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안전이다] 부족한 기술사 인력 '관피아'로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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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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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계속되는 안전사고에도 현장 최고 자격 기술사는 배제
정권 바뀌며 후퇴만 거듭 PQ 기술사 가점제 삭제
단순 경력자에 유리한 조건 기술사 자격 무력화한 셈
공무원 재취업 수단 변질


#. 선발은 고용노동부에서, 관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활용은 관련 주무부처 무려 13곳에서 하는 자격증이 있다. 기술자격계의 사법시험이라고 부를 정도로 해당 기술분야에 관한 고도의 전문지식은 물론 실무경험까지 갖춰야 딸 수 있는 '기술사' 자격증이다. 기술사법, 국가기술자격법과 84개로 분화된 종목별 관할법에 따라 운영되면서 통합 관리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졌고, 기술사 인원 부족을 문제 삼아 일정 기간 동안 관련 업종 근무 경력이 있으면 인정기술사 자격을 주면서 '관피아' 양상 루트로 지적받고 있다.

한국기술사회는 기술사자격 제도의 비효율성을 주장하며 기술사법 개정을 적극 제안하고 있다. 고용부가 주관하고 있는 국가기술자격법과 과기부가 주관하고 있는 기술사법으로 이원화 된 현 상황에서는 기술사자격 선진화는 커녕 후퇴만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도 엔지니어링 부분의 공공성 확보는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시했던 법 개정... 후퇴만 거듭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국무조정실에서 논의한 '기술사제도 개선방안'을 보면 2004년 5월 24일 대통령이 "인정기술사 제도개선, 기술사 제도의 전문성과 실효성 제고, 고급기술자격의 국제 통용성 제고 등 기술사 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무려 13년 전에도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의 양성과 활용을 위해 제도를 일관성 있게 운영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는 동안 제도는 뒷걸음질 쳐 왔다. 오히려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도(PQ)에서는 기술사에 대한 가점 부여를 삭제하면서 역차별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 2016년 법 개정 이후 기술사에게 가점을 주는 기준을 삭제하면서 국가 자격증인 '기술사' 활용은 무력화됐고, 대신 기술사 자격증이 없어도 일정 기간 동안 관련 업종 근무 경력이 있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는 곧 퇴직공무원들의 설계 및 감리 업계 재취업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실제 지난 해 말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이 '지자체·공기업 퇴직 건설기술자 경력증명서 전수 점검' 조사 결과 10년간 퇴직 건설기술자 중 3분의1가량이 허위 경력증명서를 이용해 공직연봉을 받고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직 기간의 경력을 재취업에 필요한 설계·감리·정밀안전진단 등 분야에 맞게 허위로 기재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이에 기술사는 공과대학졸업 후 기사 자격을 취득한 뒤에도 4년의 실무경험이 있어야 취득할 수 있는 최고 자격증임에도 전문직으로 존중 받지 못하면서 응시 인원이 3만명에서 1만명대로 떨어졌다. 우수 인력의 이공계 진입 유도와 이공계 분야 고급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폐기물처리기술사인 홍순명 환경기술사는 "기술사 자격을 딴지 20년이 됐는데 1차 합격률이 5~7%에 머무를 정도로 기술 분야 고시와 같은 최고의 시험이었다"면서 "하지만 PQ제도 도입으로 경력만 있어도 기술사와 같은 급으로 인정해주니 굳이 기술사 시험을 볼 필요가 있냐는 인식이 팽배해 졌다"고 말했다.

2016년까지 해마다 감소해 1만여명 대로 떨어진 기술사 시험 응시생은 이후 소폭 증가했으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한국기술사회에 따르면 최근 다소 높아진 응시률도 PQ제도 도입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시험응시를 적극 독려한 결과다.

■'안심사회 구축' 국정목표 위해서도 제도 손질 필요

포항·경주 등에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위기 의식이 퍼진 가운데 정부는 건축물의 구조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설계 및 감리 강화를 약속했다. 이후 지난 7월 국토교통부는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건축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해 3층 이상 필로티 건물을 신축할 경우 공사감리를 관계전문기술자가 할 것을 명시했다.

문제는 구조기술사의 인원 부족 등을 문제 삼아 구조기술사가 아닌 고급기술자로 감리 권한을 낮춘 것이다. 건축사가 설계 및 감리를 모두 맡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후퇴해 특급기술자 지위인 건축사의 설계를 그보다 낮은 고급기술자가 허가하는 꼴이 됐다.

지금처럼 관련 분야 경력자를 기술사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기술사등급 제도를 유지할 경우 이 같은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기술사 자격 활용에 있어 13개 부처에 걸쳐 관련 사업법에 따라 건설기술진흥법,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전력기술관리법, 정보통신공사업법 등 각기 다른 법을 적용받는 만큼 제도 개선에는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기술사회 관계자는 "기술사수가 부족하다면 현행 기술자등급제도는 인력수급상황 등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주고 그 동안 기술사 시험에 응시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능력 있는 경력자를 기술사 제도 내로 흡수하는 방식도 있다"면서 "지금은 제도가 오히려 후퇴하면서 고급인력이 기술사로 유입되고 있지 않아 사회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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