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The Strad Korea (스트라드)

REVIEW: KBS교향악단,경기필하모닉,양정윤,장희진,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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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9. 16:0159 읽음

[Review] 

KBS 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제767회 정기연주회
북유럽의 클래식 오로라
2021년 6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KBS교향악단은 제767회 정기연주회를 ‘북유럽의 클래식 오로라’라는 부제 아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7번 교향곡 등을 연주했다. 지난 2017년 요엘 레비와 미도리의 조합(제723회 정기연주회)으로 들었던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지휘자 크리스토프 쾨니히와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의 연주로 재설계되었다. 특히 협연자의 다양한 표정과 풍부한 감정은 협주곡 레퍼토리를 이날 전체 프로그램의 중심부로 끌어 모으기 충분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로라를 발견한 연주였고(실제로 핀란드 하늘에서 오로라를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확대해석으로 불필요한 필터를 마구 끼워 넣은 과장된 ‘사진 오로라’같은 느낌도 줬다.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는 광시곡 풍의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는 이 협주곡만이 갖고 있는 독창적 특징이다. 쾨니히는 이 신비로우면서도 불길한 악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려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악단은 독주악기에 한껏 그림자를 드리운 모노톤의 배경을 깔아줌으로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되었다. d단조에 기반 한 솔로 바이올린 멜로디가 저음역부터 고음역을 넘나들며 왠지 모를 불길함을 지속적으로 암시했다. 그러는 사이 때 묻은 마음도 씻겨줄 것만 같은, 달과 해가 짝처럼 아침을 맞는 핀란드 북극의 신비로움과도 같이 자연스레 단조에서 장조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장단조가 묘하게 겹치지는 순간순간을 효과적으로 포착해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해냈다. 또한 그는 격정과 동시에 까다롭고, 그 까다로움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북유럽의 순수한 서정을 담은 치명적 기교로 곡 전반을 지배해나갔다. 이 작품의 진면목은 이어지는 2악장과 3악장으로 치달을수록 깊어지고 과감해지며 노골적인 형태로 진화하게 되는데, 1악장에서 어두운 톤을 조성했던 관현악이 점차 그 정체를 드러내며 악상의 전개를 도왔다.
폭넓은 음역대를 오가며 만들어내는 다이내믹은 대체적으로 드라마틱했지만 운지나 스케일 면에서는 다소 불안함이 있었고, 다양하게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는 주제로의 접근은 광활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으나, 보다 잔잔하거나 거칠어도 좋았을 악단의 연주는 독주에 비해 다소 무게감을 덜어내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흑백TV에서 컬러TV로 넘어가듯 이날의 지휘자는 시벨리우스와 라벨 이후의 앙코르(스메타나, 오페라 ‘팔려간 신부’의 세 개의 춤 중 ‘유랑극단의 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둘 다 각각의 매력이 있었지만 흑백의 시대를 조금만 빨리 종식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앙코르에서 보여준 고화질의 해상도가 이전에도 필요했다는 말로 대체 가능하다. 전체 프로그램의 구성을 봤을 때에도 포인트와 클라이맥스의 지점을 염두 해뒀을 관객에 대한 배려도 약간은 필요하지 않았나 싶은 다소 조잡스런 구성이었다는 시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악단에 대해 말할 때 정통성을 논하는 경우가 있다. 새 감독을 소개하며 단원의 평균나이를 강조하는 걸 보니 이 악단의 정통은 무엇이며 전통으로 내려오는 유산은 무엇일지 생각해보다가, 역사라고 해봤자 일백년도 안 된 시장에서 전통을 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분명한 점은 KBS교향악단의 현재가 꽤 탄탄한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멤버로 구성되어있다는 점과, 레비 이후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객원지휘자와 함께 실험적인 정기연주회를 다각도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위를 앞세워 ‘누구 아니면 우리의 무대에 설 수 없다’라는 제한을 두지 않고-집행을 위한 예산의 문제를 논할 필요 없이- 자신들의 무대를 기꺼이 제공하고, 한정적 레퍼토리와 연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레퍼토리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에서 무한한 긍정을 느낀다. 이날의 무대는 올해 있을 하반기 라운드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했고, 그들이 제작 배포한 홍보문구 또한 흥미를 높이기 충분했다. 내년부터 시작될 새 감독에의 프리뷰 또한 적절했다. 새 감독이 프리뷰 무대를 가질지, 취임연주회의 프로그램을 무엇으로 구성할지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글|김은중



