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이 서로 일치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강남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투기적 수요가 가장 크다”며 “강남 재건축 과열을 무기한 단속하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강남 아파트를 구입하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종의 경고장이다. 강남 아파트값을 어떻게든 잡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앙정부부처나 청와대 고위 공직자 중 상당수는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 집을 보유하고 있다.
현 정부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655명 중 275명이 다주택자다. 또 이들은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소위 강남 4구 주택 289가구를 보유했다. 고위 공직자들은 ‘말’로는 강남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팔지 않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정부가 강남 아파트 가격을 진정·안정화시킬 의지가 있다면 “고위 공직자부터 강남 아파트를 매물로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유다.
매경이코노미는 강남 아파트를 보유한 고위 공직자를 전수조사했다.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를 얼마에 신고했으며 지난해 5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해당 단지 가격 변화를 살펴봤다.
▶주요 장차관의 강남 사랑
▷도곡동·대치동·개포동에 빼곡
우리나라 주택정책에 관여하는 고위 공직자 중 상당수는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 중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 부동산 시장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부처 중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제외하면 집이 모두 강남이다. 부동산 시장은 교육과도 관계 깊다. 교육정책 수장 또한 강남 아파트를 갖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 아파트는 지난해 5월 이후 약 8개월간 최고 5억원 이상 올랐다. 올해도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전용 59㎡)을 보유 중이다. 지난 1년 새 가장 가격 상승률이 높은 단지 중 하나다. 지하철 분당선 한티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초역세권 아파트다.
도곡동은 대치동과 함께 교육정책 변화에 따른 수혜를 가장 많이 얻고 있는 지역이다. 도곡렉슬은 대도초, 중앙사대부고, 숙명여중, 숙명여고가 단지 바로 옆에 자리했으며 대치동 학원가도 걸어서 이용 가능하다. 학군만 보면 서울에서 ‘최고’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초만 해도 8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도곡렉슬 전용 59㎡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11월에는 12억5000만원에 거래됐으며 현재 13억~14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불과 1년 만에 가격이 5억원가량 올랐다.
한국 교육을 책임지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사회부총리)이 보유한 아파트는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래대팰) 전용 84㎡다. 도곡렉슬과 함께 지난 2~3개월 새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단지 중 하나다.
지난해 1월 14억9000만원(전용 84㎡)에 거래됐으며 15억~16억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던 래대팰은 지난해 5월을 기점으로 슬금슬금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와 함께 가격 상승세가 잠시 주춤했지만 자사고 우선선발권 폐지 등의 영향으로 다시 상승세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실거래가 20억원을 돌파했다. 현재 전용 84㎡ 매도 호가는 21억~22억원에 형성됐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119㎡의 주인이다. 잠실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엘스아파트는 최근 송파구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는 단지다.
고형권 기재부 제1차관이 보유한 아파트는 강남구 청담동 뉴현대리버빌 전용 185㎡다. 아파트라기보단 1동으로 구성된 초고급 빌라로 한강변과 맞닿아 있다.
손병석 국토부 제1차관은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 전용 151㎡를 갖고 있다. 1981년 준공한 재건축 단지로 지난해 조합이 설립돼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공공연하게 과열됐다고 주장하는 ‘강남 재건축 단지’를 보유한 고위 공직자도 상당수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의 안목(?)이 탁월해 보인다. 강남 재건축 단지 중에서도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개포주공1단지(전용 57㎡)를 보유한 덕분이다. 개포1단지는 4월 이주를 앞둔 재건축 단지다. 대지지분이 많아 적은 평수를 보유해도 재건축 후 추가분담금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전용 58㎡는 14억5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지만 이후로 꾸준히 올라 현재 17억원을 돌파했다. 이 위원장은 개포주공1단지를 2000년에 3억원을 주고 매입했다니 시세차익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보유한 아파트는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2차(전용 169㎡)다. 1984년 준공한 단지로 재건축 연한인 30년이 지난 단지다. 개포우성2차 또한 가격 상승이 드라마틱하다. 전용 169㎡는 지난해 초 약 22억~23억원에 거래됐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등했다. 최근 28억원에 실거래가 신고됐으며 현재 매물로 나온 물건은 대부분 30억원 이상이다.
▷아시아선수촌·반포자이 등 보유
주요 장차관만 강남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고위 공직자도 ‘강남 사랑’이 남다르다.
주요 경제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보유한 아파트는 잠실 아시아선수촌(전용 134㎡)이다. 부동산 시장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아파트다. 대지지분이 넓고 입지가 좋아 사업성이 훌륭한 재건축 단지로 꼽힌다. 지난해 5월 18억~19억원에 시세가 형성됐던 아시아선수촌 전용 134㎡는 지난해 11월 23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약 6개월 만에 5억원 이상 가격이 올랐으며 요즘은 매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조국 민정수석은 손병석 국토부 제1차관과 이웃사촌이다. 손 차관이 보유한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최근 조 수석은 부산 해운대 아파트를 매각했지만 강남 아파트는 여전히 남겨뒀다. 청와대에서도 부동산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김수현 사회수석은 준강남권으로 분류되는 과천주공6단지 전용 83㎡ 소유자다. 과천주공아파트는 재건축 바람을 타고 지난해 5월 대비 1억원 이상 가격이 올랐다.
재건축 단지가 아니더라도 청와대 고위 공직자가 보유한 아파트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주영훈 경호실장은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전용 84㎡)에 산다. 지난해 5월 이전만 해도 16억원 선을 유지했던 반포자이 전용 84㎡ 시세는 이후 급등해 20억원을 돌파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선생님’으로 꼽히는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강남구 대치동 삼성아파트 전용 109㎡ 소유자다. 현재 16억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지난해 5월 이후 약 2억5000만원 올랐다. 문재인정부 서민 주거 안정과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하는 윤성원 도시주택비서관도 강남에 집을 두고 있다. 그가 보유한 집은 강남구 논현동 경남논현아파트(전용 83㎡)다. 또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송파구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와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지분 일부를 보유한 다주택자다.
물론 정부나 청와대 고위 공직자가 강남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문제 된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강남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삼았다. 원하는 사람이 많고 공급이 부족하면 그 동네 집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강남 집값 급등 원인을 ‘투기’로만 규정하고 허황된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강남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하지만 정작 강남 아파트를 포기하는 고위 공직자는 아무도 없다.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고위 공직자는 누구보다 부동산 관련 정책을 빨리 접한다. 각종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 전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겉으로 내건 캐치프레이즈랑 실제 효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며 “고위 공직자도 계속 살고 싶어 하는 곳이 강남 아파트인데 강남 집값이 떨어질 리 있겠느냐”고 꼬집는다.
고위 공직자가 강남 부동산을 처분하지 않는 한 정부의 ‘강남 압박’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강남 집값 급등 현상을 단순히 투기로만 봐선 곤란하다.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다면 고위 공직자들이 합심해서 호가보다 낮춰 매물로 내놓는 등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규제만 가한다면 일반적인 시장 흐름보다 가파른 속도로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3호 (2018.1.24~2018.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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