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호 첼로 리사이틀 ‘첼로탄츠’
7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Cello Tanz 세상의 모든 춤곡
유행병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은 근래 들어 가장 꽉 찼다. 이것이 연주자의 힘일 것이다. 어렵게 문턱을 넘어 준 연주자에게 매력을 느꼈을, 그리고 좋은 무대에 갈급했던 관객들의 열정이기도 했다.
다양성은 언제나 필요하다. 연주자 스스로가 먼저 밝혔듯이 좀 더 직관적이고 솔직하고, 듣는 그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감동되는 음악,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공감력. 오늘 그는 ‘tanz’라는 제목 아래, 우아한, 정열적인, 잔잔한, 수채화 같은, 센티멘털한, 불같은, 재미있는, 슬픈, 처절한, 매력적인, 10가지 맛의 춤곡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다. 원곡이 첼로가 아니어도 좋고, 원곡이 어떤 편성이어도 첼로로 표현할 수 있는 그만의 감성과 표정이 있기에 가능한 무대였다.
필자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다. 작곡자의 의도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서 집중과 절제를 하는 것인지, 음악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풍부한 표정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난상토론은 언제나 무승부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음악이 음악 자체로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인지, 음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생각보다 쉽게 답을 찾을 수도 있다.
다른 색깔의 문
그의 연주를 다른 음악이 아닌, 다른 색깔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서나 많이 접했을 음악들에 그만의 뉘앙스를 입혔기 때문이다.
홍진호와 기타리스는 김진세는 첫 곡 빌라-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5번 ‘아리아’와 알베니즈의 스페인 모음곡 1번 ‘아스투리아스’를 관객에게 수줍게 스며들 듯 음악을 소개했다. 그의 음악적 화법은 굉장히 부드러웠으며, 무대 배치와 조명까지 음악으로 아우르려는 세심함이 있었다. 3번째 곡 부르크뮐러 3개의 녹턴 이후부터는 현악 사중주가 함께 했는데, 그가 프로그램 북에서 소개했던 그대로 현악 사중주가 솔로 첼로를 감싸주는 역할을 하면서 소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깔끔하고 단정했던 현악 사중주는 차이코프스키 6개의 소품 ‘감상적인 왈츠’에서 주인공 첼로를 구름 위에 올려놓는 듯한 전개를 펼쳤다. 그 덕분에 솔로 첼로는 훨씬 더 유려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바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은 바르토크의 불규칙하면서도 복잡한 리듬을 부담스럽지 않게, 설득력 있게 현악 사중주 버전으로 소화시켰다.
장르의 확장은 레퍼토리의 확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오코너의 아팔래치아 왈츠와 오코너, 메이어의 ‘석회암’- 옛 피들 선율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곡에서는 콰르텟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안세훈이 함께 했는데, 그의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이 첼로와 아주 잘 어우러졌으며, 컨트리풍의 음악에서 바흐적인 순수함이 연상되는 깊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역시 여러 버전이 있지만, 홍진호의 감수성을 표현해내는 데는 이 날 연주된 조윤성의 재즈 풍 편곡이 큰 몫을 했다. 라벨의 감미로운 멜로디에 그의 의상마저 연주에 함께 하는 듯 소맷자락이 파반느를 추고 있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이 무대를 통해 완전히 새로워졌다. 독일인인 브람스가 헝가리 집시음악을 채보해서 클래식 스타일로 만들었다는 것은 19세기의 충격적인 콜라보였다. 그런 브람스의 프로젝트가 21세기 이 무대에서 재즈 풍으로의 도전이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관객의 눈은 웃고 있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의 대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관객의 웃고 있는 눈만큼은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그의 멘트처럼, 교감이란 무엇으로 가려보고자 한들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첼리스트 홍진호를 소개할 때 이제 더 이상 도전, 장르파괴와 같은 이런 자극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음악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의 이야기이다. 그의 음악이라면 어떤 곡이든지 들어보고 싶다는 관객들이 있기에 첼리스트 홍진호의 다음 무대는 계속될 것이다. 글│유수경