽게 표현한 점도 괜히 의미를 두게 된다.    

[김효실]  장소 섭외와 의상·소품, 연출도 칭찬하고 싶다. 배경이 조선이고, 한복, 궁궐 등 아름다운 곳에서 잘 찍어서인지 설렘이 갑절이 된 것 같다. 4회 정지운이 이휘한테 갓을 씌워주는 장면은 오 마이 갓!

[남지은]  확실히 이휘와 정지운이 함께 나오는 장면이 재미 포인트이긴 했다.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로맨스 그 자체가 중요한 말 그대로 사극 로맨스물이니까. 정지운과 이휘가 태격태격하고 그러다 마음이 통하고 그런 과정 자체가 이 드라마 재미의 8할이었다. 

[김효실]  처음부터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선택을 한 게 안전했다. 원작 만화는 조선 시대 성종과 예종 사이에 숨겨진 왕이 있을 거라고 가정했지만, 드라마는 아예 성종, 예종 등 실존 인물을 걷어내고 모든 게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고 고지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긴 하지만 왕 이름도 다 지어냈다. 사극 요소로서 역사적 개연성이나 함의가 깊은 편이 아닌데 그 선택이 옳았다. 사극은 배경일 뿐, 로맨스에 집중했다.

중전은 왕이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한국방송> 제공 


왕이 된 여자! 능동적 여성 신분의 역전

[남지은]  그래도 로맨스만 있었다면 <연모>에 높은 점수는 못줬을 것 같다. <연모>에는 사극 로맨스물을 다르게 보게 만든 새로운 점도 많았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보다 높은, 사극에서 남녀 신분의 역전은 드문 시도다. 정지운이 세자인 이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전 사극에선 높은 신분의 남자와 낮은 신분의 여자의 안타까운 사랑이 대부분인데.

[정덕현]  남장 여자가 세자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신분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고, 상대인 남자가 신하라는 점은 기존 사극 로맨스물과 다른 <연모>만의 확실한 차별점이다.

[김효실]  <연모>가 설렘 포인트를 잘 잡는 로맨스물이라는 건, 신분 역전의 상황마저 적절히 활용했다는 것이다. 6회에서 정지운이 꽃 한 다발 들고 이동하다가 무예 대련 중인 이휘의 모습을 보고 반해 바라보고 있다거나, 이휘한테 “한 번 만 안아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역전된 상황이어서 흥미로웠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 자체가 여자가 왕이 될 수 없는 등 강력한 부계 중심 가부장제 사회와 신분제 사회라는 점 때문 아닐까.

[남지은]  이휘가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진 것도 좋았다. 활을 쏘고 말을 타고, 싸움도 잘하는 등 액션신이 많았다. 오빠의 죽음으로 남장을 하고 어쩔 수 없이 왕이 됐지만, 주변 남자들한테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휘는 당당한 조선의 세자로서, 왕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게 다른 사극 로맨스물과 다른 점이지 않을까. 사극 로맨스물에 관심없는 이들도 좋아할 것같다.

[김효실]  대비(이일화)가 한기재(윤제문)하고 붙어도 기죽지 않는 왕실 권력 투쟁의 주체로 나오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 사극에서 대비마마의 권력욕을 보여주는 건 그저 앉아서 호통치거나 눈을 크게 뜨는 정도였다면, 이 드라마에선 활을 쏘는 등 대비마저 역동적으로 그렸다.

[남지은]  남자가 남장 여자를 좋아하는 드라마는 사실 많았다. 2007년 <커피 프린스 1호점> 최한결(공유)도 남장 여자 고은찬(윤은혜)을 좋아했다. 마음을 결심하면서 한 말은 무려 명대사가 됐다.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 해!" 최한결이 아주 오랫동안 여러 방식으로 고민했다면, 정지운은 그렇지 않은 것도 시대가 바뀌었구나 느꼈다.