경기필하모닉 헤리티지 시리즈3 ‘세헤라자데’
6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경기필하모닉의 이름은 애호가들 사이에 급부상하고 있다. 리카르도 무티를 초청한 연주회는 이목을 집중시킨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이후 경기필하모닉의 브랜드 가치는 급속하게 높아졌다. 이어 동향의 마시모 자네티가 상임지휘자에 취임하여 악단을 리드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며 성실하게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악장 정하나의 구도자적 자세 또한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 많은 관계자들이 동의하리라 믿는다.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악장의 중요성은 비엔나 필하모닉의 발터 바릴리, 빌리 보스코프스키, 라이너 퀴흘, 베를린 필하모닉의 미셀 슈발베와 같은 스타성 짙은 거장을 거론치 않더라도 악장에 따라 연주력의 부침이 피부로 느껴지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오케스트라의 최근 일련의 연주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하나를 보유한 경기 필하모닉은 언제나 안정감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 연주회는 2020년 12월에 계획되었으나 수차례 연기되어 필자에게 큰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관현악의 마법을 만끽할 수 있는 레퍼토리이기도 하지만 정하나의 솔로 연주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악장의 솔로 연주가 마치 협주곡과 같이, 작품의 전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수년 전 경기필하모닉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에서 라이너 퀴흘의 명연에 비견할 만한 연주를 들려주었기에 그의 세헤라자데 연주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연주에서도 기대에 십분 부응했다. 일단 기술적인 정교함의 완성도가 높았다. 예리하면서 정확한 고음이 폐부에 꽂히는 듯했다. 동시에 따뜻하면서 애잔한 정서가 담긴 연주였다. 하프와 함께 연주한 대목은 마치 동화의 나라로 인도하는 듯했다. 솔로 연주하랴, 리더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랴 동분서주했으나 일사분란 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날은 부지휘자 정나라가 오랜만에 정기연주회의 바톤을 잡았다. 평소보다 현악기의 치밀한 응집력이 발휘되었다. 호른을 중심으로 호방한 스케일의 뜨거운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경기필하모닉 금관 연주가 평소보다 훌륭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무척 충실한 모습이었다. 목관악기의 따스함도 사뭇 달랐다. 정나라의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진심 어린 리드가 단원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타악기의 연주가 전반적인 조화에는 그다지 보탬이 되지 못하여 아쉬웠다.
1부에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을 연주하였다. 자네티 취임 이후 베토벤의 작품에 상당한 강점을 보여준 단체답게 훌륭한 연주였다. 자네티와 완연히 다른 방향으로 리드한 정나라의 해석이 흥미로웠다. 저역을 상당히 강조하여 육중한 남성적 연주였다. 표정이 다양하고 풍부하면서 활력이 느껴졌다. 다만 3악장에서 솔로 악기들의 사전 준비가 충분치 않은 점이 옥의 티였다. 글│김준형

경기 필하모닉




양정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7월 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시벨리우스와 프로코피예프, 프랑크, 생상스의 작품을 수록한 ‘Purity’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발매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정윤이 이자이 소나타 3번 ‘발라드’를 추가한 프로그램으로 리사이틀에 올랐다. 그녀와 여러 차례 리사이틀에 오르고 음반에서도 함께 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이번 무대에서도 파트너로 함께 했다. 
시벨리우스는 대표적인 북유럽 작곡가이다. 우리나라에도 한 때 열풍이었던 북유럽 감성은 사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적당함을 말한다. 양정윤의 시벨리우스의 6개의 소품은 그런 북유럽 감성과 닿아있었다. 첫 곡 ‘추억’에서부터 마지막 ‘자장가’까지 양정윤은 지나친 표현보다는 멜로디라인을 따라 편안히 이야기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이 해석은 차분히 흐르는 멜로디의 6번 자장가에서 가장 잘 어울렸다. 
그녀는 음반에서도 “음악이 가진 순수한 아름다움, 멜로디를 들려주고 싶다”는 의도로 전체적으로 ‘Purity’라는 타이틀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 의도는 프로코피예프에서도 잘 드러났다. 양정윤이 연주한 5개의 멜로디는 가사 없는 가곡이 편곡된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멜로디가 중요한 작품이다. 여기서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화성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이기에 바이올린만큼 피아노의 역할이 큰데, 조금은 더 과감한 접근으로 이끌어가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자이 소나타 3번 ‘발라드’에서 표현의 절정이 터졌다. 연주자와 바이올린만이 오롯이 남은 무대는 양정윤에게 자유로움을 선사 했다. 한 음 한 음을 타고 올라 서서히 몰입했고, 절정에서 온 에너지를 쏟아냈다. 앞선 두 곡보다 과감했고, 풍부한 음향이 넘쳐흘렀다. 무엇보다 그녀의 해석은 깊고 넓은 음향의 그녀의 악기와 잘 어울렸다. 객석 끝까지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소리는 직설적인 표현의 절정이었다. 
프랑크 소나타 A장조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음표들에는 가장 기본적인 비브라토를 비롯해 연주자들이 연주기법에 다양한 시도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를 절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껏 더하다보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지닌 분위기나 캐릭터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양정윤의 해석은 작품의 본연의 색깔을 드러내는 연주를 선택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취향을 고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해석이 다소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더하는 것보다 어려운 덜어내는 것에 집중한 양정윤의 연주는 무대에 오르기까지 음표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는지가 들리는, 그래서 더욱 큰 박수를 보내게 되는 음악이었다. 글│정소연 