[김효실]  <연모>가 남장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나아간 점이라 생각한다. 정지운이 이휘를 남자로 알고도 사랑하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부 감정의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내가 남자를 좋아하다니 그럴 리 없어!” 같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내뱉고, 현실을 부정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없었던 게 좋았다. 마음이 가는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고백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정지운이 이휘가 여자인 걸 알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재미가 덜해졌다.

<한국방송> 제공


현실감, 개연성 '갸웃'…박은빈, 로운 등 배우가 살렸다

[정덕현]  남장 여자 콘셉트의 사극이 가진 최대 약점인 현실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연모>도 마찬가지 약점을 보인다. 왕세자를 거꾸로 신하가 안아주고 위로하는 장면이라든가, 왕에게 상을 요구하고 대전에서 뽀뽀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금기를 넘어서 이런 비현실적인 장면들에 더 몰입하고 자극하게 하는 게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연모>는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들에 빠져들게 하는 것으로도 성공했다.

[남지은] 
개연성이 약한 것도 거슬리긴 했다. 저기서 왜 저래? 저게 말이 돼? 그런데 배우들이 제 역할을 잘해서인지 용서가 된다고 할까. 로운이 멜로와 능청스러움을 잘 오가더라.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새삼스러웠다. 특히 박은빈이 이휘 역할에 찰떡이었다. 눈빛 연기가 너무 좋았다. 정지운과 이현과도 케미가 좋고, 중전과도 잘 어울려서 그냥 미소가 지어지더라. 어떻게 남자와 있어도 여자와 있어도 다 '심쿵'하게 만들지. 박은빈, 뭐지?

[정덕현]  <​연모>의 비현실적인 상황을 믿게 만드는 힘도 사실 남장 여자 역할로 왕으로서 카리스마를 보이다가도 순식간에 멜로의 여성으로 변신하는 박은빈의 연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액션부터 정치, 멜로까지 오가며 보여주는 연기의 역할이 상당하다.

[김효실]  박은빈 만큼 좋았던 배우는 박은빈의 아역 최명빈이었다. 1~2화는 가볍게 봐야지 했는데 최명빈 연기가 좋아서 아역 부분을 더 늘렸으면하는 아쉬움까지 생겼다.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했다. 어린 복동이도 너무 귀여웠다. 

오 마이 갓! 좋은 장면은 한번 더! <한국방송> 제공


[정덕현]  개인적으로는 현시대가 보여서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대결 구도는 청춘과 어른들(기성 세대)로 나뉘어 있다. 한기재 같은 기성 세대는 이휘나 정지운 같은 청춘들이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막는 존재다. 이 부분은 묘하게도 현재의 대선 구도에서 정치권이 청춘들을 자신들의 목적에 의해 ‘이대남’이니 ‘이대녀’니 하며 소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휘를 꼭두각시로 세워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려는 한기재가 더 강력한 빌런처럼 느껴진다. 남장 여자가 되는 이유로서 쌍생 여아라 버려진 후 운명처럼 다시 궁으로 돌아와 죽은 오라비를 대신하게 된다는 설정이고, 그래서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젠더적 관점으로도 읽혀 몰입된다. 태어난 대로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남장을 한 채 그 역할을 억지로 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그 현실이 주는 현재적 공감이 있다.

[김효실]  음...난 너무 좋은 이야기만 했다. 이휘가 여자라는 걸 밝히려고 옷깃을 풀어 붕대로 압박하고 있는 가슴을 여러 번 보여주는 장면은 불편했다. 매번 꼭 가슴으로 증명해야 했을까. 

<그래서 볼까 말까>

김효실/ 몇몇 장면들만 봐도 충분히 눈호강임. 전편 몰아보기는 굳이

정덕현/ ‘드라마에 홀렸다’를 경험할 수 있음. 주말 몰아보기 강추!

남지은/ 사극 로맨스물이 ‘개취’가 아니었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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