장희진 비올라 독주회 : 리게티 소나타 전곡 연주 
7월 13일 일신홀 

두 대의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훔멜의 작품으로 시작된 비올리스트 장희진의 독주회는 우리가 비올라 연주자에게 기대할 모든 것을 담아낸 무대였다. 비올리스트 유우정, 첼리스트 김하영과 함께 연주한 훔멜은 절제된 비브라토 속의 단순한 선율 안에서 기승전결이 들렸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리드해 작품을 이끌고 나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리듬감이었다. 4악장의 민첩한 리듬들은 비올라이지만 멜로디 악기 같은 특유의 가벼움이 인상적이었고, 마치 대화하는 듯한 악기들의 티티카카는 비올리스트 특유의 앙상블의 귀가 돋보였다. 
힌데미트의 듀엣은 비올라와 첼로가 가진 음색이 잘 살아났다. 힌데미트는 자신이 비올리스트였기 때문에 비올라라는 악기가 어떤 음역에서 가장 잘 빛나는지, 그리고 테크닉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범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힌데미트의 작품을 연주할 때 비올리스트들은 편안해 보인다. 장희진도 마찬가지였다. 음표가 많은 패시지들에서도 움직임이 자유로웠고, 멜로디의 맥락이 난해하지 않게 술술 흘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첼로와 사운드가 잘 어우러졌다. 1부는 앙상블 연주자로서의 장희진을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부에서 장희진은 철저히 솔리스트였다. 이 독주회의 주요 타이틀에 오른 리게티의 소나타와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를 비올라로 연주하는 프로그램까지 40여분의 무대를 오롯이 비올라로 이끌어 나갔다. 
장희진은 리게티와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로 무대를 시작했다. 현대 기법들이 사용된, 난해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어려운 이 곡을 청중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내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줬다. 
1악장 호라 룽거는 비올라의 악기 전체를 울려 내는 소리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인 연주였다. 장희진의 연주는 특히 정확한 왼손 컨트롤과 보잉이 인상적이었는데, 중음으로만 작곡된 2악장은 자칫 다른 음들의 연주로 음악이 불분명해질 수 있고, 3악장 임시표들이 많아 정확하지 않은 음정이 정확하지 않으면 연주의 맥락이 읽히지 않는데 이를 테크닉적으로 충분히 소화해냈다. 4악장은 약음기를 낀 채로 많은 음표들을 빠른 속도로 연주해야 한다. 거기에 작곡가는 지나칠 정도로 한 음 한 음에 악센트와 악상을 지시했다. 이 모든 것을 청자가 만족할만하게 소화해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악상의 차이는 조금 더 명확하게 들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5악장에서의 어려움은 하모닉스이다. 심지어 하모닉스를 중음으로 써놓으며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연주자에게 있다. 그러나 연주자가 자칫 기술에 몰두하게 되면 이 해석은 사라지고 만다. 6악장 역시 임시표와 중음기법이 가득하지만 다행이 앞선 악장들과는 다르게 박자에서는 3/4박자라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이 박자와 더불어 마지막 쉼표를 고요하게 이끌어 작품을 완성한 장희진의 연주는 난해하게 여겨지는 음악에 맥락을 만들어 나가 청중이 리게티의 기법을 한 발짝 더 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 그녀는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인,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를 연주했다. 6악장으로 이루어진 리게티의 소나타는 마지막 악장을 그 역시 ‘샤콘느’로 칭하며 바흐의 이 무반주 작품의 악장구조를 차용했음을 드러냈는데, 장희진은 이를 그대로 이어받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청중이 보기엔 비올라가 그저 조금 큰 바이올린쯤으로 여겨지겠지만, 바이올린을 위해 쓰인 작품을 비올라가 편곡해 연주할 때 테크닉을 완벽히 소화해내기에는 연주자만 알 수 있는 어려움 또는 불가능함이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장희진의 이 ‘샤콘느’를 단순히 잘한, 잘못한 연주로 판단할 수 없다. 테크닉이 100퍼센트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감정과 깊이는 온전히 표현됐다. 작품의 기승전결 사이의 연주자의 탄식마저 곡이 품고 있는 분위기가 되어 음악으로 여겨졌다.  
유독 우리는 비올리스트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만큼의 기량과 선율과 베이스 사이에서 풍부한 화성을 완성시켜주는 탁월한 앙상블 연주자의 기량, 그리고 한정적인 레퍼토리 속에서 리사이틀을 채울 수 있는 작품 연구들까지. 비올리스트는 1인 다 역을 소화해낼 때 비로소 인정받는, 어쩌면 현악기들 중에 가장 어려운 역할일지도 모른다. 글│정소연



홍진호 첼로 리사이틀 첼로탄츠
7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Cello Tanz 세상의 모든 춤곡
유행병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은 근래 들어 가장 꽉 찼다. 이것이 연주자의 힘일 것이다. 어렵게 문턱을 넘어 준 연주자에게 매력을 느꼈을, 그리고 좋은 무대에 갈급했던 관객들의 열정이기도 했다.
다양성은 언제나 필요하다. 연주자 스스로가 먼저 밝혔듯이 좀 더 직관적이고 솔직하고, 듣는 그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감동되는 음악,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공감력. 오늘 그는 ‘tanz’라는 제목 아래, 우아한, 정열적인, 잔잔한, 수채화 같은, 센티멘털한, 불같은, 재미있는, 슬픈, 처절한, 매력적인, 10가지 맛의 춤곡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다. 원곡이 첼로가 아니어도 좋고, 원곡이 어떤 편성이어도 첼로로 표현할 수 있는 그만의 감성과 표정이 있기에 가능한 무대였다.
필자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다. 작곡자의 의도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서 집중과 절제를 하는 것인지, 음악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풍부한 표정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난상토론은 언제나 무승부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음악이 음악 자체로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인지, 음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생각보다 쉽게 답을 찾을 수도 있다.
 
다른 색깔의 문
그의 연주를 다른 음악이 아닌, 다른 색깔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서나 많이 접했을 음악들에 그만의 뉘앙스를 입혔기 때문이다.
홍진호와 기타리스는 김진세는 첫 곡 빌라-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5아리아와 알베니즈의 스페인 모음곡 1아스투리아스를 관객에게 수줍게 스며들 듯 음악을 소개했다. 그의 음악적 화법은 굉장히 부드러웠으며, 무대 배치와 조명까지 음악으로 아우르려는 세심함이 있었다. 3번째 곡 부르크뮐러 3개의 녹턴 이후부터는 현악 사중주가 함께 했는데, 그가 프로그램 북에서 소개했던 그대로 현악 사중주가 솔로 첼로를 감싸주는 역할을 하면서 소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깔끔하고 단정했던 현악 사중주는 차이코프스키 6개의 소품 감상적인 왈츠에서 주인공 첼로를 구름 위에 올려놓는 듯한 전개를 펼쳤다. 그 덕분에 솔로 첼로는 훨씬 더 유려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바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은 바르토크의 불규칙하면서도 복잡한 리듬을 부담스럽지 않게, 설득력 있게 현악 사중주 버전으로 소화시켰다.
장르의 확장은 레퍼토리의 확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오코너의 아팔래치아 왈츠와 오코너, 메이어의 석회암’- 옛 피들 선율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곡에서는 콰르텟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안세훈이 함께 했는데, 그의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이 첼로와 아주 잘 어우러졌으며, 컨트리풍의 음악에서 바흐적인 순수함이 연상되는 깊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역시 여러 버전이 있지만, 홍진호의 감수성을 표현해내는 데는 이 날 연주된 조윤성의 재즈 풍 편곡이 큰 몫을 했다. 라벨의 감미로운 멜로디에 그의 의상마저 연주에 함께 하는 듯 소맷자락이 파반느를 추고 있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이 무대를 통해 완전히 새로워졌다. 독일인인 브람스가 헝가리 집시음악을 채보해서 클래식 스타일로 만들었다는 것은 19세기의 충격적인 콜라보였다. 그런 브람스의 프로젝트가 21세기 이 무대에서 재즈 풍으로의 도전이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관객의 눈은 웃고 있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의 대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관객의 웃고 있는 눈만큼은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그의 멘트처럼, 교감이란 무엇으로 가려보고자 한들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첼리스트 홍진호를 소개할 때 이제 더 이상 도전, 장르파괴와 같은 이런 자극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음악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의 이야기이다. 그의 음악이라면 어떤 곡이든지 들어보고 싶다는 관객들이 있기에 첼리스트 홍진호의 다음 무대는 계속될 것이다.
유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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